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무게 / 전오영

 

인기척이 들린다. 점점 가까워지는 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잠깐의 고요가 머무는가 싶더니 이내 노크소리가 들린다. 이어지는 목소리가 조심스럽다. 이사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찾아 올 사람이 없는데 혹시 옆집의 문을 두드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다시 책에다 눈을 둔다.

아까보다 더 세게 두드린다. 목소리도 한층 더 커졌다. 카프카의 『변신』을 덮고 현관문 앞에서 누구인지 확인을 한다. 옆집이라는 안내 목소리를 받으며 문을 연다. 이사 온 후 한 번 인사를 했던 이웃의 아줌마다.

친하게 지내고 싶었으나 평소 말땀이 없는 나는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내 심성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인지 그녀가 먼저 자기 집에서 차 한 잔 하자며 마음을 청했다. 두드리고 열리는 것이 어디 문뿐일까. 나는 그녀의 배려에 낯설음은 사라졌지만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가끔 복도에서 그녀를 지나칠 때 어디가 아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 본 얼굴은 건강해 보였다. 깨끔한 얼굴 또한 고생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선해 보이는 그녀의 어투와 얼굴은 무엇이든 거절할 수 없는 묘한 느낌 같은 게 있었다.

그녀의 집에 드는 순간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새소리였다. 새장 안에는 잉꼬가 들어 있었다. 방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은 봤어도 새는 처음이라서 어색했다. 새 역시 낯선 방문객 때문인지 안절부절했다.

서녘 창으로 들어온 석양이 잉꼬의 깃을 물들이는 적요 속에 그녀와 나는 마주 앉았다. 그녀는 어색함을 풀려는 듯 새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더 편안해졌다. 하지만 새장 안의 새는 내가 낯선 것인지 나를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출퇴근을 하며 미세하게 들렸던 새소리가 집 밖에서 들리는 소리인 줄만 알았었다. 그런데 그 진원지가 바로 이곳이었다니.

그녀는 둥근 탁자 앞에 있는 방석을 가져와 내 앞으로 밀었다. 무슨 차를 마실 것인지 물으며 싱크대 앞에 선 그녀의 몸이 몹시 야위어 보였다. 잠시 후 그녀는 작은 소반에 찻잔을 들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헤이즐럿 향이 방 안 가득 퍼지고 그녀의 등 뒤 쪽창으로 노을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찻잔을 들며 말을 이었다. 저 잉꼬는 자신의 암 수술 후 동무 삼으라고 남편이 데려온 것이라 했다. 차를 한 모금 홀짝이던 그녀가 다정하게 새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어쩐지 고독감 같은 게 어른거렸다. 낯설음에서 오는 고독. 나도 문득 내 방에 새 한 마리쯤 들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나는 새장 가까이 다가갔다. 배 부분의 민트색이 생기로웠고, 날개 깃은 연회색으로 차분해 보였다. 언제부터 새를 좋아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기억을 가져오려는 듯 창밖을 응시하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어느 해 겨울, 그녀의 아파트 베란다 창에 앵무새 한 마리가 부딪혔다고 했다. 죽은 줄 알았는데 다행히 움직였고, 불쌍한 마음에 그 새를 보살피게 된 것이 새와의 인연이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새와의 인연은 그녀를 밝게 했고, 새와의 소통은 새로운 경험이었다는 그녀의 말에서 생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인연이 깊어갈 즈음 새는 시름시름 앓았으며 그녀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말에 다다랐을 때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다. 무거운 기억을 꺼내려는 듯 숨을 고른 그녀는 말을 이었다. 새의 숨이 멈추는 순간 가벼워짐을 느꼈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영혼의 무게. 사람도 죽으면 21그램 정도로 가벼워진다는 던컨 맥두걸*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론상의 중량일 뿐 어떻게 그 무게를 느낄 수 있을까. 하물며 사람의 영혼 무게보다 몇백 배는 가벼울 새의 영혼의 무게를. 그러나 나는 그 무게가 양에 따라 감지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는 이별의 무게일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닿았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참 맑아 보였다.

이후 떠돌이 앵무새와의 이별을 경험한 그녀의 상심은 깊어졌고 암 수술 후유증 또한 나빠져, 이를 보다 못한 그녀의 남편이 지금의 새를 들인 것이라고 재차 설명했다. 새의 영혼의 무게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그녀나 그녀의 이별에 대한 슬픔을 보듬는 남편의 혜량이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나도 그녀를 위해 엉뚱한 생각 하나를 떠올렸다. 철재 새장에 갇힌 새와 투병의 새장에서 힘들어하는 그녀를 위해 숲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우선 꽃벽지가 그려진 벽 한 중앙에 서너 그루의 나무를 푸르게 심고, 그 곁에 이끼를 평생 반려로 업고 사는 바위를 그린 다음 틈틈 풀과 바람소리를 스케치, 스케치. 벽 끄트머리쯤에는 드문드문 나목과 고사목도 몇 그루 그려 넣는 것을 끝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 숲으로 이끈다.

꺄륵! 철장 안의 잉꼬가 소리를 낸다. 내 상상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인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금방이라도 숲속의 나무 꼭대기로 날아 오를 것만 같다.

* 미국 매사추세츠 병원 의사. 1907년 발표한 논문에서 영혼의 무게에 대해 언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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