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그 바다에서 길을 묻는다 / 정영자

 

 

빛과 색으로 표현된 그림 앞에 섰다. 가까이서는 오묘한 색의 집합체로만 눈에 들어오는데 물러설수록 빛이 그 형체를 드러낸다. 그림 한가운데 망사리를 등에 지고 몸을 수그리고 나오는 해녀가 있고 그 뒤로 웅성거리며 나오는 해녀들이 있음을 느낀다. 형체가 뚜렷하지는 않으나 강렬한 원색으로 활발하게 그려진 선과 면에서 물질을 끝내고 나오는 해녀들의 표정이 읽히고, 깊은 물 속에서 수초처럼 헤쳐 나온 안도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중심에 선 해녀는 상군으로 보인다. 종일 바다에서 물질로 피곤했을 법한데, 이 정도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걸어 나오는 동작이 억세다. 앞으로 수그린 모습에서 등에 진 망사리의 무게를 짐작할 수가 있다. 제법 많은 수확을 한 해녀는 뒤에 따라 나오는 해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언젠가는 상군 해녀만큼 수확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온갖 색으로 활달하게 표현된 색채가 대신 전해준다. 그림이 주는 묘미다.

기당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은 내 기억 속 해녀를 불러낸다. 열서너 살 무렵 외가인 표선 당캐 바닷가에서 보았던 해녀들. 어째서 내 기억 속에 무채색으로 저장되었을까. 끝이 어딘지 모르게 펼쳐진 바닷가 검은 돌과 하얀 물거품이 이는 파도, 그녀들이 입었던 검은 소중이와 하얀 물적삼과 머릿수건인 물질옷에서 형상화된 듯싶다.

외숙모, 이모, 외사촌 언니가 물질옷으로 갈아입고 다른 해녀들과 함께 나서면 모두 닮아 보였다. 검은 바윗돌을 지나서 여기저기 지천으로 핀 순비기꽃 사이를 지나 짙푸른 바다로 갔다. 그녀들은 돌을 밟으며 걸어갔으나 내 눈에는 흐르는 듯 보였다. 칠월 볕에 뜨끈하게 그을린 바윗돌에 오도카니 앉아 목덜미며 팔뚝에 내리쬐는 햇볕도 마다찮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름방학이 되어 한 일주일 머무르며 외가댁 어른들을 따라다니던 바다는 세월이 흘러도 푸르기만 하다. 또렷이 이름 붙일 수 없이 흐트러져 버린 풍경. 그 풍경은 색의 집합체로 남아 내 기억 속에 흑백사진으로 저장되었으나, 오늘 저 바다의 푸른빛은 더 깊어져 내 눈을 서늘케 한다.

외가로 가는 길에 누렁이 소가 물을 먹던 못이 있었고, 그 못을 지나면 돌담을 끼고 긴 올레가 갈래갈래 이어져 있었다. 올레 끝마다 외삼촌 이모 사촌들과 내가 삼촌이라 부르던 먼 친척분들이 살고 있었다. 그 동네를 ‘막상올래’라 불렀다. 나중에야 막상올래가 소들이 물을 먹던 그 못의 이름이란 걸 알았다.

돌담을 끼고 뿌리 깊은 나무의 가지가 뻗어 나가듯 가지 쳐서 살던 친척들은 다 어디로 가셨는가. 여름방학이나 명절 때 가면 ‘성안 아이’ 왔다고 반겨주던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데 어디가 어딘지 분간조차 어렵다.

고향이 어디냐고 하면 ‘표선’이라 답하지만, 정작 고향에 오니 어디로 찾아가야 할지 길을 잃은 나그네처럼 두리번거리며 헤맨다.

아버지,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란 땅. 그게 나의 고향이다. 고향이라 해서 발붙여 살아본 적이 없는 이곳에서 나는 그저 성안 아이였을 뿐인가. 고향은 앨범에서나 만날 법한 이미지로 남아있지만, 갯가에서 태어난 천성은 늘 바다를 찾는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걷는다. 추분을 앞둔 가을 바다는 인적 없이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검은 돌들을 밀쳐 내고 바다로 길이 하나 나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이 길이 해녀들이 다니는 바닷길인가.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해가 뜨면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는 길, 맑고 따가운 햇빛을 받으며 그 길의 끝까지 간다. 길은 바다 끝에 바투 다가서 사라지고 내 발길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춘다.

짙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며 내게로 온다. 이 바다로, 이 거침없이 달려드는 바다로 나의 외숙모 이모 외사촌은 그네들의 길을 내며 들어갔구나. 수십 년 지나서야 그네들이 뛰어들었던 바다가 비로소 보인다.

바다는 삶의 터전이나 이 길의 끝에 서서 바다로 뛰어들어야 했던 그녀들이 오죽했으면 “이승에서 저승으로 돈 벌러 간다”라고 했을까. 멀찍이서 물장난치며 기다리고 있으면, 물질하고 나온 그녀들이 돌로 깨서 바닷물에 씻어서 주었던 소라, 그 싱싱한 단맛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 없다. 혀끝에 감기던 바다향 가득한 그 맛이 그네들의 아뜩한 삶의 현장에서 캐낸 맛이어서 감히 잊을 수 없었다는 걸 이제서야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그 소라를 한 점 먹어보고 싶다니 철은 언제나 들려나.

바다를 등지고 돌아서니 마을 북쪽으로 반달 모양의 달산봉이 봉긋 솟아있고, 해안선 서쪽과 동쪽에 하얀 등대가 서 있다. 오름의 유연한 능선은 고향 사람들의 모나지 않은 심성을 닮아 느긋하다. 쉬엄쉬엄 올라도 좋겠다. 배의 들고 나는 길을 밝혀 주는 등대는 아득히 서 있다. 그저 우뚝 선 채로 묵묵히 지켜주는 장승과도 같이.

나의 뿌리가 시작되고 묻혀있는 땅 고향. 내가 태어나지 않아도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표선”이라고 답하며 늘 가슴에 묻어둘 곳. 여기에서 다시 길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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