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꽃 / 노혜숙

 

 

하필 그 장면일까. 지쳐 누운 잠자리에 어제 본 영화 속 노배우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화장기 하나 없이 골 깊게 패인 주름 그대로 민낯이다. 몇 겹이나 되는 목주름도 숨김없이 드러낸다. 팽팽한 긴장감이 사라진 육체를 헐렁한 옷이 감싸고 있다. 왕년엔 빼어난 미인이었을 것이다. 모진 풍화의 폐허 위에서도 한창 때의 영화를 짐작할 만한 균형과 조화의 흔적이 완연하다.

장편의 서사를 담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서 깊고 따스한 눈빛을 본다. 나무의 겨울눈처럼 옹골차고 힘 있는 눈빛이다. 인생 사계의 희로애락을 정면으로 끌어안고 감당해온 이의 결기가 보인다. 굳이 헛것으로 치장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에서 자기를 존재 이유로 굳게 선 사람의 단단함이 느껴진다.

이러저러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나는 메밀밭처럼 희어진 머리를 감춘다. 감춘다고 달라질 일도 없는데 부지런히 감추고 산다. 흰 꽃이면 어떠냐 싶다가도 정수리에 신작로처럼 길이 생기면 화들짝 놀라 색칠 작업에 들어간다. 산딸나무처럼 불러들일 벌 나비가 필요한 처지도 아닌데.

산딸나무 참꽃은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눈에 띄어도 볼품이 없으니 이목을 끌지 못한다. 살아남기 위해 헛꽃의 치장을 한다. 영락없이 꽃처럼 보이는 네 장의 흰 잎이 참꽃을 받쳐주는 헛꽃(포엽)이다. 진짜 꽃이 너무 작아 곤충을 유혹할 수 없으니 꾀를 낸 것이다. 꽃이 피는 5,6월이면 온통 나비가 앉아 있는 것처럼 흰 꽃받침을 펼친다. 홀딱 속아 넘어간 곤충들이 혼미하여 날아든다.

산딸나무의 위장은 윈윈의 수단이기 때문에 비난받을 일이 없다. 수분을 시켜주는 대가로 달콤한 먹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속임수에 넘어간 곤충들 역시 달가운 노동으로 받아들인다. 위장의 합당한 이유와 가치가 성립되는 것이다.

산딸나무는 치장의 목적을 잊지 않는다. 열매와 번성이 그것이다. 헛꽃이 본질이 되면 존재의 의미를 잃고 도태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소임을 다한 헛꽃은 기꺼이 자기를 버린다. 그 결단에는 더 풍성하고 눈부시게 피어날 봄날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있으리라. ‘희생’이란 꽃말의 헌사를 받아 마땅하다. 쌍방 간에 호혜를 주고받는 헛꽃의 지혜를 산딸나무는 어떻게 알았을까? 세상을 휘돌아 치지도 기웃대지도 않고 고요히 선 채 말이다.

세상엔 헛꽃 시늉을 해서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이 허다하다. 머니와 권력 명예 같은 헛꽃일수록 화려하고 매혹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근래 머니는 권력이나 명예를 포섭하여 최고의 신으로 등극했다. 세상은 헛꽃 이미지의 천국이다. 그 환상적인 이미지의 배후에서 머니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밤낮 없이 휘황하게 번쩍이는 온갖 헛꽃들에 유혹되지 않기란 쉽지 않다.

나는 한동안 산딸나무 헛꽃에 반하여 칭송해마지 않았었다. 무슨 까닭인지 사정을 알고 난 후에도 자꾸 헛꽃을 참꽃인 양 바라본다. 하긴 내가 속은 것은 산딸나무 헛꽃만은 아니다. 세상의 헛꽃에 미혹되어 분주하게 돌아친 세월이 적지 않다. 참꽃의 알속을 갖지 못한 채 치장으로 끝나는 헛꽃에 공을 들이는 일은 얼마나 허망한가. 삶의 한 방편으로서 헛꽃을 지닌다 한들 그것이 참꽃을 대신하진 못한다. 자기도 모르게 헛꽃을 참꽃인 양 착각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문제는 속은 줄도 모르고 헛꽃을 좇다 인생 종점에 도달하는 일이리라.

세상의 헛꽃은 탐할수록 허기진다. 그 헛꽃엔 산딸나무 같은 윈윈의 상도가 없다. 대체로 억압과 착취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진정성의 뿌리가 없기 때문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어떻게 겨울을 날 수 있을까. 그런데 왜 자꾸 나는 헛꽃에 눈길을 건네는가. 헛꽃의 안쪽이 겹겹이 미로이고 마침내 空한 것임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일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헛꽃 또한 인생의 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어내면서 듬쑥한 삶의 서사가 완성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자기 앞에 닥친 겨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노배우의 모습에서 흰 머리를 감추기에 급급했던 자신을 돌아본다. 흰 꽃을 감춘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겠는가. 산딸나무는 물론 천하절색이라도 그 시간의 순환 속에서 피고 지게 마련이다. 제아무리 화려한 헛꽃인들 그 헛꽃이 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법이다. 이제 헛꽃 내려놓고 그 자리에 저 노배우의 깊고 따뜻한 눈빛 하나 참꽃처럼 피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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