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그늘에 앉아 생각한다

손차양, 한 사람의 미간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이 만들어준
세상에서 가장 깊고 가장 넓은 지붕

그 지붕 아래서 한 사람은
한낮 눈부신 햇빛을
지나가는 새의 부리가 전하는 말은
부고처럼 갑자기 들이치는 빗발을
오래 바라보며 견뎠을까, 견딤을 견뎠을까
한 생이 간다 해도 온다 해도 좋을

 

 

이제 한 사람은 없고
긴 그늘을 얼굴에 드리운 한 사람만 남았다
살구나무는 잘 있지요
안 들리는 안부는 의문문과 평서문 사이에 있고
살구꽃말은 수줍은 또는 의혹
(하략)


―이은규(1978∼)



낮 기온이 높아지고 해가 뜨겁다. 우리에게는 그늘이 필요하다. 삶의 난도는 높고 성실해도 쉽지 않다. 내내 달려온 다리와 마음에도 그늘이 필요하다. 기도, 명상, 휴식, 여행. 뭐가 되어도 좋다.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놀이가 아니라 그늘이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에게 필요한 바로 그것을 소개해 드린다.

 

 

‘살구’는 그늘이 사람 밖에서 태어나 사람 안으로 자리를 옮기는 장면을 담아내고 있다. 오늘 내가 앉은 나무의 그늘은 과거 그 사람이 해주었던 손차양 그늘을 불러온다. 그가 내게 드리워주었던 손차양은 내 영혼으로 자리를 옮겨 뿌리를 내렸다. 누군가 손차양을 해준다는 건, 사랑한다는 말과도 같다. 때로는 행동이 말보다 더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한다. 고작 손바닥에서 태어났대도 내가 받은 사랑은 영혼을 채워줄 수 있다. 그건 에너지와 비슷해서 삶의 패인 곳곳을 메워줄 수도 있다. 사랑은 삶을 이해하게 하고, 견디게 하고, 지탱하게 해준다.

나에게 손차양을 만들어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쏟아지는 햇살을 기꺼이 받고 두 손을 나에게 양보했다. 시에서처럼, 기억은 사람 안에 오래 살아 숨 쉬는 법이다. 찾아오는 여름에는 그늘을 기억하고, 새로 만들고, 잘 나누는 삶을 꿈꾸고 싶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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