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등에 난 상처가
오른손의 존재를 일깨운다
한 손으로 다른 손목을 쥐고
병원으로 실려오는 자살기도자처럼
우리는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지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려놓고
아직 끝이 아니라고 위로하는 소설가처럼
삶은 늘 위로인지 경고인지 모를 손을 내민다
시작해보나마나 뻔한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서른두 살의 주인공에게로
울분인지 서러움인지 모를 표정으로
밤낮없이 꽃등을 내단 봄 나무에게도
위로는 필요하다
눈물과 콧물과 침을 섞으면서 오열할 구석이,
엎드린 등을 쓸어줄 어둠이 필요하다
왼손에게 오른손이 필요한 것처럼
오른손에게 왼손이 필요한 것처럼
―이현승(1973∼)
우리는 이 시의 제목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로 끝나는 시조의 한 구절이다. 이조년의 이 시조는 누군가를 사랑하여 심란한 마음, 혹은 임금이 걱정되어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풀이된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때의 다정이란 단 한 사람의 몫이다. 이런 다정은 홀로의 마음 안에서만 맴돌다 사라질 것이다.
이런 옛날의 다정과 오늘날의 다정은 많이 다르다. 옛날의 다정이 개인의 다정이었다면 오늘의 다정은 우리들의 다정이다. 아픈 손이 아픈 손을 알아보듯이, 이 시에서처럼 왼손의 상처가 오른손을 일깨우듯이 우리의 다정은 한 사람 안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이것은 나에게서 나와 너를 일으키고, 너에게서 비롯해 나를 안아주는 상호적 희망이다.
돈이 좋아서 인간은 점점 천박해진다. 명예, 존엄, 품위처럼 멋진 가치들도 돈 앞에서는 힘을 잃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큰 명예는 못 지켜도 서로에게 다정할 수는 있지 않을까. 존귀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다정할 수는 있지 않을까. 다정은 최소한의 가치다. 이현승 시인의 시는 이제 개인이 아니라 우리들의 명제가 되어버린 다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로 우리는 한 줌의 다정으로 연명하기도 한다.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다. 다정이 더욱 절실한 계절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