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깃줄에 쉼표 하나 찍혀 있네
날 저물어 살아 있는 것들이 조용히 깃들 시간
적막을 부르는 저녁 한 귀퉁이
출렁이게 하는 바람 한줄기 속으로
물어 나르던 하루치 선택을 던지고
빈 부리 닦을 줄 아는 작은 새
팽팽하게 이어지는 날들 사이를 파고 들던
피 묻은 발톱들
줄을 차고 날아오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
지하로 곤두박질하고 싶은 본능
둥지에 재울 시간이면
흐느낌의 진실은 땅속으로 흐르고
추락하는 새의 붉은 슬픔을 안다네
그래서 숲에 들기 전 노을 든
하늘을 날다
스스로 붉은 슬픔이 되어
울음을 삼킨다네
―유종(1963∼ )
이 고요한 풍경은 어디에서 왔을까. 적막한 시간을 오래, 자주 경험해 본 사람만이 이런 것을 볼 수 있다. 시인은 평생 철도원으로 살았다. 이력을 알면 우리는 풍경의 기원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열차가 떠난 후 홀로 남은 기차역에서 이 시는 탄생했을 것이다.
유종 시인의 이력은 특별하다. 시인이 되고 철도원의 삶을 살고 은퇴를 하고 다시 시를 잡았다. 밥벌이가 되지 못했던 시가 마치 자신의 고향인 듯 돌아온 까닭은 여기에 마지막 터를 내리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어 시를 쓰는 사람들, 연장 가방이나 서류 가방 사이에 시집을 넣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누가 뭐래도 꿈을 품는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 시도 몹시 특별하다. 시인 본인의 이야기는 한 토막도 나오지 않고, 이름 모를 새 한 마리만 등장한다. 그렇지만 새의 치열했던 하루, 추락과 두려움, 내려놓음을 보면 저것은 단순한 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에 담긴 새의 이야기는 시인의 인생 전부, 그리고 사람의 삶이 지나오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시는, 시인 그 자체이고, 한 철도원이 인생을 걸고 시를 품어 왔던 바로 그 이유인 셈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