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춤추고 싶었다 / 최미옥

 

문학기행을 갔을 때였다. 산정호수에서 하룻밤 묵고 날이 희붐하게 밝아올 무렵 숙소를 나섰다. 아침이면 사라진다는 물안개를 보고 싶어서였다. 더 일찍 나선 글벗 몇몇이 유영하듯 산책길을 걷고 있는 호수는 물안개가 구름처럼 피어올라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중이었다. 우리도 풍경의 일환이 되어 천천히 걷고 있었다. 건너편에 있던 친구 서넛이 시선을 잡았다.

춤을 추고 있었다. 명성산이 배경이 되고 호수와 물안개가 관객이 된 그들의 춤은 이른 새벽 알싸한 공기만큼이나 신선했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지식인의 고뇌를 비웃으며 ‘지금, 여기’를 몸으로 노래하던 해변에서의 춤사위 한판, 친구들의 어설픈 몸짓이 너무도 자유롭게 보여서 조르바를 연상케 했다.

나도 춤추고 싶었다. 물안개가 꾸며준 환상적인 무대에 화답하듯 덩실덩실 춤 한판 추고 싶었다. 그러나 그뿐, 내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남들이 춤출 때나 흥겨운 노래를 들을 때, 마음은 들썩이는데 몸은 움직여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와 비슷한 과라 여겨지는 몸치 친구 몇명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은 마음도 덤덤하다고 했다. 음치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형으로 구분하던데 혹시 몸치도 그럴까. 타고난 몸치와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몸치가 되어버린 경우로. 마음은 흥에 겨워 달뜨는데 몸은 요지부동, 당최 움직여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아득한 시절 그 일의 후유증인지도 모른다.

산골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마을 축제였다. 모처럼 일손을 놓고 깨끗한 입성으로 갈아입은 부모님 앞에서 갈고닦은 재주를 맘껏 뽐내는 날이다. 구경거리도 풍성했고 청백으로 대립하는 응원도 흥겨웠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절정은 고전무용과 매스게임이겠다. 곱게 치장한 고학년 여자아이들이 춤을 선보이는 시간이야말로 운동회의 꽃이었다.

국민소득이 삼백 달러에 못 미치던 시절이었다. 한복과 꽃부채와 족두리, 곤봉과 하얀 운동복 등. 춤을 추기 위한 소도구 장만은 사치에 가까웠으니 아이들이 여럿인 집은 난감했을 터였다. 이에 춤꾼 둘이 있는 집은 하나만 참여시키기로 방침을 정했겠다. 그 열외에 해당한 아이가 하필이면, 나였다.

연습을 거듭해서 몸에 밴 춤을, 관객이 되어 지켜봐야 했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어차피 무대에 세우지 않을 거 연습이라도 빼주었다면 서운함이 덜했을까. 굳이 참여시킨 건 과정도 중요하기 때문이겠는데, 과정만 참여했을 뿐 결과를 내보일 수 없던 어린 마음은 아무도 헤아려주지 않았다.

나도 춤추고 싶었다. 꽃부채 차르륵 펼쳤다 탁 접으며 나풀나풀 춤추고 싶었다.

잘못도 없이 기회를 빼앗겼던 어린것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아이는 객석에 앉아 눈물 콧물 찔끔거리며 제 몸을 얼렸을까. 다시는 춤추지 않을 거야.

억지스럽기는 하다. 초등생의 앙심(?)이 뭐 그리 대단했으랴. 내가 타고 난 춤꾼이라면 외려 훌륭한 자극이 되었겠다. 뾰족한 물체는 언제라도 뚫고 나오게 되어 있다. 이순이 지나도록 리듬을 타는 행위조차 어색한 것을 보면 타고난 몸치임이 분명한데 사설이 길었다. 들썩이는 마음과 달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몸치가 길치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뇌과학자의 칼럼을 읽으면서 놀란 적이 있다. 내가 길치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므로 몸치로 타고났음도 인정해야 했다. 춤추고 싶다는 소망은 접는 게 옳겠다 싶어 씁쓸해지던 무렵 어느 춤꾼의 이야기가 쐐기를 박았다. ‘몸치는 왼쪽 다리만 두 개 있다고 보면 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백기를 들 수밖에.

좌와 우를 구별하는 것이 뇌의 구조상 어렵다고 하니 몸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어릴 땐 훈련으로 웬만큼 극복할 수 있다고 했으나 애석하게도 칠십 고개가 멀지 않으니 어쩌랴. 승복할 수밖에 없지만 내겐 은밀히 숨겨둔 쌈짓돈처럼 흥이 남아 있다. 흥만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춤을 추는 데도 길을 찾는 데도 아무 도움이 안 되지만 자기만족은 최상이다. 흥이야말로 밋밋한 일상을 장식하는 토핑 같은 것이 아닐까.

언젠가 선배의 시 낭송회에 간 적이 있었다.

“치마꼬리 살짝 들어 올려 속 고쟁이 보일 듯 말 듯

어깨에 힘을 빼고 당겼다가 놓아주고

바람이 채갈세라 잽싸게 당겨 안고

봄바람 살랑대듯

물결이 찰랑이듯”

고전무용에 빠져 있던 <이섬> 시인이 한복까지 갖춰 입고 춤과 함께 자작시를 낭송하는데 관객인 내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여흥을 몰아 나도 춤 한판 신명 나게 추고 싶었다. 고전무용을 배우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춤은 여전히 눈으로만 즐길 뿐, 즐길 수 있는 흥은 꼬부랑 할머니가 되도록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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