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리검表裏劍 / 조이섭

 

명절 끝에 친구를 만났다. 나이 든 남자끼리 만나 술이 한잔 들어가면 항용 그렇듯 ‘라떼는’ 향연이 이어진다. 어릴 적 고생했던 이야기야 이미 재탕 삼탕까지 우려먹은 사이인지라, 친구가 한참 뜸을 들인 끝에 한마디 툭 던진다.

어릴 적에 큰 누님이 무슨 말끝에 “너는 20살 전에 감옥에 갈 놈이다.”라고 한 말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산다고 했다. 얼핏 악담이나 저주처럼 들리는 그 말이 가슴에 못으로 박혀서가 아니었다. 동생의 황소고집과 대쪽 같은 성격을 염려하는 누님의 고언을 특효약이라 여기고 곱씹은 덕분에 지금껏 큰 잘못 없이 살았는데, 정작 당신은 그런 말을 한 줄도 까맣게 모르더라면서 웃었다. 나도 친구처럼 여태 가슴에 새기고 사는 게 하나 있다고 말을 받았다.

 

나는 공업학교를 졸업하고 섬유공장에 취직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야간대학이라도 응시하려고 학생부를 떼어보고 깜짝 놀랐다. 담임 선생님의 의견란에 ‘표리가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표리가 있다는 말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 바로 표리부동表裏不同이 아니던가.

나는 학창 시절에 성적이나 무엇으로든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티 나게 말썽을 부리거나 사고를 치지도 않았다. 문제아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그렇고 그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평범한 학생에게 ‘표리가 있다’라는 붉은 낙인을 찍은 선생님의 뜻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를 불러 면담 한 번 하지 않았고, 호된 꾸중을 들은 기억도 없었기에 더욱 의아하게 여겼다. 설령 표리가 있는 행동을 했더라도,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매를 들어서라도 올바로 길로 나아가도록 다그쳤어야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분한 마음에 앞뒤 살피지 않고 선생님을 욕하고 원망하다가, 나 스스로 그렇게 볼 빌미를 제공하지나 않았을까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입학하면서 특별활동으로 가입한 밴드부에는 당시만 해도 문제 학생들이 많았었다. 연습실은 항상 담배 연기가 가득했고, 힘깨나 쓰는 아이들이 들락거리는 바람에 밴드부는 문제아들의 소굴이라는 선입견이 없지 않았다. 그렇게 도매금으로 넘어간 내가 도덕 운운하는 전국 연합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것을 표리부동한 행동으로 본 것인가? 아니면? 온갖 상상과 짐작으로 머리가 뻐개질 지경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혼자 멍때리며 생각하고 공상하기 좋아했다. 나만의 오롯한 가공의 세계를 만들어 거기에 빠져들었다. 어찌 보면, 요즘 아이들이 만화나 게임에 몰두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런 속마음이 밖으로 드러나거나 들킬세라 부러 있는 척, 강한 척한 적은 없었을까. 가난한 집안 환경이 부끄러웠고, 그래서 억눌러야 했던 희망, 현실성이 없어 시도해 보지도 못하는 좌절로 얼룩졌던 숱한 내부 갈등을 선생님께 간파당한 것이 아닐까. 그러다 재학시절에 있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모교 근처 초등학교가 개교하는 날, 밴드부가 지원을 나갔다. 우리는 팡파르와 축하곡을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단상에서 기관장들의 축사와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줄지어 서 있는 아이들 앞에는 담임 선생님들이 도열해 있었다. 말씀들이 길어지자, 반듯하던 아이들 줄이 꼬물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눈치를 힐끔힐끔 봐가며 뒤돌아보거나 짝꿍과 장난쳤다. 뒤에서 흐트러진 줄은 잔물결처럼 앞으로 번져 나왔다. 아이들은 그게 안 보이는 줄 알고 그러는 것이겠지만, 앞에 서 있는 우리 눈에는 녀석들의 움직임이 훤하게 다 보였다.

마찬가지로, 담임 선생님의 눈에는 나의 안과 밖, 나의 결함과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무기력함까지 가감 없이 보였을 것이다. 겉으로는 말썽을 부리지 않는 조용한 학생이었으나, 철부지가 꿈꾸는 공상과 망상까지 훤하게 꿰뚫어 보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선생님께서 제자인 나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표리가 있다.’라고 쓰지는 않았을 터이다. 나는 조회 시간에 선생님의 눈을 피해 장난치는 철부지였고, 삼장법사의 손바닥에서 노는 손오공이었다고 치부하고 말았다.

다만, 그때부터 선생님을 향한 원망을 접고 ‘표리부동’ 네 글자만 가슴 깊이 각인해 두기로 마음먹었다. 표리부동이 가진 사전적 의미, ‘마음이 음흉하여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덕분에 나의 이익만을 위해 좌충우돌하지 않았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살지 않을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이른바 좌우명이라 할 수 있는 죽비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 퇴계 이황은 그것을 경敬, 남명 조식은 의義라고 했다. 특히, 남명은 제자들에게 敬과 義를 새긴 경의검을 나누어 주어 항상 그 뜻을 새기도록 일깨웠다.

나는 남명 선생님의 경의검 대신 표表와 리裏 두 글자가 새겨진 마음의 검, 표리검表裏劍을 가슴 깊숙한 데 감춰두고 살았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감추면 감출수록 튀어나오는 이기利己의 낭중지추囊中之錐를 온전하게 감추기에는 나의 그릇이 보잘것없었다. 심지어 친구나 가족에게 송곳을 들이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그때마다 표리검을 매만지며 후회하고 반성하며 자신을 다독였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니,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숨기고 감출 일이 점점 줄어든다. 겉과 속이 같아진다는 말이다. 무언지 모를 두려움도 앞산의 잔설처럼 녹아내린다. 아직도 두 가지 색깔의 표리가 가슴 속에서 꿈틀대거나 요동치지만, 이제는 그도 그뿐이라 여기며 산다.

 

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자작自酌하던 친구는 내 앞에 놓인 빈 잔에 술을 가득 따르더니 건배를 청한다. 평생토록 表와 裏 두 글자를 새긴 표리검을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게 해주신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마주 앉은 친구도 큰 누님을 마음에 그리는지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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