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향(茶香)을 꿈꾸며 / 박종화

 

 

차를 맛있게 우려내기란 참 어렵다고 한다. 찻잎도 중요하지만 물 온도가 차의 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동료의 부친상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한 달쯤 뒤, 그를 만났을 때 쭈뼛쭈뼛 부의금 봉투를 꺼냈다.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런 형식 너무 싫어. 한 손으로 봉투를 받아 바지 뒷주머니에 그대로 찔러 넣었다.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후 그 동료와는 멀어졌다.

전근 간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사무실 근처로 갈 테니 밥이나 한 끼 먹자는 거였다. 선배는 그동안 나에게 밥도 많이 샀고 공연 티켓도 통 크게 쏜 적이 있었다. 매번 얻어먹는 게 미안해서 내가 사겠다고도 했지만, 선배는 단호하게 거절하곤 했다. 이번엔 식당에 미리 가 결제를 해뒀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선배는 몹시 화를 냈고 다신 나와 밥을 먹지 않겠노라 했다. 그 후론 그 선배와 밥을 먹지 못했다.

친구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했다. 친구의 표정엔 설렘이 가득했다. 전날 이발을 할 거고, 그날 이런 옷을 입고 갈 거라고 계획도 늘어놨다. 며칠 뒤 퇴근길에 문득 그 친구 생각이 났다. 마땅한 선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바일 쇼핑몰에서 지구본을 샀다.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하겠나 싶어 포장 없이 쇼핑백에 넣고 축하 글을 썼다. 그 뒤로 그 친구를 여러 차례 만났지만 고맙단 말은 듣지 못했다. 내가 실수라도 한 것일까.

차향(茶香)을 꿈꾸며 누군가와 마주 앉지만, 나는 늘 차를 끓이는 데 실패하곤 한다. 팔팔 끓인 적도 있었고 성급하게 끓이다 차를 맛있게 우려내지 못하기도 했다. 언젠가 소개팅으로 만난 여성에게 속마음을 전달했다 혼이 났다. 겨우 세 번 만났는데 너무 성급하다는 것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걸음을 멈춰야 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날로 돌아가 차를 잘 우려내보고 싶다.

찻물을 끓이기 위해서는 세 번의 끓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한다. 물고기 눈처럼 거품이 일기 시작하면 첫 번째 끓음이요, 주전자 가장자리가 용솟음치기 시작하면 두 번째 끓음이라 한다. 이때 찻잎을 우려내야 차가 가장 향긋하지만 여기서 더욱 열을 가해, 힘차게 물을 끓여 버리면 물이 늙어 차가 맛이 없다고 한다.

세 번의 끓는 점이 한결같다면 어려울 게 없겠지만, 가려 끓일 물도 종류가 많고 사람 따라 끓는 점 또한 다르곤 했다.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해 애달픈 상사화는 꽃과 잎이 만나는 순간 그 애절함의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얼떨결에 점 찍는 순간 마침표가 되어버린 일이 얼마나 많던가. 삶에서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은 거기 다 그만한 뜻이 있어서 아닐까.

오늘 찻물을 끓인대도 나는 여전히 서툴 것이다. 차향을 꿈꾸어 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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