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을 꿈꾸며 / 한경희

 

 

지겹다. 어제는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와 빨래를 했고, 오늘은 순서만 바꿨을 뿐이다. 권태로운 일상과 일탈의 유혹은 샴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열흘만 낯선 곳에서 푹 쉬어봤으면. 느지막이 일어나 민박집 할머니의 정갈한 밥상을 받고, 해변에서 책을 읽다 살포시 낮잠에 빠져들었으면. 한량처럼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음악을 듣고···.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유명한 의사 유튜버가 있다. 지난번 영상이 구독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의사는 중년 여성의 통증과 우울증이 대개 살림에 치여서 온다고 진단했다. 해결책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만 집안일을 하라고 했다.

‘이분 말씀대로 하려면 일단 식구 수대로 일주일을 버틸 옷과 그릇이 있어야 함’, ‘두 끼만 설거지 안 해도 산더미로 쌓이는데 개수대가 어마어마하게 커야 가능’, ‘일주일 치 빨랫감을 널어 말릴 공간 확보는 필수겠네요’, ‘초대형 옷장도 있어야 해요. 집이 어마어마하게 커야 우울증 안 걸릴 수 있음’, ‘이건 부잣집 아줌마들을 위한 민간요법?’, ‘에이, 부자면 도우미가 있어서 일주일이나 버틸 이유가 없지요‘ 등의 댓글과 대댓글이 이어졌다.

위생적으로 접근한 댓글도 ‘좋아요’를 많이 받았다. ‘한 끼만 설거지 안 해도 집안에 퀴퀴한 냄새 퍼져요. 장마철에는 벌레도 꼬이고요. 빨랫감도 묵혀두면 곰팡이 핍니다’, ‘저 의사 말대로 하려면 식구들 건강과 피부는 타고 나야겠군’ 등등.

의사를 직접 저격한 댓글도 넘쳐났다. ‘이 양반아, 아무리 집안일에 무지해도 그렇지 일주일 치를 한꺼번에 하면 오히려 더 병나요’, ‘결혼식 피로연 수준의 설거지를 한 번에 해치우라는 건데 장난하나’, ‘박사님, 그간 감사히 들었지만 오늘 영상은 현실과 괴리가 있는 헛소리라 말씀드리고 구독 취소합니다’, ‘왜 이리 다들 흥분하시나. 집안일 살살 해라 그런 취지잖아요’라는 옹호성 댓글은 극히 일부였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잔소리를 해대는 소파 붙박이 남편에게 감정 이입한 주부들이 성토의 장을 펼쳤다.

어디로든 떠나볼까 궁리해 보다가도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일에서 도망쳐도 일은 도망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탈이라 해 봤자 늦게까지 TV 보기, 세수 안 하기, 컵라면으로 때우기 따위가 전부이다. 소심한 일탈이 처량하지만 기계 같이 돌아가는 일상에선 그나마 단비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학수고대하던 고3 시절이었다. 성인이 되면 하루하루 재밌는 일들이 넘쳐날 줄 알았다. 우리는 틈만 나면 책상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며 버텼다. 시골에 사는 친구 몇이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은밀한 제안을 해왔다.

"얘들아, 4교시에 옆 반과 일본어 수업 합반하잖아. 몇 명 빠져도 선생님은 모를 거야."

학교를 빠져나가는 길은 하나였다. 돌계단을 거쳐 정문 수위 아저씨를 지나는 통로. 교칙상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교문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어림없는 소리라고 뒤돌아서려는데 친구가 속닥였다. "1층 화장실 창문으로 넘어가면 돼."

거기서 샛길로 조금만 가면 자취방이 나온다고 했다. 점심시간까지 놀다가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오자고 꼬드겼다. 만약에 걸리면? 파장이 클수록 달콤함도 큰 법. 열아홉 청춘들은 도시락을 챙겨 1층 화장실로 향했다.

수업 종이 울리고 학교가 조용해졌다. 평소 선머슴 같던 친구가 앞장섰다. 순식간에 수돗가 세면대를 밟고 창틀에 올라탔다. 바깥을 내려다보더니 베를린 장벽이라도 넘을 것 같던 기개는 어디 가고 주저했다. 땅바닥까지 너무 멀단다. 한시가 급한데 무슨 소리냐고, 개 중 키 큰 내가 손을 뻗어 엉덩이를 밀었다. 요란하게 쿵 소리가 났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도시락을 창문 밖으로 넘기고 막 뛰어내리려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꼭 종이 울리고 나서야 볼일 보는 애들이 있다. 창틀에 걸친 다리를 밖으로 내빼려는 순간, 억센 손이 발목을 잡았다. 직감했다. ‘아, 학생이 아니구나.’ 입술을 깨물며 뒤돌아본 나는 헉 소리를 내고 말았다. 종일 매를 놓지 않는 학생지도부장 선생님이었다.

내려오지도 넘어가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은 “뭐하냐?”라며 사태 파악을 하느라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그게 그러니까요. 여기를 넘을 수 있나 없나 친구랑 내기했거든요. 전 넘는다는 것에 걸었고 친구는 창문이 작아서 못 넘는다고···."

교사 전용을 놔두고 학생 화장실에 올 정도로 다급했던 선생님은 훈계보다 볼일이 우선이었던지 손을 풀었다. 종종걸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가며 소리쳤다.

"얼른 교실로 들어가. 종 친 지가 언젠데 그런 장난을 쳐."

나는 “네에.”라고 우렁차게 대답하고 얼른 뛰어내렸다.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밀린 설거지를 하면서 추억의 자취방으로 내달리는데 남편이 끼어든다.

"여보, 저녁 안 줘? 빨래도 안 했네. 양말이 하나도 없잖아."

일탈은 고사하고 몽상조차도 쉽지 않다. 의사 유튜버가 이렇게 말했다면 여성 구독자 폭증으로 실버버튼을 받았을 것이다. ‘남편들과 자녀 여러분, 다 필요 없고 묵묵히 집안일에 동참하십시오. 엄마의 등짝 스매싱은 사라질 것이며, 아내의 눈빛에서 꿀이 떨어질 겁니다. 당신의 엄마와 아내의 건강을 지키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가정에 꿈꿔왔던 평화가 도래할 것입니다.’

청춘은 언제든 가볍게 담을 넘을 수 있는 때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중년의 중자는 실은 가운데 중(中)자가 아니라 무거울 중(重)자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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