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을 풀다 / 김순경
빗장을 열 수가 없었다. 까치발을 해도 손이 닿지 않아 바둥거리다 결국 포기했다. 쇠붙이 자물쇠가 황소 불알처럼 축 늘어진 할아버지의 반닫이 궤는 열 수가 없었다. 누구나 말할 수 없는 사연 하나쯤은 가슴 궤에 재워두고 빗장을 건 채 살아간다.
무섭다. 미친 듯이 번져가는 불길이. 이산 저산을 넘나들며 거침없이 나아가더니 마침내 민가를 덮친다. 영문도 모르고 날아드는 유탄에 절명하듯 대대로 내려오던 삶의 보금자리를 하루아침에 잃고 절규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누군가는 불을 내고 또 다른 사람들은 끄느라 생사를 넘나든다.
며칠째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낮에는 연기가 밤에는 불꽃이 토끼몰이 하듯 횡대를 이루며 세를 확장한다. 산세가 험하고 소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불길이 잡힐 만하면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달아난다.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고 헬리콥터가 물을 뿌려대지만 비웃기라도 하듯 건조한 봄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능선을 타고 넘는다. 축지법을 쓰듯 단숨에 수십 리를 날아가는 화염은 꺼질 듯 비실거리다가도 금세 폭군으로 변한다. 매일 매스컴을 달구는 산불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유년 시절의 한 기억을 불러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귀청을 울리던 매미 소리도 사라진 늦가을이었다. 만산이 단풍으로 물들자 짙은 녹음을 자랑하던 갈참나무는 잽싸게 단단한 열매를 멀리 떠나보냈다. 떨켜에서 떨어져 나온 나뭇잎도 바람을 타고 잠시 곡예비행을 하더니 계곡 어딘가로 향하고, 미처 갈 곳을 정하지 못한 마른 낙엽들은 스산한 가을바람에 떠밀려 주검처럼 곳곳에서 나뒹굴었다. 성급한 나무들은 벌써 나목이 되었지만, 싸리나무는 노란 이파리 몇 개를 붙잡고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꽃을 바라보았다.
가을걷이를 끝낸 소를 몰고 산으로 갔다.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과 어울려 강을 건너고 너럭바위를 지나 산등성이에 올랐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동해는 늘 시선을 붙잡았다. 가끔 지나가는 배를 바라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학교에서 배운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여기만 오면 실감이 났다. 작은 점으로 시작된 배가 점차 모습을 드러내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사라지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후련했다.
친구가 모닥불을 피웠다. 밭이나 논두렁을 태우듯이 불을 지르는 것은 아니었다. 땅을 파고 돌로 경계를 만들어 불이 번지지 못하게 한 다음 낙엽과 삭정이를 놓고 성냥불을 켰다. 간간이 숯불이 보이자 가져온 밤과 고구마를 조심스럽게 불 속에 밀어 넣었다. 먹을 것을 다 먹고 심심해지자 아궁이를 만들고 연도를 만드는 불장난이 시작됐다. 불꽃이 빨려 들어가면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재미있어 연도를 계속 늘렸다. 나중에는 끝에다 굴뚝을 만들고 아궁이가 터지도록 나무를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굴뚝 근처 잔디밭으로 불티가 날아갔다. 얼른 뛰어가 불을 끄려고 솔가지로 내려치는 순간 바람이 홱 불면서 저만치서 또 붙었다. 뭔가 조짐이 좋지 않아 모두 달려가 솔가지로 끄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불씨가 사방으로 튀었다. 대낮이라 잘 보이지도 않았다. 불을 끄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녔지만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덜컹 겁이 났다. 자꾸만 불이 번지자 무서웠다. 바람결에 날아간 불티 하나가 그렇게 빠르게 세를 불릴 줄은 몰랐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자신의 위력을 키우는 동안 아이들은 불장난에만 전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소를 몰고 최대한 먼 곳으로 달아났다. 풀을 뜯던 소는 영문도 모르고 회초리에 맞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완전히 벗어났다 싶을 정도로 먼 곳에 가서 뒤를 돌아보니 불길은 공동묘지를 향하고 있었다.
그제야 다급한 징소리도 희미하게 들렸다. 검은 연기를 보고 놀란 동네 어른들이 들판을 가로질러 강을 건너는 모습이 보였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보리를 파종하고 있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올라왔다. 낫과 괭이를 들고 부리나케 산길을 따라 올라온 어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불이 멀리 번지지 못하도록 톱과 낫으로 미리 나무를 잘라내고 갈퀴로 불씨를 파헤쳤다. 기세를 더해가던 불꽃이 점차 힘을 잃어가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공동묘지가 완충 역할을 하는 바람에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불이 꺼졌다고 끝이 아니었다. 산불 낸 사람을 찾느라 몇 번이나 경찰이 찾아왔다. 지난겨울 아랫집 헛간에서 불이 났을 때도 그랬다. 아궁이에서 퍼낸 재에 남아있던 불씨가 살아나 순식간에 헛간을 잿더미로 만들자 주인아주머니가 몇 번이나 지서에 불려갔다. 불안했다. 경찰 제복만 봐도 겁에 질려 피해 다녔다. 우리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고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이장을 찾아가도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 경찰은 아이들을 만나 꼬치꼬치 캐묻고 다녔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말을 더듬고 버벅거리는 앞집 형이 근처에서 나무를 했다는 이유로 방화범으로 지목되었다. 먼발치서 경찰 조사받는 장면을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버지에게 이실직고하려고 몇 번이나 마음먹었지만 정작 말은 목구멍에 걸렸다. 시름이 깊어지자 잠도 잘 오지 않고 밥맛도 없었다. 며칠 후 이장이 지서에 가서 사건을 종결짓고 왔다는 소문과 함께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때 이장은 아버지였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 싶다. 불안해하는 아들을 보며 모를 리가 없었지만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빗장은 영원히 밀봉하는 것이 아니다. 밥솥도 눈물을 흘리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나야 뚜껑을 열듯이 아무 때나 열지 말라는 것이다. 살다 보면 조금은 참고 기다려야 할 때가 많지만 갈수록 재워두고 누그러뜨리고 숙성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각종 방송 매체가 기다리는 설렘과 궁금증마저 앗아가자 매사에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경우가 많다.
세월이 모든 것을 풀고 지운다. 영원할 것 같던 할아버지의 궤도 산불의 흔적도 그날의 주인공도 다 사라졌다. 반닫이는 고물상에 넘어갔고 까맣게 타버린 산은 소나무 숲이 되었고 불을 내고 껐던 사람들은 다시 올 수 없는 저세상으로 떠났다. 반세기가 넘도록 잠가 두었던 가슴 궤의 녹슨 빗장을 이제야 혼자서 풀어본다. 덧없는 일인 줄 뻔히 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