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향기가 되다 / 조헌

 

 

발우공양은 절집의 전통 식사법이다.

사찰에선 먹는 것도 수행인지라 그 절차가 엄격하고 까다롭다. 묵언默言은 기본이고 반가부좌에 허리를 편 채, 복잡한 순서를 따르다 보면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벌을 서는 듯 힘이 든다. 익숙해지면 모를까 처음에는 진땀이 솟고 오금이 저려 고행이나 진배없다.

작년 여름, 인연 있는 절에서 한 달간 출가 체험을 한 적이 있다. 엄한 규율로 소문난 그곳에선 하루 세끼 모두 발우공양을 해야 했다. 빡빡한 일정과 힘든 울력으로 끼니때마다 배가 고팠지만 정해진 과정을 꼬박꼬박 따라야 했으니 여간 버거운 노릇이 아니었다.

그러나 허기를 채우는 단순한 행위 속에도 진솔한 가르침이 숨어 있었다. 자신을 똑바로 살펴 탐욕에 꺼둘리지 않겠노라 수없이 다짐했건만 작은 욕심에도 쩔쩔매던 나에겐 따끔한 경책警策이요, 커다란 죽비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아직도 가슴 뭉클한 감동이 기억 속에 선연히 남아있다.

지정된 자리에 앉아 발우를 펼치며 시작되는 공양은 물[천수]​과 밥 그리고 국을 차례로 받게 된다. 이 세 가지는 배식의 소임을 맡은 사람이 정해져 있어 윗자리부터 차례대로 진지進旨하며 내려온다. 대중들은 앉은 자리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양만큼을 그들에게 받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찬상은 달랐다. 네 사람당 하나씩 마련되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람 사이에 놓였다가 두 사람이 반찬을 덜게 되면 세 번째와 네 번째 사람 사이로 옮겨져 그들도 반찬을 가져가게 된다. 대개 찬상에는 여섯 종류의 음식이 올랐다. 무침과 부침, 그리고 튀김과 김치가 담기고 단무지와 과일이 나머지를 채웠다. 네 사람이 나누면 적당한 양의 음식이 늘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처음 발우공양을 할 때다. 나는 네 명 중 두 번째 자리였다. 국을 받으며 앞에 놓인 찬상을 훑어보았다. 근데 과일 그릇에 담겨 있는 네 쪽의 사과 중 하나가 유난히 작았다. 세 개는 4분의 1쪽이었는데 나머지 하나는 8분의 1쪽이었다. 난 두 번째 앉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첫 번째 사람이 그랬듯이 큰 사과를 집어 내 찬그릇에 옮겨 담았다. 당연히 작은 사과는 네 번째 사람의 몫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다음번 공양 때도 과일 중 하나가 눈에 띄게 작았고 그 다음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불현듯 고개를 들어 다른 찬상들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아! 우연이 아니었구나' 지금껏 공양간 사람의 실수였거니 생각했는데 틀린 생각이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작은 걸 하나씩 끼워 놓은 게 분명했다. 그때서야 세 번 다 개의치 않고, 욕심을 부렸던 나의 아둔함이 부끄러웠다. 아울러 번번이 작은 걸 먹어야 했던 네 번째 사람에겐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다음 공양을 할 때였다. 왜 미처 그걸 깨닫지 못했을까 후회하며 이번에는 내가 필히 작은 것을 집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역시 과일 그릇 속에는 작은 것 하나가 끼어 있었다. 국까지 받은 후, 첫 번째 사람을 쫓아 반찬을 담고 있는데, 아뿔싸! 그만 첫 번째 사람이 작은 사과를 찾더니 자기 그릇에 옮겨 담는 것이 아닌가. 그도 이제야 깨닫고 일부러 그걸 찾았던 것일 게다. 난 한발 늦은 아쉬움에 그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그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이번에야 비로소 큰 과일을 먹게 된 네 번째 사람의 목례를 받으며 그는 눈을 찡긋거렸다. 당연히 다음번에는 내가 작은 걸 먹었고 또 다음에는 세 번째 사람이 그걸 가져갔다. 다른 조 사람들도 우리 조와 마찬가지로 작은 과일을 공평하게 나눠 먹으며 서로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깨닫는 데는 이렇듯 시간이 걸리나 보다. 그 시간 이후 공양시간엔 은은한 향기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사람들 자리마다 송이송이 연꽃이 피어올라 그랬던 것일까? 맑은 꽃향기가 사람들 몸에서 풍겨 나왔다.

발우공양은 대중이 함께 하지만 실은 혼자 먹는 밥이다​. 간소한 음식을 자신의 발우에 담아 묵언 속에 행하는 고요한 식사법,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수행이었다. 공양물에 대한 감사와 함께 자신의 덕행을 반성하는 시간이었고, 천천히 씹고 삼키면서 현재의 자기를 알아차리기 위한 경건한 의식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주변에 대한 감사와 배려 그리고 평등심이 켜켜이 담겨 있었다.

작은 과일 한 쪽으로 남에 대한 배려를 일깨워준 발우공양, 하루 세 번 수행자 모두를 무한 행복으로 이끌었던 법열法悅의 자리였다. 깨달음은 경전의 위대한 구절이나 스님의 법문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