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꿈 / 조일희 

 단체 알림방에 여행 공지가 떴다. 아랫녘에 사는 선배를 만나러 가자는 내용이었다. 평소 댓글을 잘 달지 않던 내가 재빨리 답을 올린 까닭은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 어둑새벽, 맵찬 바람을 가르며 집을 나섰다. 이른 시간인데도 기차역은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분주함과 설렘이 섞인 역내 공기는 차가운 바깥 날씨와 달리 달큰하면서도 훈훈했다. 둘레둘레 돌아보는 나를 향해 일행 중 유일하게 구면인 C가 손을 흔들며 알은척을 했다. 남도로 떠나는 네 명의 여자는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른, 공통점이라곤 늦깎이 학생이란 것뿐이다.

​ 희붐한 빛을 앞세우고 기차에 올랐다. 올겨울 가장 춥다는 날씨 따윈 문제가 안 된다고 환한 얼굴이 물음에 앞서 답을 한다. 안팎의 기온 차로 뿌옇게 김이 서린 차창에 우리의 실루엣이 얼비친다. 이마에 실 고랑이 파이고 한 올, 두 올 흰 머리가 성기게 보이는 나이. 하지만 오늘은 매서운 동장군쯤은 거뜬히 메치고도 남을 만큼 당찬 모습이다.

​ 무릎을 맞대고 앉아 어색한 거리를 좁힌다. 부스럭부스럭 각자의 보따리에서 주전부리를 꺼내놓자 분위기가 한결 낫낫해진다. 낯가림을 트는데 먹는 것만큼 좋은 게 또 어디 있으랴. 얼룩덜룩한 얼굴에 낯꽃이 피고 주름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자연스레 어깨가 섞이고 마음이 섞인다. 달궈진 실내공기는 두꺼운 옷뿐 아니라 마음의 옷도 한 겹, 두 겹 벗게 만든다.

​우리는 왜 늙수그레한 나이에 학생이 되었을까. 어떤 숨은 내력이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살포시 미소를 짓던 A가 먼저 말꼬를 튼다. 스스럼없이 마음의 빗장을 푸는 걸 보니 덜컹거리는 바퀴의 운율이 마음을 열게 하는 주술인가 보다. 사랑 하나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녀. 그럼에도 행복했단다. 동갑내기 남편의 학업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었던 A에게 이제 당신 차례라며 남편이 등을 떠밀었단다.

​ 이어 푼더분한 얼굴로 외로움을 토로하는 B. 장성한 자녀들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단다. 헛헛한 마음을 배움으로 채운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내 옆에 있던 C가 입을 뗀다. 삼십여 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바다 건너 이국땅에 가는 상상을 했단다. "나이 들어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고되긴 해도 꿈이 있어 행복하다"며 봄 햇살처럼 싱그럽게 웃는다.

내 차례다. 나는 왜 스스로 놓았던 학업의 끈을 다시 붙잡았는가. 오랜 세월 나라는 주체 대신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 살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면은 비어가고 단독자로서 자유의지는 사라져 갔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삶인가·' 따위의 생각이 내면의 바닥에서 고개를 들었다. 나를 찾고자 시작한 공부이기에 그럴까, 아니면 뒤늦게 철이라도 든 까닭일까, 늦공부가 달았다. 책과 밤을 새운 날이면 몸은 서리 맞은 푸새 같아도 마음은 신선한 공기를 마신 듯 청량했다.

​ 누군가 꿈은 결핍의 열매라고 했다. 저마다 다른 색깔이지만 옹골찬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다시 시작한 것이다.

​ 어느덧 기차는 철교 위를 달린다. 어둠을 밀어내며 앞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는 네 개의 꿈을 싣고 떠나는 늦깎이 여정과 닮았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기찻길 따라 우리의 이야기도 두런두런 이어진다. 노루막이를 넘던 시절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아릿하고, 퍼런 멍울의 사연은 모두의 마음을 시리게 한다. 돌림노래로 풀어내는 삶의 고해에 탄식으로, 웃음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서로를 위무한다.

​ 터널이다. 잠시 고요해진다. 각자 불화의 시간을 돌아보나 보다. 고빗사위의 순간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어둠 속에서 어둠 밖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있었던 나날이었다. 칠흑 어둠을 지나고 난 후 빛은 더욱 빛나지 않던가.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는 노정에서 만난 벗들에게 동지애마저 느끼는 여행길이다.

​ 어두운 터널을 지나자 빛이 쏟아진다. 유예된 꿈을 튼실한 열매로 맺기 위해 애쓰는 네 여자에게 주는 상장이 눈부시게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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