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밥풀은 수저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풀은 그릇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그릇엔 초저녁 별을 빠뜨린 듯
먹어도 먹어도 비워지지 않는 환한 밥풀이 하나 있네
밥을 앞에 놓은 마음이 누룽지처럼 눌러앉네
떨그럭떨그럭 간장종지만 한 슬픔이 울고 또 우네
수저에 머물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이 저녁의 어둠
이 저녁의 아픈 모서리에 밥풀이 하나 있네
눈물처럼 마르고 싶은 밥풀이 하나 있네
가슴을 문지르다 문지르다 마른 밥풀이 하나 있네
저 혼자 울다 웅크린 밥풀이 하나 있네
―이기인(1967∼)
혼자 먹는 밥상이 분명하다. 맛있는 반찬은 하나도 없고, 입맛도 없고, 살아야 하니까 먹는 식사임이 분명하다. 밥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니 퍼뜩 정신이 돌아왔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도 나는 밥을 먹는구나, 먹어야 하는구나. 하찮은 몸뚱이가 밉고도 가여운데, 마음은 갈 곳을 찾지 못해 남아 있는 밥풀에 시선을 돌린다. 더러워진 그릇에 홀로 남은 밥풀, 보잘것없는 그것이 꼭 나 자신 같다.
우리가 실제로 ‘밥풀과의 조우’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도 이 시는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다. 시에서는 찬밥의 냄새, 저녁의 냄새, 외로움의 냄새, 슬픔의 냄새가 뒤섞여 풍겨온다. 장면으로 만들어진 시가 냄새를 뿜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 시에는 인생의 오장육부에서 길어온 깊은 냄새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후각이 아니라 영혼의 감각기관을 두드린다. 너도 이 냄새를 알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 듯하다.
수저에 붙은 밥풀이, 그릇에 붙은 밥풀이 되었다가, 저녁의 모서리에 가서 붙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밥풀 한 톨이 사람만 한 크기가 되어, 수저를 쥔 사람을 압도하고 만다. 어른들 말씀에 그릇에 말라붙은 밥풀은 장사도 떼지 못한다고 했다. 슬픔이라는 밥풀도 마찬가지여서 사람을 집어삼킬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밥풀만 한 슬픔도 크게 들여다보고 걱정하는 겨울이 되면 좋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