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타인의 취향/ 고경서
꽃이 만발한 들녘이다. 다갈색 어둠이 한 쌍의 남녀를 껴안는다. 상기된 여자의 맨발이 깎아지른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근육질 몸매의 남자가 긴 머리카락 속에 감추어진 여자의 풍만한 어깨를 포근히 감싼다. 눈을 지그시 감은 여자를 향해 고개 숙인 남자의 황금빛 망토에서 거침없는 사랑이 쏟아져 내리는 듯하다. 그들의 입맞춤을 축복이라도 하는 양 점점이 뿌려진 별무리조차 들떠 보인다.
화가 쿠스타프 클림트의《키스》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다.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행동에, 대담하면서도 관능적인 사랑의 행위에 일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별들도 야음을 틈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는데…. 저렇듯 선정적인 몸짓으로 유혹할 것이 아니지 않는가. 불쑥 그림 속으로 뛰어든 나 자신이 쑥스러워졌다. 이런 내 기분과는 아랑곳없이 정작 그들의 표정은 꿈꾸는 듯 몽환적이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었지 싶다. 그림을 옆으로 일부러 돌려놓았다. 그러자 들판 가득 어둠이 차오르면서 아찔했던 벼랑은 순식간에 대지로 바뀌는 게 아닌가. 원색의 자잘한 꽃송이들을 이불삼아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이 서 있을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그런데도 강하게 각인된 그림 때문이었을까. 정겨움을 느끼다가도 어느새 아찔함으로 다가왔다. 달콤한 사랑에 빠져 자칫 발이라도 헛디뎌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칠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방안은 이미 그들이 내뿜는 뜨거운 숨소리로 꽉 차면서 에로틱한 분위기로 변해갔다.
그림의 위치를 조금 달리했을 뿐인데 느낌이 새롭다. 그러고 보니 배경은 바라보는 이의 안목과 요령이나 처지에 따라서 이해되고 감상하는 법이 달라지는 것 같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사람의 마음이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는가 하면, 호기심을 자극해 미적 교감에 이르게 하는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잠깐 피웠다 금방 시드는 꽃에서 머무르는 아릿한 통증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림 속의 배경은 주인공들을 돋보이게끔 만들어주는 자기희생적인 사랑이요, 숨은 배려일 것이다.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는 장치라고나 할까.
지인의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한다. 최고의 학벌과 능력을 가진 사윗감이라고 자랑이 끊이질 않는다. 좋은 가문에 재력까지 겸비한 사돈댁이라고 말할 때는 부럽기조차 하다. 그녀는 딸이 혼기에 접어들자 여기저기 결혼상담소에 의뢰했다. 몇 번의 맞선이 오가더니 누구나 욕심낼만한 명문가 집안의 사위를 얻게 되었다. 머지않아 식장에 다소곳이 앉아있을 그녀를 떠올리자 그간의 노고가 빛나 보이기까지 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결혼에 대해 환상과 기대를 가진다. 그래서 그런지 배우자를 고를 때 사랑보다 물질적인 조건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 마련이다. 평범한 환경에서, 동일한 조건에서는 성공한 인생을 보장받기가 쉽지 않다. 물론 열심히 노력하여 자수성가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좋은 조건이 미래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신분 상승의 지름길 역할에 도움을 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작금의 결혼 풍속도에서 재물을 배후로 하는 젊은이들을 나무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맞춤 배경이 사랑의 농도마저 조절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이제 지인의 딸도 몸에 꼭 맞는 기성복처럼 근사하고 멋진 배경을 입은 셈이다.
배경은 누군가 뒤에서 돌봐주는 힘이다. 그것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듬직한 조력자이자 버팀목이다. 나는 이따금 '배경에 서다' 와 '배경을 이루다'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곤 한다. 이는 그림이 나를 움직이고, 배경이 마음을 사로잡는 것처럼 시각의 차이다.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있는 듯 없는 듯 제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나는 '배경을 이루다'에 속할 것이다.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때는 삶의 그림 속으로 뛰어들어 배경에 우뚝 서고 싶지만, 늘 배경으로 머물 뿐이다. 강렬한 후광을 받는 삶보다 누군가에게 다가서는 후원자가 될 수 있을 때, 삶은 보다 풍요롭고 배경다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보기도 한다.
그리움에도 배경이 있다. 내 그리움의 배경은 여름바다이다. 한때 어설프게 벗어던진 세월이 여기저기 섬이 되어 떠다니고, 빛바랜 기억들은 반짝거리는 물살을 헤치며 섬들을 찾아 나선다. 실랑이를 벌이던 물빛조차 따돌리고, 아릿한 파도 소리만 귓전에 쟁쟁할 때 나는 고향 바다에서 놓아버린 것들을 만난다.
어찌 보면 클림트의 격정적인 사랑도 절정의 순간보다 실연의 상처에 더 깊이를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림 속의 배경을 절벽으로 표현함으로써 욕망에 기댄 사랑의 덧없음을 경계했을까. 누가 장밋빛 인생을 꿈꾼다면 화려한 배경을 전제로 한 결혼에 한번 도전해 보라며 배경이 넌지시 일러주는 듯도 하다.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책임감이 따른 결혼이듯이 사랑도 인연의 불꽃과 그 음영까지도 보듬어 안을 때 행복과 기쁨은 배가 되리라. 아끼지 않는 열정으로 생의 무대에서 서로에게 배경이 되는 삶은 정녕 아름다움으로 빛날 것이다.
《키스》를 멀찍이 두고 본다. 남자 품에 안겨있던 여자가 눈꺼풀을 열고 고요히 걸어 나온다. 오래된 연인이라도 된 듯 은은한 조명등을 밝히면 홍조 띤 낯빛이 번져올 것만 같다. 문득 삶에 물너울이 서고, 해조류가 떠밀려올 때면 온몸으로 흘러든 사랑의 물빛에 어수선한 속내를 비춰볼 작정이다. 그러면 비좁은 내 가슴에 금빛 물결이 황홀한 배경으로 자리 잡게 되겠지.
키스가 일순 부싯돌이 된다. 딱딱한 몸을 부딪쳐가며 불씨를 팍팍 터뜨린다. 침침하던 방안이 환하게 타들어간다. 아!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