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장덕재
겨울 끝자락에 찬바람이 서성인다. 주춤거리는 겨울 뒤로 봄이 기웃거리고 창가를 더듬는 햇살의 유혹이 심상치 않다. 아니나 다를까. 양지바른 화단의 매화가 봄을 품고 있다. 여린 꽃망울을 머금은 가지마다 부푼 가슴을 여미고 있다. 내 마음은 언제나 계절보다 한발 앞선다. 마음속의 겨울은 이미 봄을 맞이하고 있다.
노후의 전원생활을 꿈꾸며 산골에 둥지를 튼 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다. 화려한 꽃동산을 계획하며 앞뜰에는 주로 화초나 꽃나무를 심었고, 뒤뜰에는 각종 유실수를 심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각양각색의 화사한 꽃들과 주렁주렁 매달린 과일을 보는 것만으로도 호사를 누리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온전한 내 삶을 찾아가며 인생의 절정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입춘도 지났으니 나무에 물이 오르기 전에 가지를 정리해야 한다. 전지가위를 들고 나무 사이로 다가갔다. 봄부터 부지런히 싹을 틔워 무성했던 나무들이다. 추위를 견디며 매서운 겨울을 지나온 것을 보면 마음만 더 분주해진다. 겨우내 얼마나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했을까. 나무의 삶도 환경에 따라 온갖 역경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인간과 다르지 않다. 제 몸을 잘라내는 일이지만 나무는 가위를 들고 접근하는 나를 홀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곱게 다듬어 줄 내 손길을 기다리는 듯하다.
한 해만 지나도 나무들은 제멋대로 자라있다. 명자나무는 가지가 많아서 잔가지는 대부분 솎아준다. 배롱나무도 꽃을 많이 보기 위해 원가지만 남겨 두고 속가지를 자른다. 그중에서도 소나무 가지치기가 가장 어렵고 까다롭다. 소나무는 곁가지가 잘 나오지도 않고 잔가지는 그냥 두면 삭정이가 된다. 여름에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소나무가 덥수룩하다고 아내가 마구 잘라 수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온기가 있는 손으로 가지를 잡았다. 가지마다 예쁜 꽃을 피우는 것은 여름 내내 무성하고 푸르렀던 낙엽을 떨어내고 겨울의 고통을 잘 이겨낸 결과물이리라. 나무의 삶은 인간의 삶보다 더 정직하고 두터운 듯하다. 그냥 있는 본연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나무는 이기적인 사람들보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제자리를 지킬 줄 안다. 스스로 위치를 탓하지 않고 더 좋은 자리를 탐하지도 않는다. 오직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며 살아간다. 겨울의 혹한이 생채기를 내도 묵묵하다. 내가 제 몸의 일부를 잘라내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생겨난 그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주어진 삶에 충실하다. 가위에 잘려나가는 가지들이 발밑에 널브러진다. 금방이라도 화사한 꽃이 피어나고 토실한 과일들이 매달릴 것 같아 손길이 더 빨라진다.
아버지에게는 조그마한 복숭아 농장이 있었다. 일반적인 농사라면 겨울은 농한기라서 한가한데 과수원은 달랐다. 겨울에도 밑거름을 주고 신문지로 봉지를 만들었다. 이른 봄부터 유황 소독을 시작으로 일주일이 멀다 하고 농약을 뿌렸다. 복숭아나무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일부였다. 이른 봄부터 가지치기를 시작으로 거름을 주고 꽃이 피면 선별하여 따주기도 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도 실한 것만 남기고 솎아내곤 했다.
나무는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지만, 더 나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몸 일부를 자르거나 따버리는 아픔을 견뎌야만 했다. 추위도 채 가시지 않은 벌판에서 아버지는 가지를 자르듯 가난한 자신의 삶도 잘라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당신은 내키지 않는 과수 농사를 장손인 나에게 넘길 듯 농사기술을 가르쳤지만 도시 생활을 꿈꾸던 나에게는 전혀 관심 밖이었다. 그래도 그때 어깨너머로 배운 가지치기의 기억이 남아있어 정원의 나무들을 손질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먼저 죽어가는 가지를 자른다. 다른 가지와 겹치는 가지도 잘라준다. 아래로 축 처진 가지, 볼품없이 위로 솟구친 가지, 웃자란 가지들은 우선 잘라야 할 대상이다. 나무는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이 선명하다. 엄동설한에는 멈춘듯하면서도 봄을 맞이하기 위한 기다림을 배운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제자리를 지킨다. 봄에는 꽃을, 여름에는 무성한 잎을,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충실하다.
그렇게 나무로써 최선을 다했기에 잎을 모두 떨어내고 혹한에 시달려도 벌거숭이로 버티며 봄날의 환희를 기다릴 수 있으리라. 그것이 어디에 있든 우리가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것이다. 자연은 모든 생명체의 공동의 삶터이기 때문이다. 가지치기는 나무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철 가지치기를 할 때마다 젊지 않은 나이에 철이 드는 것 같다. 내 삶이 번뇌로 가득해서 잠을 설칠 때가 더러 있다. 너무 많이 덜어내지 못하는 욕심 때문임을 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만 솟구친 가지를 자를 때는 문득 오만했던 내 젊은 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여기저기 제멋대로 자라 나온 잔가지를 보면 이룰 수도 없는 온갖 욕심과 불평불만으로 얽히고설켜 있던 내 모습과 다르지 않다. 가지치기하면서도 순간순간 웃자라는 가지들도 쳐내면서 자못 대견해진다.
이제 인생을 관조할 나이가 되었다. 잘 다듬어진 나무처럼 올곧고 균형이 잡힌 삶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가지치기는 잠시나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나무를 다듬듯 내 안에서 멋대로 자라고 있는 상념들을 하나하나 잘라낸다. 늘 청춘이듯 여전히 버티고 있는 마음속의 곁가지들도 다듬어 본다. 사리사욕에 너무 관대하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도 한다. 가지치기는 오히려 나를 다듬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흐뭇하다.
전지를 거친 나무들이 단정하게 서 있다. 머잖아 전신에 피울 꽃을 기다리는 매무새가 여간 예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