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피눈물이 땅을 적셨을까. 요즘 미얀마에서는 세 손가락 높이 드는 행위도 크나큰 죄가 된다. 나도 그만 아득해진다. 저런 것들도 군인이라고! 탄식이 절로 나온다. 공공의 안녕을 수호해야 할 자들이 공공의 안녕을 공격했다. 이런저런 경로로 전해오는 비통과 절규 사이사이로 인륜을 저버리는 만행들이 어른거린다. 이러고도 저들이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이런 수작에는 개도 웃을 노릇이지만, 이걸 그대로 추종하는 자들도 있나 보다. 열망이 처참하게 능욕을 당한다.
민주주의라 하는 게 무엇인지, 이것도 논의하자면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각기 여건이 다른 만큼 이를 구현하는 제도나 관행도 천차만별이다. 이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러나 지도자 선출도 뜻대로 하지 못하면서 민주주의를 말할 수는 없다. 만약에 지도자가 민의를 거스르기라도 하는 날에는 유권자들이 나서서 그 직위를 박탈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에도 여러 형태가 있어서 겨우 이 정도로는 미흡하지만, 이것조차 불가능하고서야 어찌 감히 민주주의라 말하랴.
군부가 무지몽매하다. 지난 2월에 쿠데타 소식을 듣자 금방 든 생각도 이런 거였다. 가뜩이나 역병으로 경황이 없는 와중에 저것들이 재앙을 부르는구나. 아무리 미얀마 사정에 어둡다고 해도 그래. 나도 짐작은 했어. 민주세력이 선거에서 압승했다. 살림살이도 나아지고 있었고. 저마다 나름대로 소중한 꿈을 키우고 있었다. 유권자들도 각성을 했던 거야. 이대로는 안 돼. 이런 공감대도 있었고. 그런데 군인들이 민의를 짓밟아? 무엇보다도 이들의 몰상식이 놀랍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면 구덩이에 빠진다. 이래서 문민통제가 당연하다. 그런데도 역도들이 가끔 출몰한다. ‘정치인들의 무능과 부패로 민생의 파탄이 너무나도 극심하여 우리 청년장교들이 뜨거운 애국심으로 구국의 결단을 내렸노라.’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이런 궤변조차 내세우기가 민망스럽지 않을까. 그 ‘결단’이라고 하는 것이 처음도 아니다. 더군다나 과거의 그 ‘결단’으로 민생을 아주 ‘결딴’내었으면서. 이제는 이 나라가 제대로 자리를 잡나 했는데, 군인들이 또 난동을 부렸다.
그러나 오늘의 미얀마가 어제의 미얀마는 아니다. 도처에 주검이 널린다. 어떻게 도울 길이 없나? 이런저런 궁리를 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 사람들이 저렇게 죽는데, 나는 이렇게 걱정만 하는구나. 하기야 개개인이 뭘 하기도 난감하다. 국제사회가 평화유지군이라도 보내 살상행위를 저지해야 할 텐데, 이것도 구구한 사정으로 불가능하다. 유엔의 승인과 무관하게 외국군이 임의로 개입할 수도 없다. 한국정부가 국민통합정부를 공식정부로 인정할지 말지 하는 것도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 불편하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뭐라도 하자. ‘미얀마 힘내라.’ 급기야 나도 이런 문구와 함께 몇 푼의 돈을 어디로 보냈는데, 이게 또 걱정을 유발한다. ‘힘내라’고 한 이 응원에 누군가 힘을 내어 거리로 나갔다가 혹시 군경의 총탄에 죽는 건 아닐까? 나는 표현을 이렇게 했어야 했나. ‘미얀마, 죽지 마!’ 그러나 이것도 모순이다. 이런 기대가 얼마나 허망하냐. 이미 사상자도 많다.
생명은 소중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납작 엎드리지도 않아. 군인들이 자국민들을 마구 학살한다. 이런다고 끝이 나지 않아. 어차피 다 죽일 수도 없다. 살아남은 자들이 바로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으로 몸부림친다. 또 죽이려고? 수렁이 아주 깊다. 아무리 쿠데타 세력이라 하더라도 자기들만의 힘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 최소한의 묵인과 기대는 있어야지. 나는 이들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예측한다.
사람은 꼭 무슨 이유가 있어야 누구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 거 없이 그냥 좋다. 심리학자들은 그렇지 않다며 이런저런 논거를 들겠으나, 당사자들은 이 근거마저 그저 성가시기만 하다. 곰보자국도 보조개로 보이는데, 뭐. 이러다가 산전수전 다 겪는 게 인간들이다. 그러면 상대가 싫으면 어떠냐? 그야, 뭐, 보조개도 흉터로 보이지. 그 숨소리조차 듣기 싫다. 하물며 쿠데타를 일으켜 차마 눈 뜨고 못 볼 짓들을 밤낮으로 저지르는 것들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양곤에서 만달레이에서 또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민 아웅……. 에이, 이 소똥구리는 더 알고 싶지도 않다. 문득 41년 전 광주의 참상과 그 일당의 후안무치가 떠오른다. ‘문어대가리가 아직도 죽지 않았구나.’ 갑자기 밥맛이 뚝 떨어진다. 이런 재수 없는 것들을 두고, 누가 감히 인간이라 칭하랴. 어휴, 나도 소금을 뿌리거나 냄비를 두드려야지. “악귀야, 물러나라.” 이렇게 고함도 지르고. 미얀마 저것들 역시 존재 자체가 곧 민폐이다.
사람은 언제라도 삼가야 할 말이 있다. “저런 것들은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다.” 바로 이런 폭언이다. 입도 씻고, 귀도 씻자. 그러나 나 또한 이럴지 몰라. “내게도 총을 다오.” 여기가 바로 생지옥이다. 저들을 처단하고 백년이 지난들 무슨 참회를 하랴. “이건 살생이 아니라 천도(遷度)야, 천도!” 석존께서는 중생들에게 분노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하셨다. 이 말씀이 옳다. ‘그러나 저것들한테 자비는 과분하다. 그러느니 천도가 더 적합하지.’ 나도 정상이 아니다.
한때는 면전국(緬甸國)으로 불렸다는 이 나라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마치 전생에 살았던 곳처럼 친숙하다. 나는 이곳 사람을 만나 말 한 마디 나눈 적 없다. 언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근래 미얀마 사람들이 한국인들을 매우 가깝게 느낀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마도 이게 터무니없는 정서일 텐데, 나 또한 어처구니없게도 그들처럼 그렇게 그들을 느낀다. 그래서 더욱 소리 높여 외친다. 미얀마, 죽지 마!
현역군인이 정치판에 어슬렁거리거나 개인사업체를 운영해서 돈벌이를 한다는 게 도통 어울리지 않아. 이것만이 아니다. 가해자들이 본보기랍시고 피해자들의 피멍든 얼굴을 버젓이 내보인다. 무덤도 파헤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돼. 저들이 아주 죽기로 작심을 했구나.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지. 그런데도 친근감이라니, 이게 동병상련의 힘일까? 나도 연유를 잘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