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現場) / 장미숙

 

 

늦잠에 빠진 도시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버스가 지나간다. 눈 밝은 버스는 꼬부라진 길을 잘도 달려와 정류장에서 긴 하품을 쏟아낸다. 눈곱도 떼지 않은 가로등은 골목의 어둠을 쫓느라 긴 손을 휘젓는다. 형광색 옷을 입은 사람 하나, 밤새 쌓인 소음을 쓰느라 분주하다. 아침 일곱 시, 밤을 새운 사람들은 어둠을 끌어들이고 아침을 맞이한 사람들은 빛을 불러들이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주차장에서 자가용을 빼내느라 애를 쓰고, 어떤 이는 묵직한 오토바이에 묵직한 몸을 얹는다. 날렵한 자전거 한 대 그들 옆을 가뿐하게 스쳐간다. 사계절, 불 꺼진 적 없는 상가의 간판이 피로에 찌들어 파르르 떤다. 낡은 수레 하나가 뒤척이는 아침을 힘겹게 끌고 온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손잡이에 매달린 채 그네를 탄다. 도시의 껍질이 수레에 가득하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유난히 환한 불빛이 주위를 밝힌다. 빵집이라는 간판 아래 살짝 열린 문 사이로 냄새가 달려 나온다. 오늘의 현장이다.

가게는 적당한 크기로 아담하다. 문을 열자마자 탑처럼 쌓인 플라스틱 상자가 정리를 기다린다. 새벽에 물건을 배송한 기사의 시간이 상자에 차곡차곡 담겨있다. 물건들은 밤을 밝힌 또 하나의 현장을 상상하게 한다. 포장된 빵과 상자에 담긴 케이크, 음료가 진열장에 채워진다. 부자재와 원자재를 정리하느라 점주의 손이 바쁘다.

그러는 사이 오븐에서 빵이 나오기 시작한다. 알람이 울리면 제조 기사의 얼굴도 빵처럼 달아오른다. 한쪽에서는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나의 영역이다.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장갑을 끼면 작업준비가 끝난다. 계산하고 빵을 진열하는 점주, 빵을 만드는 제조 기사, 샌드위치와 음료 담당인 나, 각자의 아침은 바쁘게 시작된다.

물건 정리를 마친 점주는 뜨거운 빵을 냉판으로 옮긴다. 그 사이를 빠져나온 자유분방하고 성질 급한 냄새가 출입문까지 달음박질을 친다.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후각에 치명타를 가할 입자들이다. 벌써 한 사람이 냄새에 뒷덜미를 잡혀 엉거주춤 들어온다. 갓 나온 빵을 훑는 그의 눈이 반짝인다. 인간에게 가장 최적화된 색, 식욕을 관장하는 갈색 앞에 배고픈 영혼은 대책 없이 흔들린다. 묵직한 봉지를 들고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에 순간적인 감동이 물결친다.

제조 기사의 손길이 팔랑팔랑 나비처럼 날아다닌다. 전날 발효기에 넣어둔 생지를 꺼내고 또다시 채워 넣는다. 반죽을 자르고 꼬아 모양을 만든다. 납작하던 게 오븐기에 들어갔다 나오면 구름을 한 덩이씩 삼킨 듯 볼이 빵빵해진다. 빵이 구워지는 동안 모양 만드는 일은 계속된다. 토핑을 올리고 가루를 뿌려주고 크림빵에는 크림을 가득 채운다.

또 다른 공간, 계산대가 시장판처럼 시끄럽다. 등교 시간이다. 두세 명 짝을 이룬 학생들이 매장을 빙글빙글 돈다. 점주의 눈도 빠르게 움직인다. 틱, 틱, 바코드 찍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한차례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나면 그는 식은 빵을 순서대로 포장한다. 밋밋한 봉지에 넣기도 하고 모양을 살려 포장지에 각을 세우거나 주름을 잡는다. 몸값이 비싼 만큼 조심스럽게 다룬다. 옷을 잘 차려입은 빵은 매대에 척척 자리를 잡고 앉는다.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갈색 윤기 나는 피부를 반짝 빛낸다.

내가 서 있는 작업장의 도마 위에는 꽃밭이 펼쳐진다. 빨강 파랑 노랑, 색색의 야채가 간조롱히 놓이고 머릿속은 생산량과 종류를 계산한다. 오이를 어슷하게 썰고 파프리카를 일정한 두께로 자른다. 매끈한 토마토가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몸에 익은 손놀림에서 재료는 다져지고 형태를 갖추어 나간다. 그러는 사이 간간이 들어오는 음료를 만드느라 손이 사방 허공을 지휘한다. 펼쳐놓은 식빵에 소스가 발라지고 원색의 재료들이 자리를 잡자 누군가의 하루를 채워줄 든든한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빵집 안은 조용한 듯 수많은 소리가 공존한다. 음악 소리, 바코드 소리, 포장재의 바스락 소리, 오븐 알람 소리, 철판과 냉판이 부딪치는 소리, 칼질 소리, 물소리, 커피머신 기계음,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모두가 한 곳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이들의 자잘한 움직임은 노동의 총합을 만든다. 노동이 삶이 되고 다시 삶이 노동이 되는 순환의 현장이다.

노동에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추상은 끼어들 틈이 없다. 느긋함과 여유로움 대신 부산함과 시끄러움이 공간을 차지한다. 순간의 선택과 물리적인 힘으로 물건이 만들어진다. 손가락과 머리의 힘이 아닌 다리의 힘과 팔의 근력이 제조의 원리를 이룬다. 땀의 공식이 그대로 답으로 이어지는 곳이 현장이다. 신체의 모든 기관이 노동에 총동원된다. 힘은 다리를 지탱해주고 무게중심을 잡아주며 손놀림을 가능하게 한다. 좁은 공간을 수백 번 돌고 도는 반복행위가 생산으로 거듭난다.

창밖에서 바라보는 실내는 평화롭고 아늑하다. 노릇노릇한 갈색이 품고 있는 건 어느 날의 시간이기도 하고 어떤 날의 기분이기도 하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친근한 의미가 숨어 있다. 달콤하고 구수한 맛의 기억이 공간을 정의한다. 현장의 치열한 움직임은 전체 속에 묻혀버리고 노동의 형태는 밝음 뒤편으로 사라진다. 섣부른 관망은 현상에 머물 뿐이다.

시간은 오후로 이어지지만, 현장의 열기는 여전히 팽팽하다. 다리가 뻣뻣해지고 몸이 흔들릴 때도 직립의 자세는 계속된다. 갖가지 모양의 빵과 샌드위치는 누군가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영혼의 허기를 채워준다. 그로 인해 얻은 자본은 노동자들의 삶에 생명수가 된다. 기사는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계산대에서는 가끔 휴, 하는 한숨이 터진다. 나는 뻐근한 다리를 두드리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현장이 있다. 타워크레인의 아찔한 광경들, 바다 위의 험난한 사투, 농경지의 뙤약볕, 공장마다 식당마다 고단한 시간이 존재한다. 알차고 풍성한 수확물과 아름답고 매끈한 생산품 이면에는 거친 호흡이 숨어 있다. 소망과 평안에 대한 간절함이 녹아 흐른다. 절실함과 절박함이 때로는 두려움을 훌쩍 넘어설 때도 있다.

살아간다는 건 늘 현장을 마주하고 또 만드는 일이다. 현장에는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고 과거의 모든 게 응축되어 있다. 현장은 세상의 중심축이다. 의미가 생성되고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역사란 이름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땀의 가치가 왜곡되거나 에둘러 표현되지 않는다. 땀과 거친 숨이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지고 내일을 만들어간다. 서로의 재능과 수고가 핏줄처럼 얽혀 돌아가는 곳, 나는 오늘도 현장에 서 있다.

<좋은 수필 202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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