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의 시간 / 강표성
따스한 정물화다. 섬돌 위에 나란히 놓인 고무신이 먼 여행에서 돌아온 배 같다. 그 안에 담긴 햇살과 그늘조차 고즈넉하다. 앵두가 우박처럼 떨어져 내리던 우물가나 배불뚝이 항아리들이 즐비한 장독대가 떠오를 법도 하건만, 고향 집 하면 섬돌 위의 하얀 고무신이 먼저 달려온다.
여자 고무신의 멋은 살짝 들린 앞코에 있다. 선이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하다. 거기에 외씨버선의 수눅선이 얹히면 단정하기도 하거니와, 보일락 말락 스치는 발등과 발부리의 선이 나풋나풋하다.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쾌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어려서부터 할머니의 고무신 당번을 자처했다. 오일장이라도 가실 눈치가 보이면 지푸라기를 한 줌 쥐어 들고 우물가로 달렸다. 억센 지푸라기를 힘껏 비벼 신을 닦으면 물기 머금은 몸매가 반짝반짝 빛나고, 내 마음도 윤이 났다.
장에 가신 어른을 기다리던 아이들은 신작로가 보이는 냇가에서 고무신을 가지고 놀았다. 그것은 잡은 물고기를 넣어 두는 임시 어항인가 하면, 버릇없는 강아지에게는 날아다니는 회초리였다. 조무래기들은 모래밭을 가로지르는 기차놀이가 시들해지면 뱃놀이로 갈아탔다. 한들한들 떠 가던 조각배가 갑자기 휘돌아가기 시작하면 아이는 새가슴이 되어 아래로 내달렸다. 또, 신을 잃어버리면 큰일이다.
커가면서 운동화로 바뀌었지만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신고 싶었다. 구두만 신으면 근사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라도 되는 양, 분홍색 구두를 사놓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반 뼘도 넘는 통굽이 무슨 숙녀 자격증이라도 되는 듯이, 턱을 내밀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나의 첫 구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세계로 주인을 데려다주리라.
키를 반 뼘 올린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았다. 끝없는 구두 행렬에 다가서게 되었을 뿐이다. 더 견고하고 가파른 시간이 이어졌다. 빛나고 멋있는 그것들 틈에서 뒤처질까 봐 까치발로 서고, 순서에 밀릴까 봐 동동거렸다. 광을 내고 뒷굽을 갈아보지만, 돋보이고 싶을수록 뒤뚱거렸다. 높이 올라서고 싶은 만큼 아슬한 구두의 시간이 이어졌다.
긁히고 닳은 자국들이 낯익다. 나 또한, 변방을 떠돌면서 흠집에 익숙해갔다. 중심에 대한 갈망으로 줄달음질해도, 몸은 굼뜨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구두의 뒤축을 접듯 마음을 접은 적도 숱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구부러지지 않는 마음 한 자락 꾸욱 눌러 담으며 한숨 대신 몸무게를 실었다. 애써 웃기도 했다. 물집 잡히고 굳은살 박인 흔적이 내 안에 고여갔다.
다음 날에는 구두를 신고 싶지 않았다. 아침이 오는 게 싫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를 내며 거리에 나서는 일이 피곤했다. 오징어처럼 방바닥에 납작 들러붙고픈 나날들.
비탈길을 헤매는 날들은 꿈자리조차 뒤숭숭하다. 맨발로,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 헤맨다. 힘들게 돌아다니다 남의 것으로 벌충해보자고 꾀를 내고선 수꿀하기도 하고. 이에 보란 듯이 출렁출렁 떠내려가는 고무신이다. 쾌속정처럼 달아나는 것을 애타게 쫓다가 꿈에서 깬다.
이런 날은 위로가 필요하다는 증거다. 큰마음 먹고 고향 집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불쑥 찾아갈 데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구두를 벗고, 양말을 벗고, 고무신을 찾아 신는다. 그래야만 집에 돌아온 것 같다. 작업용 고무신이 착 안긴다. 펑퍼짐한 앞볼이 믿음직스럽고 우직해 보인다. 먼 들녘에서도 너털웃음을 건네는 이웃처럼 스스럼없다.
마당 가로 나간다. 감나무 그늘을 서성이다가 대나무 울타리를 천천히 돈다. 진흙 덩이처럼 엉켜있던 생각들이 비켜서고 땅의 푸른 기운이 스며든다. 굳은 마음도 녹아내리는지, 새들의 은빛 지저귐이 톡톡 날아들고.
고무신은 언제나 편안하다. 제 방식으로 길들이려 하지 않고 맨몸으로 끌어안는다. 본래 모습이 중요한 거 아니냐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낮음이 초라하지 않듯, 빛나지 않음이 부끄러움은 아니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됐다됐다, 토닥여준다. 마치 그 옛날의 할머니 같다.
갈망이란 이름으로 발서슴하던 자신을 돌아본다. 구두 굽을 높이듯 스스로 높아지고 싶었다. 자신이 빛나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은 배경이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독한 킬힐을 신고서라도 중심에 우뚝 서고자 했다. 볼품 사납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욕심이 안개처럼 자욱했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영혼에도 굽을 댈 수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마냥 빛나고 싶었고,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욕망은 소금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났다.
접힌 구두 뒤축을 펴듯 마음을 펴본다. 누구도 중심을 온전히 차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로지 흘러갈 뿐이다. 사람은 움직이는 물결 같은 것. 기슭을 넘을 수 없는 물길처럼 사람은 그렇게 흘러간다. 시간만이 중심이다. 감히, 시간의 배경이 되기보다는 그것을 배경 삼길 원했으니. 무모한 꿈이었지만 그 가상한 모반 끝에 낮아짐의 의미를 되새긴다.
고무신을 신으니 발아래 세상이 쉬 읽힌다. 높아지려 애쓴 세월에 미안하다. 낮은 자리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것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옹골차고 기특하다. 돌멩이 하나, 부러진 꽃대궁 하나도 함부로 대할 일이 아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절로 하심하게 된다. 가장 낮은 자리가 큰 자리임을 알겠다.
신발 문수가 더 이상 커지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뒤돌아보니 참 많이 헤맸다. 길인가 했으나 늪이었고, 내 터전인가 싶었으나 남의 자리였던 적도 많다. 이리 에돌아가는 과정도 괜찮다. 더 높아지리라 곧추세우던 마음을 내려놓고, 멀리 천천히 가는 걸음에 익숙해지고자 한다. 갈망이란 이름 대신에 고무신을 친구 삼아 안온한 흐름으로 나아가고 싶다.
주위를 둘러본다. 잊었던 소리가 들리고 가려진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낮은 것들의 묵묵한 흐름에 발을 맞춰본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