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왔다
1월 1일이 왔다
모든 날의 어미로 왔다
등에 해를 업고,
해 속에 삼백예순네 개 알을 품고 왔다
먼 곳을 걸었다고
몸을 풀고 싶다고
환하게 웃으며 왔다
어제 떠난 사람의 혼령 같은
새 사람이 왔다
삼백예순다섯 사람이 들이닥쳤다
얼굴은 차차 익혀나가기로 하고
다 들이었다
같이 살기로 했다
무얼 머뭇거리느냐고 빈집이
굶주린 귀신처럼 속삭여서였다
―이영광(1965∼ )
새해는 다짐으로 시작하는 법이다. ‘살 빼자. 금연하자. 운동하자.’ 이런 계획 없는 새해는 좀 심심하다. 그래서일까. ‘희망하자. 감사하자. 새해에는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새해를 여는 시에는 기도 같은 시가 많다. 두 손을 모으고 1월 1일의 일출을 볼 때는 바로 이런 시들이 떠오른다. 새해 첫날에는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크게 바라고 싶다.
오늘 소개하는 ‘1월 1일’은 좀 특이하다. 새해가 왔는데 시인은 크게 희망하지 않는다. 거창하게 계획하지도 않는다. 그는 아마도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기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새해를 맞이해도 될까 망설였을지도, 부르지 않아도 찾아와 준 새날들이 조금 낯설었는지도 모른다. 맞다. 새해가 꼭 희망과 포부로 가득해야 하는 법은 없다. 이런 새해도 있고 저런 새해도 있다. 환한 일출 아래서의 첫날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망설이듯, 주저하는 새해의 첫날도 있다. 나의 새해만 어두운가 위축되는 마음에 이 시는 큰 위안이 된다.
주저했다고 해서 올해를 허투루 살까. 1월 1일이 삼백예순네 개의 알을 품고 먼 길을 걸어왔다는데, 그 알을 무심히 깨트릴까. 우리에게는 아직 삼백예순 개의 나날이 남았다. 이 남은 날들은 즐겁지 않아도 소중할 것이다. 행복하지 않아도 삶은 소중하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