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노래가 지지직거리며 흘러나온다. 오래된 엘피판에서 가끔 듣는 남인수의 ‘꼬집힌 풋사랑’이다. 즐겨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옛날 장안의 기생 중에는 ‘꼬집힌 풋사랑’을 듣고서 자신의 신세에 빗대어 자살하려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하니 노래가 남인수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꼬집힌 풋사랑’을 들으니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둔 겨울방학 때였다. 우리 집에 가끔 해가 질 무렵에 오셔서 술을 자신 후 밤늦게 가시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추레한 작업복을 입고서 올 때마다 소주를 두 병들고 오셨다. 선친과 순배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거나, 늦으면 함께 주무시고 새벽바람 따라 일터에 가셨다.
어느 날, 아저씨가 나에게 속에 탈이 나서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며 자기가 다니는 직장에 한 달간 대신해달라고 하셨다. 한사코 거절하였다. 몇 번이나 찾아와 일을 못 하게 되면 다른 이에게 일자리가 뺏긴다고 애걸복걸하였다. 결국엔 선친의 강권에 못 이겨 승낙하고 말았다.
한 달간 일할 곳은 변두리에 있는 가축 시험장이었다. 아저씨가 일했던 토끼장과 양계장을 맡았다. 집에서 일터까지 버스로 왕복 세 시간이나 걸려서 출퇴근하기가 버거웠다. 마침 관사에 조그만 방이 하나 있어서 그곳에 머물렀다.
오랫동안 비워 둔 방은 냄새가 나기도 하고 바람이 몹시 부는 밤에는 방문이 덜컹거렸다. 더 힘든 것은, 인부들이 퇴근하자마자 내 방에서 내기 화투를 하였다. 나는 방 안에서 원하지 않는 담배 냄새를 맡아야 했고, 그들이 마시는 술 심부름을 도맡았다.
막걸리를 파는 마을 어귀까지는 한참 걸렸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들 앞에선 싫다는 내색은 못 하고 들판을 걸으면서 투덜거렸다. 점방 여주인은 두 되나 들어가는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붓고는 추운 밤에 고생 많다면서 한 사발 퍼주었다. 꿀꺽 마시는 막걸리와 멸치 서너 마리가 찬 몸을 따뜻하게 지펴주었다.
사무실에는 노처녀가 한 명 있었다. 여직원은 점심때 노모가 만든 칼국수를 직원들에게 먹이려고 집으로 초대하였다. 뒷날 들은 이야기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은 연례행사처럼 하였다. 낯가림하는 나는 주저했으나 직원들의 등쌀에 따라가게 되었다. 굵게 빚은 면발 · 애호박 · 감자를 듬성듬성 넣은 칼국수는 진미였다. 좀 있으니 한 여고생이 커피를 가져왔다. 갸름한 얼굴과 후리후리한 몸매가 참하여 커피를 마시면서 훔쳐보았다. 뜨락에 내린 눈 같은 하얀 피부와 겨울밤보다 더 까만 눈동자에 그만 주눅이 들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일은 뒷전이고 여고생의 모습을 지울 수 없었다. 이름을 몹시 알고 싶어서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 일꾼에게 은근슬쩍, 어제 먹은 국수가 맛이 참 좋더라, 여직원의 동생은 몇 되느냐고 물었다. 숨차게 일하던 일꾼은 쇠스랑을 옆에 세우고서, 시내 S 여고에 다니는 P밖에 없다고 하였다. 나는 그제야 여학생의 이름이 P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시내에 있는 S 학교에서 공부하니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P를 생각하며 가슴앓이만 하였지. 정작 만나려고 하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P는 집에 있으면 어지간해서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어디에선가 들었다. 나도 일터에서 한 발짝도 쉽게 나설 수 없으니 난감하였다. P를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뜨거워졌다.
하루는 감기 기운이 도져서 약국에 가는 도중에 P의 집을 지나가게 되었다. 문패는 없었으나 다행히 고지서가 철문 우편통에 있었다. 고지서에 있는 집 주소를 베꼈다. 한 달은 화살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더 있고 싶었다. P를 생각하면 아무리 춥고 구질구질한 일도 즐겁게 할 것 같았다. 나는 아저씨가 좀 더 오랫동안 입원했으면 하는 온전치 못한 생각을 품었다. 아저씨는 한 달이 되자마자 어김없이 나타나셨다. 짐을 꾸리는 나는 해방감보다 자꾸만 처량하였다.
집에 도착하자 먼저 P에게 편지를 쓰기로 하였다. 막상 적으려니까 무엇부터 써야 할지 몰랐다, 시집을 보고 좋은 글이 있나 찾아보기도 하고, 명사들이 적은 연애편지도 열심히 읽었다. 요즘처럼 메일이나 문자로 보낼 수 없는 시절이라서 편지지에 내 마음을 담았다.
내 딴에는 공들여 다섯 번 보냈으나 소식이 없었다. 어느새 겨울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지나갔다. 나는 하교 시간을 맞추어서 S 여고 담벼락에 서성거렸다. 학생들은 참새 떼처럼 재잘거리며 바깥으로 나왔다. 한결같이 교복을 입고 있어서 P가 눈에 띄지 않았다. 설령 P를 본들 곁에 갈 용기마저 나지 않았다. 선생님 한 분이 먼발치에서 교편을 들고서 오도카니 서 있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학교 부근 버스 정류소로 갔다.
이곳에 있으면 P를 만날 것 같았다. 잠시 후 P가 친구와 둘이 오다가 나를 보고서 생긋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P는 친구를 보내고 내 곁으로 와서 함께 걷자고 했다. P의 뜻하지 않는 호의에 멍멍하였다. 우리는 잠시 시내를 거닐다가 빵집으로 들어갔다.
P는 한 번 더 생긋 웃더니 그간의 안부를 묻더니만, 만나서 말하는 게 낫지 싶어서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제야 내가 보내준 편지를 보았다는 것에 안심하였다. 말수가 적다는 P는 소문과 달리 배우처럼 우아한 표정으로 유창하게 말했다. 나는 머쓱했고 P는 말을 이어갔다. 남자 친구가 군대 갔다느니. 두 사람의 관계를 양가의 집에서 알고 있다느니 하였다. 헤어질 무렵 P는 또렷한 어조로, 한 사람만 기다리겠다.라고 하였다.
나는 사랑하는 정인만 기다리겠다는 성스러운 말에 아무 대꾸도 못 하였다. 그런 말을 하는 P의 얼굴이 오히려 거룩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