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떼가 극성이다. 더위를 달래고자 나선 걸음이 강변에 가 닿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 몰려든다. 날벌레들 등쌀에 문밖 나서기가 무서운 계절이다. 무얼 바라보고 저렇게 열심히 날고 있는 것일까.
팔을 휘저으며 날것들을 쫓다가 그 사람을 생각한다. 자신에게로 쏠리는 눈총에 죄 없이 주눅 들던 남자다. 그를 만난 것은 죽은 사과나무를 뽑아낸 자리에 새 묘목을 심던 날이었다. 저런 일꾼을 본 적이 있었던가 싶게 나무를 매만지는 손길이 정성스럽고도 재발랐다.
농사는 물론 집 짓기에 동물 사육까지 무슨 일이든 따를 자가 없다는 젊은이였다. 몸 아끼지 않고 해내는 일의 양이 다른 인부들의 두 몫은 됨직했으니 누구라도 눈독 들일 상일꾼이었다. 자그맣고 마른 몸 어디에서 저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낯선 남자에 대한 궁금증은 함께 일하는 인부들보다 내가 더했다. 새참 시간, 일부러 그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연변에서 온 총각은 타국에서의 십여 년을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닥치는 대로 일했고, 그 사이 태국 처녀를 만나 부부가 되었다. 경기 충청과 제주를 돌아 이곳까지 오는 동안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컸다. 숱하게 겪은 힘든 고비도 자신만을 바라보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이겨냈다. 앞으로도 몸 움직여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을 것이다.
얘기를 듣는 동안 내 마음은 벌써 그를 단골 일손으로 맞아들였다. 어인 일인지 함께 듣고 있던 인부들은 시큰둥했다.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가족에게 다 털리고 늙고 아픈 껍데기만 남을 사람이라며 답답해했다. 국적도 없는 남의 나라에서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며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비웃었다. 하긴 마을에서 온 인부들은 자기 땅 일구며 가족이 함께 살아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불러들여야 농번기 일손이 해결되는 현실은 알고 싶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 농촌은 야박하지 않았다.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문간방을 내어주고 경작할 땅을 주며 함께 어울렸다. 행복의 기준을 땅뙈기에 두고 나보다 못하면 하찮게 여기는 시골의 변해버린 인심이 안타까웠다.
주변에 외국인이 늘어간다. 취업이나 결혼을 위해 들어온 그들은 하루 이틀 있다가 떠날 여행객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사람들이다. 편견의 눈으로 그들을 보고 경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 나라를 떠나 타국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우리도 그들처럼 외국인이 아닌가.
기회의 땅을 찾아 먼 길을 돌아온 그들 대부분은 내국인 이상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내가 만난 연변 젊은이가 그랬고 외국인 며느리들이 그렇다. 우리는 그들을 더부살이가 아닌 이웃으로 맞아들여야 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지구촌 시대인 것이다.
우리 마을에도 다문화가정이 있다. 베트남 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새댁들이 아이 기르고 부모 모시며 티 없이 살아간다. 한국 처녀들의 관심 밖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농촌 총각들을 도와 가정을 이룬 그들은 이제 이방인이 아니다. 한국의 여인으로 성숙해가는 당당한 모습은 이곳이 그들 나라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게 한다.
아들 넷을 장가 들인 이웃 할머니는 많이 배운 잘난 며느리 셋을 다해도 외국 며느리 하나만 못하다는 자랑을 입에 달고 산다. 어디에서 왔는가 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사람을 대하는 잣대가 되어야 하리라.
나도 한때 외국인으로 산 적이 있다. 여섯 해 남짓 지내는 동안 떠날 거라는 생각으로 가벼이 살았던 적은 없었다. 아니, 내 나라에서보다 더 열심히 살았고 그만큼 정도 들었다. 온갖 낯선 것들에 부대끼며 살아도 그곳이 좋았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 덕분이었다.
그들은 언어와 피부색이 다르다고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도 함부로 무시하지도 않았다. 경계 밖으로 떠밀리지도 않았다. 마주치면 반갑고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마을 사람 대하듯 자연스러웠다. 이웃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 그것이 어떤 호의보다 더한 친절이라는 것을 겪어봐서 안다.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바라는 것도 그 시절의 나와 같지 않을까.
신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하루살이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살아야 하는 까닭은 내가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지금, 이 순간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따지려 들지 말고 뜨겁게 어울려 살아볼 일이다. 저 날벌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