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1961∼ )

 

12월이 되면 선생님은 학생들과 작별할 준비를 한다. 애들 때문에 힘들기도 했을 테지만 헤어지고 나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못해 준 것만 생각이 난다. 데굴데굴 잔머리 굴리려는 학생도 귀여웠다. 이거 드려도 되나 걱정하면서 핫팩을 놓고 가는 학생은 오래 남는다. 짧다면 짧은 시간 함께했던 학생들이 어디에 가서든 잘 지내길 바라게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 예쁜 줄 모르고 살았는데 나이가 들고 엄마가 되니까 어린 사람, 젊은 사람 다 예뻐 보인다. 내 애가 소중하면 저 애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늦게 배웠다.

그런 마음에서 안도현의 이 시는 절대 잊을 수 없다. 날이 추워진다는 뉴스를 들으면, 눈발이 내린다는 예보를 들으면 이 시가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눈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순진하고 철없다. 어린 눈이 사라지고 다치는 것이 안타까워서 강은 저 스스로 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가 어디 눈과 강의 이야기일까. 이 안에는 예수님도 있고 부처님도 있다. 그 외 우리가 믿는 모든 신들, 어머니의 마음까지 다 들어 있다. 돌아보면 우리에게도 저 눈발 같은 시절이 있었고 저 강과 같은 사람이 있었다. 12월에는 조용하고 감사하게, 그 시절과 사람을 생각하고 싶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