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안(肉眼)과 심안(心眼) / 박연구

 

소지품 하나를 사려고 해도 백화점에 가서 그 많은 물건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게 마련인데, 하물며 평생의 반려가 될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맞선도 보지 않고 결혼을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결혼을 한 바 있는 나 역시 소위 맞선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본 경험이 있다.

당시 나는 잠재 실업자라 할까. 이렇다 할 직업도 없이 문학이란 것을 한답시고 향리에서 뜻없는 일월만 허송하고 있었으니, 신랑 후보로서는 어느 모로 보나 탐탁치가 못했다.

와병 중이신 가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맏며느리라도 보고 싶다고 어떻게나 성화이신지, 전혀 타의의 결혼을 하게 되는 처지이기는 해도 선을 보는 데마다 성사가 되지 않고 보면 매우 자존심이 상하였다.

그중에서도 나의 외종형이 중매를 한 읍내 처녀는 지방신문에 난 내 글을 읽었다면서 꽤나 호감을 가져주어 꼭 성사가 되겠거니 했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건강이 안 좋은 것을 알고는 그녀의 오라비가 극력 반대를 해서 그만 파혼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몇몇 규수에 대해서는 아스름하게 그 용자(容姿)가 기억되기도 한다. 한 규수는 가리마가 반듯하고 웃으면 보조개가 패어 귀염성도 있게 보였는데, 나중 소식을 듣자니까 술주정뱅이 남자에게 시집을 가서 매만 맞고 산다고 하여 나의 책임인 것 같이 생각되어 어떤 가책을 느끼기까지 했다.

나는 결국 코끝도 본 일이 없는 산골 규수에게 장가를 들고 말았다. 한동네 죽마고우의 처제이기도 한데, 정작 그 혼담이 나오게 되었을 때는 거기 두고 여적 헛수고만 했다는 듯이 안도의 숨을 내쉬기까지 하였으니….

평소 그 친구의 부인에 대해서 한국 여인상의 한 전형이라고 보아 왔던 터였기에, 그녀의 동생 또한 우리 집안의 종부(宗婦)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내 나름의 판단을 내린 이상, 가서 만나 본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결혼식이 있기 전에 한번 찾아가서 규수를 만나 보고 싶은 호기심도 없지 않았다. 맞선을 본다는 뜻이 아니라 처녀와 총각 사이의 은밀한 데이트 기분을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959년 1월, 연일 눈이 내렸다. 산에도 들에도 온통 은세계를 이루었다. 맞선을 보러 가기는커녕 장가길도 들기 어려울 만큼 강설이 계속되었다. 30년 만의 폭설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내 생전에는 처음 보게 되는 이변이었다. 집안의 나무들도 온통 눈꽃을 피우고 있어서 역시 눈을 이고 마당 한쪽에 서 있는 노적가리와 더불어 한결 풍요로운 풍경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 눈의 경치 속에서 목련꽃같이 웃고 있는 여인의 얼굴을 본 것이다. 오래전에 만나 다정한 얘기를 주고받던 그런 사이의 여인처럼 나의 망막에 클로즈업되기도 해서 혼자 웃었더니 장가드는 게 무척 좋은 모양이라고 할머니가 놀리시는 말씀까지 하시는 거였다.

아내와 내가 만난 지도 어언 20년이 넘었건만 진짜 아내의 얼굴을 본 것은 그녀의 코끝도 보기 전, 그러니까 결혼식 날을 받아 놓고 눈송이가 나비처럼 팔락팔락 날아드는 하늘 속에서, 아니 우리 집 대추나무 가지에 얹힌 눈꽃송이 속에서 보았던 것 같이만 생각되었다. 돈 못 버는 나를 따라 사느라고 그 예쁘기만 하던 손이 거칠어지고 눈가엔 어쩔 수 없이 잔주름이 잡히는 그녀를 대하게 될 때마다 빚진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10년하고도 또 10년 동안 그녀의 얼굴을 보아 왔건만 그날 대추나무에 핀 눈꽃송이에서 발견한 아내의 얼굴보다 더 똑똑한 얼굴을 못 찾아내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라 할 것인가.

언젠가 나의 사촌 누이한테서 들은 얘기가 생각이 난다. 매제가 아이 낳고 10년이나 같이 살고 난 누이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아니 당신 주근깨 있었구나" 하면서 큰 발견이나 한 듯이 놀라움을 표하더라고 말했을 때, 그 자리에서 같이 들은 사람들은 한바탕 박장대소까지 하고 말았지만, 비단 그녀의 남편만이 아니고 남자들은 다 그런 데가 있다고 본다.

몇 년 동안이나 연애를 했고 그 후에 결혼을 해서 또 10년을 살았으면서도 애당초 처음 사랑했을 때의 그 마음이 언제까지라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붙잡아 놓는 마술을 부린 것이 아니라면 본래에 있었던 주근깨를 어찌 발견하지 못했겠는가 말이다.

누이의 얼굴에 난 주근깨는 심한 편이 아니라서 찬찬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르겠기는 하나 이른바 일심동체라고 일컬어질 만큼 가까운 부부 사이에서 그것을 못 보았다고 하는 것은 믿어지기 어려운 얘기지만 사실이라고 말하는데야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의 육안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믿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맞선이라고 하는 것도 육안만 믿는 사람에게는 보나 마나 아무 소용이 없는 노릇이다. 모름지기 맞선을 보려는 결혼 후보생들은 육안보다도 심안을 닦아 가지고 대비할 일이다.

여자의 얼굴에 주근깨 따위 조금 있는 것까지 보려고 애쓸 필요는 도무지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아름답게 상대방을 볼 수 있을 것인가, 그 심안을 닦고 닦을 일이다. 한 인간을, 아니 한 영혼을 자기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자세가 된 사람만이 맞선을 볼 자격이 있음을 다시 한번 밝혀 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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