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 한경희

 

잠을 설친 지 한 달째다. 매번 숙면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에서 인심 사나운 문지기에게 퇴짜를 맞는다. 설핏 잠이 들어 꿈도 현실도 아닌 판타지의 세계를 헤매다가 갑자기 찬물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말짱해진다. 두 시, 세 시 반, 이제 아침이겠지 싶어 눈을 떠 보면 다섯 시 언저리. 내 생체시계가 단단히 고장 난 모양이다.

친정집에서 가져온 만화잡지를 집어 들었다. 얼마 전 엄마는 작은방의 책장을 치운다며 필요한 것들을 챙겨가라고 했다. 내 초등학교 때 일기부터 상장, 성적표, 동화책까지 유년의 흔적이 꽉 차 있었다.

맨 아래쪽 구석에 두툼한 만화책이 보였다. 엄마에게 조르고 졸라 샀던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잡지 <보물섬>이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져 폭삭 꺼질 것만 같아 조심스레 빼냈다. 표지가 덜렁거리기는 했지만 삼십 년이란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온전했다. '고교외인구단'의 까치가 한쪽 눈을 윙크하며 나를 쳐다본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 시절로 빨려 들어갔다.

갑자기 푹 떨군 고갯짓에 놀라 정신이 퍼뜩 든다. 밤에도 이렇게 잠이 들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조용해서 졸린 것 같아 TV를 크게 틀었다. 5시 뉴스 타이틀이 흐른다. 밤에 못 잘까 봐 눈을 끔벅이며 필사적으로 졸음을 쫓았다. 국화차 한 잔을 마시고 다시 만화에 집중했다. 눈이 스르륵 감긴다. 몰입할수록 되레 눈이 무거워진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해도 이맛살만 찡그려질 뿐 꿈쩍하지를 않는다. 바르르 떨리는 속눈썹 사이로 햇빛이 어른거린다. 얼마나 잤을까. 멀리서 벨 소리가 들린다.

“띵동, 띵동띵동, 띵동띵동띵동, 띵동띵동…” 누군지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네가 안에 있는 걸 알고 있다.'는 듯 끈질기다.“누구세요?”침침한 눈을 비비며 바라본 현관 모니터 속에 삼십 대 초반의 남자가 서 있다.“저… 문 좀 열어주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모든 잡상인의 한결같은 멘트다. 나도 준비해둔 말을 내뱉었다.“지금 손님이 계세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오세요.”

소파로 돌아와 읽던 만화책을 집어 들었다. 간 줄 알았던 남자가 다시 벨을 누른다.

“잠깐이면 돼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손님이 있으니 다음에 오라고요.”신경질적인 내 대답에 남자도 소리를 질렀다.

“그림자를 사러 왔다고요.”잠이 덜 깨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네? 뭐라고요?”

재차 물어도 같은 대답이다.

얼마 전부터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 아파트에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남자는 양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안절부절못했다. 한참이 지나도 내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한숨을 쉬더니 계단을 내려갔다. 무서우면서도 젊은 사람이 안됐다 싶다.

낮잠을 잤으니 오늘 밤도 뻔하겠다. 운동으로 피곤해지면 좀 나아질까 싶어 트레이닝복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를 세 바퀴만 돌 참이었다. 모퉁이를 돌 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덥석 내 팔을 붙잡았다.

“저한테 그림자를 파세요. 제발요.”

검은색 야구모자, 뿔테안경, 거뭇거뭇한 수염하며 현관 모니터 속 그 남자다.“뭐예요, 놔요." 하며 뿌리칠수록 남자의 손아귀 힘은 세어졌다. 나는 숨이 멎고 정신이 아찔해져 주저앉고 말았다. 남자는 그런 내 모습에 당황한 듯 거듭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팔을 풀지 않는다. 놀라게 할 의도는 없었다며 자기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제가 돈 많이 드릴게요. 가진 거 전부 다요. 저한테 그림자만 파세요.”

남자는 쉴 새 없이 말을 잇는다. 집안 형편상 대학을 못 가 부모만 원망하며 살았다고 한다. 군대 제대 후 취직도 못 하고 남들 다 하는 데이트 한 번 못 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넉 달 전 사십 대 중반의 낯선 남자가 접근하더니 부자가 되고 싶지 않느냐고 묻더란다. 어마어마한 돈을 주겠다며 그림자를 팔라면서. 그깟 쓸모도 없는 그림자, 없으면 어떠냐 싶었단다.“그림자를 팔고 바로 돈을 쓰러 나갔어요. 고향에 돈도 부쳐드리고요.”

처음에는 돈 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람들이 자기를 피한다는 걸 알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등 뒤에서 수군댔다. 아이들은 그림자 없는 귀신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석 달째 집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남자는 이젠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림자만 되찾을 수 있다면.“당신 그림자를 안 팔아도 좋아요. 돈이 궁한 사람 한 명만 소개해 주세요.”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싶다. 빨리 남자에게서 벗어나야겠는데 풀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남자는 연습이라도 한 양 나머지 말을 쏟아냈다.“이제 돈, 필요 없어요. 그림자가 더 소중해요. 팔 사람을 소개해 주면 당신한테 성사비를 줄게요.”

남자의 손아귀 힘이 순간 느슨해졌다. 나는 박차고 일어나 있는 힘껏 뛰었다.“저기요, 저기요, 가지 마세요.”남자가 애절하게 나를 불렀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아파트 상가 미용실로 뛰어 들어갔다. 미용사는 무슨 일이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밖을 살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빨리 문 잠가요. 빨리.”

다행히 남자는 쫓아오지 않았다. 물 한 잔을 얻어 마시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미용사는 손님들에게 그 남자 소문을 종종 들었다며 놀란다. 나는 머리 손질을 마친 옆 동 아주머니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아주머니 팔을 붙들고 집을 향해 잰걸음을 쳤다. 곰곰 더듬어보니 정말 남자와 나 사이에 그림자 하나만 아른거렸던 것도 같다.

나는 한동안 집 밖에 나갈 때마다 주변을 살폈다. 멀리서 인상착의가 비슷한 남자만 보여도 심장에 납덩이 하나가 뚝 떨어졌다. 남자는 몇 달 동안 보이지 않았다. 가족이 정신병원에 보냈거니 안심할 무렵이었다.

슈퍼에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가고 있었다. 누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보는 순간 ‘아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미친 남자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이번엔 절대 주저앉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나는 뒤로 물러나 집을 향해 달렸다. 허겁지겁 뛰는 바람에 슬리퍼 한 짝이 벗겨진 줄도 몰랐다. 남자는 끝까지 뒤쫓아 오며 내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저 그림자 샀어요. 스물아홉 살 먹은 백수한테요. 자긴 그림자 따위 필요 없다고 돈만 많이 주면 상관없다더라고요.”역광을 받은 남자의 긴 그림자가 내 앞까지 아른거렸다.

현관문을 잠그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TV를 켜고 나갔는지 화면 속에서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왕왕거린다. 욕실로 들어가 발을 씻으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희미한 내 그림자가 보인다.

두통약을 먹고 소파에 널브러졌다. 그 남자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를 때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이 뒤죽박죽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꿈도 현실도 아닌 세계에서 나는 남자에게 계속 쫓긴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그림자를 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하더니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가늘게 뜬 속눈썹에 노랗게 파고든다. 그 밑으로 어렴풋하게 만화잡지가 보인다. 노란빛이 내 눈 속에 꽉 찼을 때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귀에 익은 뉴스 진행자의 클로징 멘트가 희미하게 들린다. TV의 화려한 불빛이 날카롭게 어둠을 찌른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얼마를 잔 걸까. 미간에 힘을 주고 겨우 눈을 떴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옆구리에 펼쳐진 <보물섬>이 툭 하고 떨어진다.

물먹은 솜 같은 몸을 일으켜 만화책을 집어 들었다. 신년 맞이 특선만화 <도둑맞은 그림자>*의 마지막 페이지다. 초점이 채 잡히지 않은 눈에 마지막 문구가 들어온다.‘행복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너무 당연해서 진짜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 만화잡지 <보물섬>에 실린 김민 만화가의 단편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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