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해장국밥집 / 심선경

 

 

난 하루의 고단함이 비 젖은 전봇대에 기대 있다. 작은 우산 하나에 얼굴만 집어넣은 덩치 큰 아이들이 뭐가 그리 좋은지 빗물을 튀기는 장난을 하며 우르르 몰려다닌다. 일방통행 길로 잘못 들어선 차의 뒷걸음에 무거운 세상은 저만치 밀려나고, 나는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는 한 사내를 기다린다. 서둘러 골목길을 빠져나가지 못한 차바퀴에 달려온 길이 황급히 되감긴다.

얼굴보다 걸음새로 자신을 알아채게 하는 남자. 우산도 없이 골목 끝에서 느릿느릿 걸어온다. 간밤의 느른함을 털고 일어선 사람들이 덜 깬 취기를 다스리기 위해 해장국집의 이른 아침을 두드린다. 먹고살려고 온종일 일한 뒤 밤늦도록 술 마셔서 속 쓰린 가장을 위해 아내 대신 해장국집 주인이 마른 황태의 몸통을 팍팍 두들겨서 해장국을 끓인다. 인제군 북면 용대리 황태덕장에서 한겨울 모진 추위에 눈도 못 감고 입도 못 다문 채, 얼어 죽은 황태가 여기 와서 또 한 번 죽어나간다.

오래전에 찾아와 먹었던 속 시원한 해장국집을 다시 찾기가 그리 녹록지 않다. 줄줄이 늘어선 가게마다 모두가 자신이 ‘원조’라며 앞다투어 간판을 내걸어 놓았기 때문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해장국집들의 중간쯤이었으리라. 골목 끝에서 걸어온 그와 눈빛을 맞추고 내가 먼저 가게 문을 밀고 들어간다.

뒤따라 들어온 남자의 눈이 퀭하다. 먼지와 땀에 절어 후줄근해진 점퍼는 그가 부대껴 온 일상을 대신 말해준다. 담배 한 개비를 태워 무는 동안 그는 허공을 몇 번이나 움켜쥐었다 놓는다. 꽁초를 비벼 끈 오른손이 심하게 떨린다. 수전증도 아닐 텐데 혼자서 얼마나 속을 태웠으면 저 모양이 되었을까. 그는 소주 한 병을 시켜 제어되지 않는 손 떨림을 막아보려 황급히 따른 술을 목구멍 속에 털어 넣는다.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서 겪어온 자금 압박 같은 것은 아마도 이골이 났을 터다. 하지만 철석같이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 어느 날 갑자기 망망대해에 고독한 섬이 되어 떠있는 그의 심정은 어떤 말로 위로가 될까. 날마다 계속되는 채권자들의 빚 독촉에 아침에 눈 뜨는 것이 두려웠을 그의 모습을 보니 정작 내가 하려 했던 말들은 목구멍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리고 만다. 숱한 세월을 함께 겪어온 덕에 이젠 더 이상 감출 것도 드러낼 것도 없을 만큼 서로의 허물을 잘 아는 사이가 된 지금, 그저 침묵만이 그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을 듯하다.

더운 김이 얼굴에 확 끼쳐오는 해장국을 앞에다 두고 나는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다. 울컥대는 가슴속의 말들을 억누르고 급히 삼킨 뜨거운 국물에 입천장이 훌러덩 벗겨져도 내색조차 할 수가 없다. 언젠가 이집을 바로 찾지 못하고 애먼 곳에 가서 입에 맞지 않는 해장국을 먹었을 때처럼 콩나물이 설익어 비린내가 난다느니, 해장국에 날계란이 들어있지 않다느니 하는 푸념조차 지금은 늘어놓을 수가 없다.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의 속내를 꿰뚫고 있지만 그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다. 차라리 이럴 때는 주인장의 손에 길들여져 옹골진 칼칼함으로 날 선 취기를 다스려주는 황태해장국으로 거듭 나서 그의 쓰라리고 아픈 속을 풀어주는 편이 훨씬 낫지 싶다.

온몸의 마디마디마다 시린 빗줄기로 박혀오는 이십 년 노동의 세월. 보이지 않는 유리벽처럼 가장인 그가 부대껴 온 일상은 맨몸으로 오르기 힘든 높고 험난한 산이었을 게다. 그는 지금 지나가버린 시간의 거미줄에 매달려 있다. 또 어두운 미래를 두려워하며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가불해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장국집을 나와 골목길을 나란히 걷는다. 작은 우산으로 함께 비를 피하다 보니 우산을 쓰지 않은 것과 다름없는데 비에 젖은 몸이 초라해질 정도로 작아져 버린 우리는 안팎이 몹시도 닮아 있었다. 그의 어깻죽지에 떨어지는 빗방울만 툭툭 쳐내어 줄 뿐, 마음속에 감춰둔 말은 끝끝내 하지 못한다.

골목 끝까지 걸어 나와 꽃 가게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일부러 바깥에 내놓은 듯한 수련이 우중에도 하얀 꽃대를 피워 올렸다. 수련 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광경을 무심히 바라본다. 빗물이 고이면 수련 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버린다. 그 물이 아래 수련 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이다가 또르르 몸을 말아 물 담긴 그릇으로 다시 떨어낸다.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잠시 멈춘 숨을 길게 내쉰다. 수련 잎이 욕심대로 빗방울을 다 받아들였다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여버리고 말았을 게다. 하찮게만 여겨졌던 저 연잎도 자신이 감당할 만큼의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버린다는 것을 나는 여태껏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다.

어찌 보면 그가 이토록 불안하고 슬픈 이유 또한 자신이 감당하지도 못할 무거운 짐을 혼자 등에 지고 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도 수련 잎처럼 견뎌낼 만큼만 남겨두고, 감당치 못할 인생의 무게는 그만 아래로 내려놓았으면 한다. 모순 투성이인 어설픈 삶이지만 간밤의 숙취를 펄펄 끓는 해장국 한 그릇으로 풀어내듯, 꼬여버린 인생의 실타래도 하나씩 풀어나갔으면 싶다.

지난밤의 폭음이 아직도 속을 뒤집는지 그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다. 눈가로 주름이 자글자글 잡힌다. 젊었던 날, 패기에 넘쳐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던 그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로 잠적해 버린 걸까. 식어버린 가슴이 그나마 뜨거운 해장국 한 그릇에 데워지기라도 한 듯 그의 입가에 잠시 쑥스러운 듯한 미소가 번진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꿈이나 진실, 혹은 정의라는 것은 모두가 '원조식당'이라고 이름 붙인 그 많은 해장국집 간판 중에 과거를 슬쩍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름이 바뀌었어도 그 바닥에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찾아가듯이, 스스로 바른길을 찾아서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모습의 얼굴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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