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에 눈바람 분다 / 강숙련

 

 

부산의 눈은 시부지기 내린다. 참을 만큼 참다 어느 한계에 이르면 비적비적 주춤거리며 내린다. 한 번이라도 먹먹한 가슴에 퍽퍽 주먹질하듯 펑펑 쏟아져보길 기대하지만 경상도 보리문둥이의 안타까운 눈물인 양 질척이다 말기 일쑤다.

​ 감질나는 눈에 비해 바람은 훨씬 부산 사람을 닮았다. 태평양을 건너 연안 부두를 지나 자갈치에 이른 바람은 매섭게 체감온도를 끌어내린다. 허연 소금기를 채 털어내지 못한 갈퀴에서 훅 비린내가 난다. 그것은 억센 사투리처럼, 바닷가 사람들의 강인한 체취처럼 독특하다.

​ 바람은 눈발을 몰고 뒷산으로 간다. 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면 잽싸게 바람을 따라나서 볼 일이다. 주춤거리며 따라온 눈이 뒷산 숲에 들면 빗장을 푹고 푸지게 쏟아지곤 한다. 날을 세우던 바람도 숲속에서는 숨을 고르고 온화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겨울 산의 축복이다.

​ 언젠가 ‘축복’에 목이 맨 적 있다. 절망은 악마의 유혹이 되어 나를 부리고 있었고, 나는 축복이란 단어에 애가 말랐다. 어느 절대자가 가없는 긍휼을 퍼부어주길 기원했다. 하늘의 축복, 땅의 축복…. 아니 존재하는 어느 잡신들의 축복인들 마다했을까.

나는 그때 비탈의 끝에 서 있었다. 남편의 수술 일정이 아들의 수능시험과 겹쳤다. 새벽에 나가 자정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아들에게도, 생사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남편에게도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았다. 아들은 아들대로 자신의 불안을 감추고, 남편은 남편대로 애써 의연한 척했다. 그러나 그 불안은 고스란히 서로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지내놓고 보니, 가족이란 그런 것이고 또 그래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스크럼을 짜고 바람 앞에 서 있었다.

​ 험한 길, 가파른 길에서는 바람도 힘이 드는지 윙윙 소리를 냈다. 깊은 바다 해녀들의 숨비 같은 그 소리에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한 눈덩이가 후드득 맥없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바람은 키 큰 나무 위에서 뚝 뚝 관절을 꺾으며 세차게 몰아쳤다.

​ 살다 보면 누구나 눈바람 부는 비탈로 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바람보다 더 납작하게 몸을 낮추어야 한다. 두 발 아닌, 네 발로 기는 것이 산을 오르기에 훨씬 수월하다. 직립하는 인간이 납작 몸을 낮추다 보면 바닥과 가까워진다. 밀리고 밀려 더는 내려갈 수 없는 곳, 바로 그곳에는 평생토록 바닥을 기며 살아가는 미물들이 있다.

​ 기껏해야 한 톨의 알갱이에 불과한 일용할 양식을 위해 산개미들은 실낱같은 팔다리로 위태롭게 기어간다. 인간이 두 발로 밟고 선 바닥을 산개미들은 온몸으로 쳐들고 간다. 그들에게 ‘왜 기어야 하느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세상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 인간은 바닥에 이르면 소외와 굴욕을 떠올린다. 실패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그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미물들에게 ‘바닥을 기는 것’ 은 절실한 삶의 몰두다. 직립의 인간에 비해 그들의 오체투지는 조금도 굴욕스럽지 않다. 오히려 그 방식이 훨씬 경건하다는 생각이다.

​ 흔히들 ‘죽는 용기로 살아내라’고 한다. 사는 것이 죽는 것과 같을 때가 있다. 그래도 살아내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다. 적어도 ‘잘 사는 방법’,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말해야 할 사람들이 극단의 방법으로 세상을 등졌다. 전직대통령, 인기 연예인, 재발가의 CEO, 교장 선생님…. 급기야 그들을 모방하는 베르테르 효과까지. 그들에게 극단의 삶이란 미물들의 오체투지보다 더 견뎌내기 어려웠던 것일까.

​ 나는 지금 눈바람 부는 비탈에 서있다. 언젠가 우리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나무들도 서로의 어깨를 껴안고 있다. 그래, 비탈에선 그렇게 살아야 한다. 바람보다 더 낮게 자세를 낮추거나 바닥의 미물처럼 절실하게 살아야 한다. 바닥 맛을 알려면 바닥과 더욱 가까이 가 보아야 한다. 인생의 바닥 맛을 본 자, 훨씬 깊어진 가슴으로 굳세게 일어설 것이다.

​ 다시 바람이 분다. 비릿한 소금기가 숲의 기운으로 정화되었는지 청량하다. 먹먹하던 가슴도 어느새 평안하다. 바람은 자신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 언제나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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