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댕이 신 한 켤레 / 박금아
난분분한 나뭇잎들이 만추의 스산함을 더하고 있었다. 늦은 밤, 서울대입구역에서 집으로 오는 길섶에서였다. 가막덤불 속에서 푸른 열매 몇 개가 언뜻언뜻했다. 가랑잎을 치우자, 진한 물빛이 도는 파랑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것들도 놀란 듯했다. 길두 아재가 ‘댕대이’라고 부르던 나무의 열매였다. 그렇게 얼마를 서 있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 앞 산길이었다. 빨간 팥배나무 열매가 가로등 아래에서 먈갰다. 길냥이들이 불빛이 닿지 않아 희읍스름한 화살나무 아래를 종종거리며 희롱하고, 길 아래 관악빌라 할머니의 남새밭에서는 맷돌 호박 한 덩이가 새들해진 이파리 몇 잎을 달고서 늦가을 밤을 지켰다. 살쾡이 한 마리가 긴 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자 뒤편 산딸나무 아래로 사라졌다. 살쾡이가 내준 자리에 앉으니 밤하늘 속으로 아까 보았던 푸른 열매가 떠올랐다.
길두 아재 등에 업혀 진외가로 가던 밤길이 생각났다. 바지게 안에서 무서리를 맞으며 바라보던 외할머니의 무명 치맛자락과 산짐승 울던 말티고개와 먼 데 있던 검은 산들이 들어와 박혔다. 곡두를 보는 듯했다. 그날 밤, 졸작 「길두 아재」를 썼다. 그 밤 내내 내 방 창틀엔 유년처럼 무서리가 내렸고, 내리자마자 녹아버린 무서리의 시간을 위무하는 듯 간간이 소슬바람이 머물다 갔다.
세 살 때 부모를 떠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외가에서 살았다. 산골 외딴집엔 외할머니와 외할머니의 먼 친척뻘로 머슴살이를 와 있던 길두 아재뿐이었다. 외할머니는 사시사철 종일토록 과수밭에서 살다시피 해서 나는 아재만 졸졸 따라다녔다. 아재는 부르기만 하면 어디서든 달려와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 주었다.
여섯 살, 서릿가을 무렵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내 신 한 짝이 아재가 잠자던 쇠죽방 아궁이에 들어가 있었다. 섬에 살고 있던 엄마가 며칠 전에 오일장에 다녀온 사람 편으로 보내 준 새 운동화였다. 아재가 아침 쇠죽을 끓이다가 발견하고 꺼냈지만, 반이나 타버린 후였다. 그날 내내 아재를 따라다니며 “내 신발 물어내라.”며 졸랐다. 외할머니가 새로 사 주겠다고 해도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밥상머리에 앉자마자 울기 시작해서 점심때까지 밥도 먹지 않고 떼를 썼다. “바보 아재! 개새끼 아재!"라고도 했던 모양이다. 달래다 못한 외할머니가 회초리를 찾자, 아재가 달려와 나를 덥석 안아 들고서 과수밭으로 달아났다.
과수원 뒷산은 댕댕이 천지였다.
농사가 끝난 늦가을이면 아재가 베어다가 겨우내 과실 소쿠리와 삼태기를 만들곤 하던 넝쿨이었다. 아재가 풀숲에 나를 내려놓고서 댕댕이 넌출을 손으로 잡아당겼다. 암만 꺾으려고 해도 덩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낫을 들고 와서야 질긴 줄기를 잘라낼 수 있었다. 아재는 그것으로 알기살기 신 한 짝을 엮어 내 발에 신겨 주었다. 신발 콧등에 달린 파란 댕댕이 열매를 보고서야 울음을 그쳤던가. 아재는 다른 한 짝도 만들어 줬다. 외가로 돌아오던 길에 아재가 태워 주는 목말을 타고 댕댕이 신을 신은 두 발을 까불거리며 바라보던 하늘은 얼마나 높았던가.
유년의 시간 속에 길두 아재가 없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을까. 아재는 내게 놀이를 함께 해 준 하나밖에 없는 친구였고, 내 긴 머리를 땋아 주다가 도시로 떠난 막내이모였고, 토끼몰이와 새 잡기를 보여 주다가 서울로 공부하러 간 외삼촌이었다.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은 남이면서도 때론 아버지였고 엄마였으니 아재는 내 유년의 시간 속에서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그 모든 이’였다.
별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고, 별이 반찬이 되어 밥상으로 올라오는 것을 꿈꾸게 해 주었다. 감나무를 어떻게 오르고 내리는지, 들녘에서 피어나는 생명들을 어떻게 부르는지도 알게 해 주었다. 아이도 어른과 친구가 될 수 있고, 어른이 되면 마음으로도 걷는다는 걸, 그러니 어른으로 살아가려면 발뿐 아니라 마음에도 여간해서는 헤지지 않을 단단한 신 한 켤레쯤 필요하다는 것을 일러 주었다. 평생을 신어도 닳아 떨어지지 않을 댕댕이 신을 어떻게 엮는지, 그 기술을 가르쳐 준 사람도 길두 아재였다.
평소 같으면 대번에 꺾어 와 꽃병에 담아 두고 혼자 보았을 넝쿨을 그날은 그 숲에 소롯이 남겨 놓고 왔다. 누군가 발견한다면 그도 나처럼 아름다운 추억 하나 떠올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어쩌면 그때 내게 튼튼한 신 한 켤레가 절실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길을 걷는 동안 홀연 신발이 망가져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우뚝 멈춰버린 적이 많았다. 그런 날 그 숲에 달려가 길두 아재가 가르쳐 준 대로 댕댕이 신 한 켤레 삼아 신고 싶었을까. 어린 소녀를 달래던 눈빛이 조롱조롱한 그 푸른 열매로 아직도 울고 있는 내 안의 나를 달래고 싶었던 걸까.
가끔 궁금해진다. 중년을 훌쩍 넘어선 지금, 길두 아재가 나를 만난다면 뭐라고 할지를. 아재는 아마도 “자야, 니가 우찌 이리 마이 컸노!” 하고는 너털웃음을 칠 것이다. 유년의 어른들 모두 “자야, 니가 우찌 이리 마이 늙었삤노!”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한국수필』2023.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