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 / 홍윤선
제사장의 장신구 같은 둥근 문고리를 잡아당기면 작은 세계가 열린다. 천장 서까래는 어린 소녀의 바람을 하늘에 전달하듯 쭉쭉 뻗었고 시렁 위 색동 이불과 구색을 갖춘 문학 전집은 제단에 놓인 제물 같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사기그릇이 맞은 벽 높은 선반에 제기처럼 쌓여 있다. 그 아래로 입을 꾹 다문 반닫이와 키 낮은 책상이 가부좌하고, 청동거울처럼 희부연한 경대가 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두어 사람 누울 공간이 겨우 남는다.
명성에 비해 처지가 안쓰럽다. 번듯한 자리는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을 텐데 그렇다고 골방 시렁 위라니. 피할 수 없는 이웃까지 고약하다. 시렁에 새끼줄이 나타나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최고급 양장본은 아니지만 가죽을 가장한 벽돌색 비닐 커버를 씌우고, 금박 장식을 흉내 낸 반짝이에 세로쓰기를 고집한 세계문학전집이 아니던가. 메주 근처에 있게 될 줄이야.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골방 윗목에 쭈그리고 있던 교과서는 책상 위를 차지했다는 이유로 기세가 더욱 당당하다.
읽을거리가 별로 없었다. 시골이라 해도 친구네는 더러 동화책들이 있곤 했는데 우리 집은 나이 차가 많은 오빠와 언니들 사이에서 교과서가 주를 이루었다. 언제부터였나 『데카메론』과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1984』 같은 소설 몇 권이 있었지만 초등학생인 나와 거리가 멀어 있으나 마나였다.
언니와 오빠가 자취방을 정리하면서 몇 가지 짐을 고향 집으로 보냈다. 거기에 세계문학전집이 끼어 있었다. 골방에 교과서 외 새로운 책이 들어왔다. 시렁 위에 자리를 비집고 누런 종이 상자를 책꽂이 삼아 가로와 세로로 빼곡히 채워 넣으니 스탕달과 펄 벅, 토마스 하디가 손가락 들어갈 틈도 없다며 아우성이다. 적과 흑, 대지, 테스, 죄와 벌…. 오랫동안 책등만 데면데면 쳐다보았다.
부엌을 통해 들어가는 작은방이지만 큰방과 연결된 문이 딸려 있다. 사잇문을 벽처럼 사용하면서 큰방과는 분리된 우리만의 공간이 되었다. 언니들이 학교 다니는 동안 내가 수시로 드나들었고 마른 가지처럼 야위어가던 엄마가 아픈 몸을 누이기도 했다. 꺼무데데한 불목 자리는 이 방을 거쳐 간 식구들의 흔적이다. 어느 순간 내 차지가 되었고 제사장도 없는 골방에 엎드려 엄마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손만 대면 누구에게나 열리는 허술한 자물쇠지만 대문은 늘 잠겨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는 날이 많았다. 간혹 안에서 찬송가라도 흘러 나오면 벌써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닐까 하여 문 앞에서 무릎이 훅 꺾였다. 어찌 끝날지 예측할 수 있어 오히려 두려운 날들이었다. 그새 제목이 익숙해진 세계문학을 꺼내 들었다. 세로로 훑어가다 읽은 데를 두 번 봐도 상관없다. 내용을 알려던 것이 아니니까. 그저 감정의 자리를 떠나서 활자의 집에 머물고 싶었던 게다.
넷이나 되는 딸들을 위해 차곡차곡 사 둔 그릇을 남겨둔 채 엄마가 세상 밖으로 떠났다. 나는 움츠러들었고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달라진 문밖 세상은 낯설기만 한데 골방은 겁먹은 나를 떼어내 감싸 안았다. 엄마의 눈길 대신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했다.
육아서에 밑줄을 긋고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던 때였다. 다시 없는 시간이지만 드문드문 문자에 대한 허기가 몰려왔다. 도서관에 가면 잘 차려진 밥상을 대하듯 허겁지겁 마음이 앞섰다. 광장으로 나온 세계문학전집은 몸에 맞는 옷을 입고 서가에 있다. 모두 제 자리를 찾아가는데 나만 뒤처져 가고 있어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한창 일을 할 즈음 아이들은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사춘기의 사내 아이는 돌아서면 배고프다고 엄마를 찾았다. 간신히 내 위치를 잡아가는데 두 아들을 먹이는 기본적인 일에 할애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루하루 흔들렸고 주변이 갈라졌다. 미셸 투르니에가 창작한 로빈슨을 만나고서 나도 동굴 같은 골방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균열로 벌어질 때마다 부여잡을 책이 필요했다.
늦은 밤에 책을 읽는다. 전화 소리도 끼어들지 않고 분잡한 집안일도 보이지 않는 시각이라야 집중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를 물었고 괴테는 파우스트의 입을 빌려 인간은 노력하는 동안 방황하기 마련이라며 토닥거렸다. 그 밤에 그리스인 조르바가 산투르를 치고, 청새치를 잡는 산티아고 노인이 빈손으로 찾아왔다. 남몰래 흐느끼는 『제5도살장』의 빌리와 함께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두 손을 모았다. 이제는 검은 글자가 아닌 울고 웃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책도 밥처럼 헛헛한 마음을 채워 사람을 일으켜 세우니까. 먹는다와 읽는다는 어쩌면 비슷한 의미일 수 있겠다.
책이라는 골방에 들어간다. 제실로 영혼이 돌아와 지난 삶을 되새기듯 골방에서는 책 속 인물들이 살아나 각자 목소리를 낸다. 긴 이야기는 이해로 끝이 난다. 정해진 답이 없는 생이니 충분히 들여다보면 타인을 향한 여분의 시선이 생길 터이다. 하나의 책이 하나의 인생이니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글이 되어 다른 사람 곁에 설 수 밖에. 다음 장으로 새 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