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풍 / 김경순

 

 

남편은 또 배낭을 꾸린다. 몇 달째 내가 보아오는 토요일 밤의 풍경이다. 익숙하고도 절도 있는 손놀림이 일련의 경건한 의식 같다. 여벌의 옷가지와 아직 끊지 못한 담뱃갑이며 지갑, 손수건 등을 챙기며 내일 아침 잊어버린 물건 없이 떠나려는 꼼꼼함을 발휘한다. 준비가 완벽하다 싶은지 서둘러 자러 들어가는 뒷모습이 마치 도망자의 그것처럼 궁색하다.

그는 애초부터 변변한 취미 하나 없이 오로지 생업에만 충실했다. 성실 하나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살았다. 하지만 네모난 틀 속에 갇혀 사는 남자는 곧 매력을 상실했고, 아내로부터 심심찮은 타박을 들어야 했다. 남들 다 누리고 사는 잔잔한 재미마저 외면하는 무미건조한 인생이 답답하기도 했거니와 정반대의 성격이 나에게는 족쇄와 다름없었다.

무언가를 손해 보는 것 같은 일상도 오래 반복되니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누구든 다분히 길들여지는 채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다. 치명적 요소가 아닌 다음에야 매일같이 전투적 자세로 살 필요가 없잖은가. 나 역시 그럭저럭 포기하고 나니 속마음도 수월해졌다. 그런데 이 무슨 해괴한 바람이란 말인가. 요지부동이던 그 모습에도 변화는 찾아왔다. 결혼 이십 년 만이었다.

올봄, 심하게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을 업고 남편은 느닷없는 여행길에 나섰다. 생뚱맞기는 했지만 훌쩍 떠나는 그를 보며 숨통이 트이는 건 나였다. 일터와 집밖에 모르던 정형화된 정서에 드디어 틈이 열리는가 싶었다. 그 틈 속으로 한 줄기 빛이라도 만난 듯 나는 두 팔을 들어 환영했다. 남편은 느슨하게 풀어놓은 일상에서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자유와 안식을 잠시나마 누리게 될 것이었다. 집을 나서는 모양이 그리 자연스럽지는 않았으나 그를 둘러싸고 있던 잡다한 것으로부터의 해방이 좋아 보였다.

시작은 끝을 장담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남편은 친구들과 어울려 봄 내내 이름난 산을 찾아 전국을 떠돌았다. 한 계절 흠뻑 빠지고 나면 그만두겠지 싶었는데 여름이 들기가 무섭게 바다나 계곡으로 코스를 바꾸었다. 과연 고향 친구가 좋긴 좋은 모양이었다. 뭉치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세를 낸 봉고차에 여남은 명이 꽉 끼게 타서는 떠나고 또 떠났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남편의 일탈은 그칠 줄 몰랐다.

덕분에 나는 둘이서 다니던 집 앞 산을 혼자 오르는 외기러기 신세가 되었다. 오롯한 휴일의 자유가 달콤하기도 했으나 남편의 부재가 잦아지면서 서운함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속내를 알아주기는커녕 여행지에서마다 찍은 사진을 휴대폰 가득 담아 와서는 자랑을 하는 모습이 어린애가 따로 없었다.

한 번은 남도의 섬을 다녀오다가 다 같이 저승길로 갈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친구가 졸음운전을 하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며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옆에 앉은 이의 순발력으로 큰 불행은 모면했지만 너무 먼 길을 다니는 건 좋지 않노라 자책했다. 이제야말로 끝이겠구나 하며 내 곁으로 돌아올 남편을 기대했다. 그러나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여전히 배낭은 남편의 토요일 밤을 지키고 있었다. 급기야 부부 싸움을 불러오고 한바탕 전쟁까지 치르게 되었다. 그러고도 고쳐지지가 않는 남편의 일탈은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듯했다.

그즈음 남편 친구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와 같은 신세가 된 그녀 역시 적잖이 화가 난 모양이었다. 한창 노는 때의 아이들처럼 어떻게 날마다 저리 몰려다니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해댔다. 오십 줄에 접어든 우리에게도 곁을 떠난 아이들의 빈자리와 갱년기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노라 성토했다. 그것을 헤아려주지 않는 남편들의 무지를 우리는 일심으로 야속해했다. 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행보를 개탄하며 괘씸해했다. 그러면서도 속내는 켕기는 점이 없지 않았다.

어불성설이 따로 없다. 이것이야말로 애당초 내가 바라던 남편의 모습이 아니던가. 자신만의 틀에서 벗어나 사방으로 날기를 바랐던 날이 얼마였더냐. 다만 잔잔한 바다에 급물살이 일듯 한순간 벌어진 상황에 우왕좌왕하는 사이 속절없이 계절만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긍정과 부정 사이, 그 감정의 줄타기에서 승패는 쉽게 가늠되지가 않았다. 차근히 그리고 오래도록 아내라는 이름으로 길들여진 나는 낯설고 아이러니한 스릴을 맛보아야 했다.

세월이 변하니 사람도 변한다. 남편은 벌써 친구를 여럿 잃었다. 사고로, 병마로 하나 둘 떠날 때마다 의기소침해하더니 요즘은 아예 대놓고 세상에 없는 친구들 이야기를 해댄다. 최근엔 홀어머니를 잃은 친구 걱정이 늘어졌다. 독신인 그를 애석해 하다가 친구가 느낄 상실감이며 외로움 타령을 하는 것이 영락없는 사춘기 소년이다. 그 심리를 현미경 들여다보듯 할 재주야 없지만 어렴풋이 알 것도 같은 어떤 것이 자꾸만 남편을 끌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정신없이 달려오던 길을 돌아보면 처음으로 한번 쉬어볼 참인지도 모른다. 잠시 내려놓고 싶은 남자의 무게를, 남몰래 느끼는 인생무상을 여자인 내가, 주부로만 살아온 내가 알아채기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함께 한 세월이 만만치 않으니 모른 척하는 것도 예의는 아닐진대 해답을 찾는 일은 대략 난감하기만 하다.

돌이켜 보니, 온전한 휴식 한 번 갖지 못한 소시민의 팔자에 숨이 턱에 찰 때도 됐다. 장거리 마라톤에서 지친 죽마고우들이 중년이라는 마지막 오르막길에서 서로 물을 나누어 마시며 갈증을 푸는 것이 아니랴. 어릴 때처럼 그렇게 어울려 잠시라도 세상만사를 접어두고 싶은 것이리라 짐작하니 서운해할 일도 아니다. 한 풀 꺾인 모습을 차마 아내에게 보이지 못하고 동병상련의 친구로부터 위안을 주고받는 거라면 이 남자들 참 측은하지 않은가.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 그즈음에 찾아오는 허탈감으로 잠시 바람 따라 휘청하는 것이라면 기다려 볼 일이다.

그 흔한 여행 한 번 맘 편히 못한 남자. 빛나는 옷, 좋은 음식마저 순위 밖으로 밀어 둔 남자, 뉴스 대신 드라마를 본다고 핀잔할 때는 언제고 티브이 화면을 아예 식탁 쪽으로 돌려놓고 드라마를 보는 남자. 더러는 눈물도 흘리는 남자. 생전 음식 투정이라곤 않던 사람이 날마다 짜니 싱겁니 타박하며 사소한 일에도 잔소리가 늘어지고 툭하면 삐지는 남자가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처자식을 위한 삶만을 고집하다 머리에 서리가 반쯤 내린 볼품없는 남자로 전락한 그를 위해, 그리고 그와 같은 대열에 있을 세상의 모든 가장들을 위해 응원의 박수를 보내야 할 때인가 보다. 중년이라는 말은, 참으로 많은 것을 희생하고 버리고 나서야 얻어지는 아픔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잠든 그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얼마를 더 가고서야 멈출지 모르는 수척한 길들이 어지러이 남아있다. 남편이 떠안아야 할 방황의 끝은 어디인가. 가고 또 가다가 언젠가는 돌아올 자리, 그 원형의 자리에서 나는 말없이 기다리려 한다.

꿈을 꾸는지 잠꼬대 소리가 들린다. 작년 여름에 이별한 친구의 이름을 들릴 듯 말 듯 부르는 목소리에 그리움이 묻어난다. 소싯적같이 놀던 친구를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것일까. 그때의 동무들이 모두 모여 그 시절처럼 즐거이 노는데 지금은 곁에 없는 절친했던 이가 안타까운가 보다. 머리맡을 지키고 있는 메모지의 글자들마저 잠을 설치고 있다. 그 곁을 소리 없이 불어와 남자를 흔들고 있는 것, 계절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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