밤엔 나무도 잠이 든다.
잠든 나무의 고른 숨결소리
자거라 자거라 하고 자장가를 부른다.
가슴에 흐르는 한 줄기 실개천
그 낭랑한 물소리 따라 띄워보낸 종이배
누구의 손길인가, 내 이마를 짚어주는.
누구의 말씀인가
자거라 자거라 나를 잠재우는.
뉘우침이여.
돌베개를 베고 누운 뉘우침이여.
―이형기(1933∼2005)
사람에게는 겉에 보이는 얼굴이 있고, 겉에 보이지 않는 속내도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말에도 ‘보이는 뜻’과 ‘보이지 않는 뜻’이 있다. 사전의 의미는 대개 보이는 뜻인데, 어떤 단어에는 지층처럼 누적된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돌베개를 돌로 된 베개의 명칭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단어의 얼굴만 보는 식이다.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야곱의 베개를 연상한다든가 깊이 참회하거나 고통을 견디는 자의 내면을 떠올리는 것이 깊이 읽는 방식이다. 시는 이렇게 어떤 이야기와 상징이 담겨 있는 단어를 좋아한다. 짧은 형식이어서 시어를 선별해야 하는데 사연과 이미지가 풍성한 단어는 적은 단어로도 많은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잠든 나무의 숨소리를 듣고 있다는 말은 화자가 아직 잠들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괴로운 일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무의 자장가가 마음의 실개천이 되더니 돌베개의 뉘우침이 되었다. 맨 처음 나무라는 수직적 이미지가 점점 수평적 이미지로 변모하면서 결국에는 땅에 누운 돌베개로 변화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심란하고 괴로워 잠 못 드는 밤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괴로운 밤은 길기도 하다. 그 밤에 나의 돌베개가 나만의 돌베개는 아님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