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삼국지 / 이미영

 

대저 천하의 명저란 오랫동안 읽히면 반드시 새로운 평가를 받고 오랫동안 재평가됐다면 반드시 오래 읽히게 된다.

《수상록》의 표지와 첫 장을 장식하는 몽테뉴의 초상화는 “내 책은 뭐 별거 없어요, 좀 있는 집안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리 평탄한 삶은 아니었어요.”라고 슬쩍 흘리는 것 같다. “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기뻐하셨듯 나는 삶을 사랑하고 삶을 즐긴다.”고 말했지만, 그의 얼굴은 다른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살던 아주 오래전 인물이다. 나는 거리와 시간을 좁히기에는 맹랑한 현재 사람이다. 목침만 한 옛날 책이 표지모델부터 지루하게 다가온다. 수필 삼국지의 패장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생활의 발견》의 표지에도 린위탕이 등장한다.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살짝 미소를 띤 사진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커피잔을 든 채 “이 책은 사랑과 인생에 대한 나의 체험을 서술한 나 개인의 증언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교과서에 실렸던 <비에 대하여>, <달과 바람과 물에 대하여>의 주옥같은 문장이 떠올라 읽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한다. 싸워보기도 전에 수필 삼국지의 앞자리를 차지한다.

책 뒷면에 노년의 린위탕이 훤하게 벗어진 이마를 하고 정면을 응시한다. 그 위로 “실은 나는 철학의 객관성을 멸시하고 있다.”라는 선언이 보인다. 사백 쪽 분량의 책인데 서문이 여덟 쪽을 차지한다. 알고 보면 잔소리 많은 중국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일어난다.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은 자신이 그리는 자화상이 있었나 보다. 손자 박주수가 그린 자신을 보고 본래의 모습에 10분의 7도 미치지 못했다며 없애버리라고 했단다. 아들 박종채가 전하는 연암의 풍모에 가까운 듯한데 정작 본인은 왜 흡족하지 않았을까. 1780년의 한여름 한양에서 북경까지, 다시 산 넘고 물 건너 열하까지의 여정을 담은 여행기는 그의 전방위 면모를 보여준다. <도강록>을 다 읽기도 전에 ‘연암의 손자는 할아버지를 잘 몰랐구나.’ 생각이 든다.

국어 시간에 <야출고북구기>와 <일야구도하기>를 읽으며 국사 시간의 실학자 연암을 잊곤 했다. 달려드는 물을 잠재우는 사유의 세계보다 고북구 밤하늘에 걸린 달이 서늘하게 남아있다.

몽테뉴는 처음부터 슬픔에 관한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형제의 죽음과 자식의 사망을 겪은 이들을 보여주다가 페트라르카의 시로 응수한다. “얼마나 속이 타는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미지근하게 속태우는 것이다.” 시인도 몽테뉴도 새까맣게 속이 타는 슬픔에 젖어 본 사람이다. 자식을 여럿 잃은 그의 심정을 시인이 대변하게 한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슬픔으로 독자의 환심을 산 몽테뉴의 진격은 거침이 없다. 오늘날에도 수필의 소재로 삼기에는 불편한 외설한 문장을 베르길리우스의 시구에 붙여 다루었다. 신교와 구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기도와 노동이 당신의 집에 행복을 실어다 준다’라는 그의 신앙은 하늘보다는 현실의 평안에 무게를 두는 것 같다.

“노쇠는 얼굴보다는 마음속에 더 많은 주름을 남긴다.” 그렇구나, 그도 나처럼 애면글면 살았구나. 그래서 그의 얼굴은 그의 문장과 거리가 생겼구나. 멀리 있었던 그가 가까워진다. 오래전 그가 오늘도 생생하게 말을 건다. 목침이 될 줄 알았는데 책장을 넘기느라 잠 못 이루는 밤을 선사한다. 시간도 거리도 극복하게 만드는《수상록》에 수필지의 한 자리를 뚝 떼어준다.

린위탕이《생활의 발견》을 나 개인의 증언이라고 했듯 나도 개인의 취향으로 답해야겠다. 그는 자신을 숨겨두고 자신의 체험을 말한다고 위장 전술을 펼치는 것 같다. 치파오를 입고 커피잔을 든 표지 사진처럼. 영어를 쓰는 중국 할아버지의 억양을 이해하려고 문을 두드렸지만, 이야기 없이 말이 많은 그의 수필지는 척박했다.

“봄비는 영전을 알리는 칙서와 같고, 여름비는 죄수에게 내리는 사면장과 같으며, 가을비는 만가(挽歌)와 같다.” 메마른 교과서를 사랑하게 만들던 자연에 흠뻑 젖은 문장 앞에서는 여전히 백기를 들고 투항할 수밖에 없다. 그는 수필지에서 시계(詩界)로 터전을 옮겨야 하지 않을까.

《열하일기》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를 자꾸 생각나게 한다. 연암은 고행길이던 연행을 다행으로 만들었다. 곳곳에 담긴 그의 농담은 긴 여정의 피로를 풀어주고 솟아나는 호기심은 행장을 가볍게 했다. 처음 보는 요동의 드넓은 대지에서 마음껏 울기에 좋은 곳이라 가슴을 터놓는 연암을 읽으며 체 게바라가 떠올랐다. 상갓집의 풍습을 체험하려고 모르는 집에 들어가 문상하고, “…. 그의 붓 놀리는 솜씨가 저렇게 서투니 바로 오늘이야말로 내 실력을 마음껏 보여 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어린이 같은 속마음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는 손자가 그린 초상화에서 조선 유학자의 옷을 입고 복건을 쓰고 있지만, 그의 내면은 어떤 자유인보다 자유롭다.《열하일기》의 책장을 다 넘기기 전에 연암이 초상화를 버리라고 한 이유를 알겠다. “너는 화원처럼 나를 그렸구나.《열하일기》를 읽어 보아라. 그 속에서 다시 할아버지를 그려 보아라.” 손자에게 하지 못한 말이었을 것이다.

광활한 연암의 수필지를 찾아가 마음껏 소리쳐 울고 어린이처럼 놀아야겠다. 수필 삼국지의 가장 기름진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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