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의 힘 / 문혜란

 

 

집이란 대저 이러해야 한다는 호감으로 마주한다. 앉아있으되 터를 누르지 않고, 하늘로 열려있으나 가볍지 않다. 집은 하나같이 단아하고 간결하여 호사를 멀리한 근검함이 배어나나 이백 년 세월을 품고 당당하다. 기와지붕의 곡선과 골목과 담의 직선이 조화를 이루며 특별한 치장 없이도 품격을 지녔다. 마을을 오롯이 감싼 나지막한 산과 들은 조선의 문장가 신흠이 야언(野言)에서 읊은 전원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집은 사람이 담기는 곳이어서 주인의 성품을 닮는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조상들의 주거공간을 훼손하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저들에겐 그들만의 긍지가 있을 거다. 집도 사람과 함께 나고 자라고 늙는다. 시간이 쌓이면 그 안에 추억과 이야기가 담기며 역사가 된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집을 소유와 욕망의 대상으로 알고 떠도는 현대인에게 고택은 많은 말을 건넨다.

 

대소간 아홉 가구가 산다고 하나 인기척이라곤 없다. 열린 대문으로 들여다본 뜰의 잔디는 방금 깎은 소녀의 단발머리처럼 단정하다. 마당은 웅숭깊고, 마루는 검으며 기둥은 튼실하여 안정감을 준다. 어쩌랴, 담장이 높으니 주인의 민얼굴을 보는 건 첩첩하다. 담장이 높은 이유야 내 모를까마는, 어쩌자고 열린 집 마당보다 닫힌 집 대문 안이 더 궁금해지는지.

 

해 질 무렵의 흙담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골목과 능소화를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용마루와 맵시 좋은 여인의 버선코 같은 추녀에 앵글을 맞춘다. 지붕은 햇살의 각도에 따라 형태를 바꾸며 빛깔을 머금는다. 기와를 인 담은 진흙과 돌로 쌓고 골목은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열려있다. 돌담이나 꽃담처럼 화려하지 않아 외려 눈이 편안하다. 담벼락의 우툴두툴한 돌멩이에 손바닥을 대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 본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집 앞에 당도했을 때처럼 손바닥에 닿는 친근감이 좋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향이라는 뿌리가 있다. 흐르는 물도 굽이굽이 산자락을 안고 돌며 들녘을 지나 강물이 되어 바다에 도달할 때까지 발원지에 근원을 두고 흐른다. 뿌리는 하루아침에 굵어지지 않는 존재의 힘이다. 꼿꼿이 서 있어야 뿌리가 깊게 내리고 튼튼하다. 어느 외세에도 꺾이지 않을 뚝심과 자신을 지켜낼 저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칠십여 채 기와집이 울안에 모여 있는 남평문씨 마을. 일제가 세운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싫어 독자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설립한 사립학교이자 도서관이 광거당이다.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자식 교육을 위한 자구책이며 자존심이었으리. 나라가 망해도 백성은 그 땅에 살 수밖에 없다. 역사의식이 강한 사람은 가산을 정리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일제에 협력한 이들은 잘 먹고 잘살았다. 하지만 앞장서서 총 들고 싸울 수는 없고, 그렇다고 비굴하게 일제에 협력하기도 싫은 사람이 취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인흥마을 남평문씨 조상들은 독립운동은 못 했지만, 구차하게 친일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품격과 절조를 지키려고 책을 모으고 독서를 택한 사람들이다.

 

왜 적극적으로 항일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이 혀끝에 걸리지만 도로 삼킨다. 문중 문고(門中文庫)가 문중의 울타리를 넘어 뜻있는 선비들에게 개방되고, 숙박까지 배려했다면 그것 또한 애국이란 생각에서다. 망국의 아픔을 책으로써 달래고 문화를 일으켜 나라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의지와 침략에 대항하는 방편이었으리. 2만 여권의 고서가 소장된 인수 문고는 한국의 민간이 보유한 가장 방대한 양으로 알려진다. 한 집안의 뿌리며 역사적 사료다.

 

“얻었다 한들 본래 있던 것

 

잃었다 한들 본래 없던 것”

 

조그만 편액이 걸린 대문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문패의 주인은 한때 나라 안에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이름이 알려진 분이다. 편액의 글귀는, 그가 세상의 풍파와 삶의 희로애락을 두루 거친 다음에야 얻게 된 깨달음 같아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저 격조 있는 집에서 문을 닫아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 문을 열어 마음에 맞는 벗을 맞이하고, 나뭇가지 끝에 앉은 새들의 노래를 듣는다면 노년에 더한 낙이 있겠는가.

 

“당신도 저 사람들과 동본(同本)이잖아.”

 

인흥마을을 지긋이 바라보며 생각에 젖은 나를 남편이 깨운다. 남평문씨는 고려 말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조선에 의복 혁명을 일으킨 문익점 선생의 후손이다. 무명은 육백 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변함없이 가장 사랑받는 옷감이다. 조상의 영광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으련만 나는 가문에 관심이나 정이 없었다. 어쩌면, 내세울 것 없는 존재감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남편의 한마디는 앞선 피의 흐름을 생각하게 한다. 티끌처럼 미미한 나의 존재가 저 단단한 뿌리 한 가닥에 근본을 두고 있음에 대한 자각이 찌릿 한다. 순간, 저 오래된 핏줄을 향해 내 존재를 타전하고 싶다.

 

“여기 나도 있어요.”

 

목화밭에 꽃이 피고, 인흥 연못이 수련으로 채워지면 다시 한번 와야겠다. 그때는 와글와글 개구리 합창도 들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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