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풍경 / 염귀순

 

 

 

여성복 매장에 신상품이 줄줄이 걸렸다. 하늘하늘한 원피스, 치마, 블라우스가 색색의 표정으로 눈길을 잡는다. 디자인과 색깔을 꼼꼼히 살펴보는 사람, 골라든 옷을 거울 앞에서 체형과 견주어보는 사람들로 매장 안은 조용하면서도 사뭇 부산하다. 와중에 얼핏 뜻 모를 소리가 들린다.

바로 옆의 여자1이 돌아본다. 한데 어머나, 작은 손가방을 가슴에 꼭 끌어안은 여자2가 중얼거리는 혼잣소리였다. "아~ 감사합니다. 하이고~ 감사합니다." 아마 손가방을 행거에 걸어두고 옷을 입어본 후 그대로 나갔던 모양이다. 뒤늦게 혼비백산하여 돌아와 가방을 되찾은 정황임이 추측된다. 얼마만큼 마음 조렸을지, 잃어버렸다고 걱정한 가방이 그 자리에 고스란히 있어준 사실이 얼마나 벅차고 고마울지 헤아려진다. 누군가에게 절이라도 하고픈 심정이리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여자1의 눈앞에 가뭇한 시간 저쪽, 또 하나의 영상이 떠오른다.

푸름만으로도 찬란할 이십대 초반의 일이었다. 초등학생이던 막내 동생의 체육복을 사러 학교에서 지정한 곳으로 갔다. 여러 어머니들과 섞여 동생에게 맞춤한 치수의 체육복을 골라 들고 계산을 하려다가 깜짝 놀랐다. 지갑이 온데간데없었다. 하늘이 노래진 것도 잠시, 사람과 옷 꾸러미들로 혼잡한 매장 안을 눈 아프게 살펴나가는데 아, 다행히도 수많은 발들 사이에서 바닥에 납작 엎드린 지갑이 보였다. 그때의 조마조마하고 팔딱거리던 새가슴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 교차하던 순간은 여자1에게 영 잊히지 않는다. 자신이 끌어안아야 할 가족이 있다는 생각으로 마른 입술가시랭이를 뜯으며 밤을 지새우곤 했던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다.

그날 체육복 가게의 시멘트바닥은 알았을 게다. 여리여리하게 생긴 아가씨가 찬연할 '꿈'보다는 시급한 ‘일터’를 우선으로 택한 사실을. 날마다 만원 버스에 올라 몸살을 앓으며 쳇바퀴 돌듯 출퇴근하던 일상을. 얄팍한 월급봉투에서 떼어 넣어간 지갑 속 지폐 몇 장을. 혹 그래서 놓쳐버린 돈지갑을 그녀의 눈에만 띄게 하였나, 여겨진다. 막막한 내일과 버거운 오늘이 연이어 삶을 압도하는 길에서 ‘긍정’ 마인드를 훈련 했던 아린 청춘에게, 세상 밖 어느 높으신 분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놀라고 아찔했던 그 오랜 기억 때문인가. 가방을 품에 안고 감격하는 여자2의 심경이 여자 1의 마음에 뭉클 포개어진다. 더구나 두 눈을 반쯤 감고 기도인양 되뇌던 혼잣말과 진심어린 얼굴은 순수하기까지 했으니.

둘러보면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 사방에 따스한 사람들이 있어 세상이 그나마 훈훈한 느낌이다. 이즈음 유쾌한 혼쭐, '돈쭐'이라는 신조어가 흔쾌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도 그렇다. 이 무슨? 어리둥절했지만 뜻을 알게 되면서 마음의 온도가 올라간다. 돈쭐은 '돈'과 '혼쭐내다'가 합해진 단어로 '돈으로 혼내주자'라는 역설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의로운 일을 했거나 타인의 귀감이 된 가게의 물건을 팔아주자는 뜻이다. 선행을 베푼 판매자를 향한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팔아주기' 운동인데, 생을 기껍고 활기차게 받아들이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딸의 생일날 외상으로 피자를 주문한 고객을 외면하지 않은 피자가게 사장님, 남자1이 소개되었다. 어려운 생계 탓에 부득이 딸을 위한 외상 주문을 감행했던 고객에게 그는 '결제 완료' 처리를 했으며 "따님이 또 피자 먹고 싶다고 하면 연락주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피자를 보냈다고 한다. 얼마 전 한 언론사에서 전한 뉴스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또 다른 고객은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써달라며 10만원을 피자가게에 지불했다고. 불가항력으로 맞은 코로나의 횡포가 모두에게 고통을 안겼지만 피자 한 판은 ‘더불어 살다’의 의미를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등굣길 아이들에게 매일 빵을 나눠주고 있는 '빵식이 아저씨', 남자 2의 사연도 알려졌다. 월세로 조그만 빵집을 운영하는 그는 어린 시절 못 먹고 살던 때를 기억하여 행하는 일이란다. 1년 6개월째. 그러자 사람들이 그의 빵집에 와서 익명으로 100만원 봉투를 툭 던져놓고도 가고, 가격보다 훨씬 많은 돈을 결재하기도 했다. 착한 척도, 큰 소리도, 별 단언도 하지 않는 선행이 온기를 전파하는 사람 동네 사람 풍경이 어떤 명화의 장면보다 찡하다.

곤고함 가운데도 꽃은 핀다. 삶은 으슬으슬한 추위와 불안감을 늘 업고 있지만, 울먹울먹한 일상에 한아름의 감동을 안겨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위로하는 꽃일 테다. 꽃을 피운다는 건 아직 가슴이 뜨겁다는 것. 한 줄기 얇은 햇살을 잡고서도 피어나는 순정純正한 힘이, 세상을 희망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되지 않을까.

자주 동동거리다 시름시름하는 여자1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이 바쁘고 무엇이 서러운가 하고. 이제와 기막히게 슬픈 일도, 그렇다고 호들갑을 떨 만큼 좋은 일도 없는데 말이다. 사람 제각각의 품격을 봐도, 어떤 입지나 소유한 무엇이 아니라 마음의 크기와 도덕적 품성에 더욱 가깝지 싶다. 절제 포용 정진 등으로 닦아가는 자기 발전과 성장, 타인에 대한 배려 등등. 어쩜 호시절보다는 힘든 난難시절에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나타나는 듯하다.

집착하지 말고 조급하지도 말고 정성을 다해 사는 길이라면 또 어떠리.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세상에 태어난 책무를 이행하는 걸음에 굳이 내세울 이름이 없으면 또 어때. '이만큼 살아서 마주할 산이 저기 늘 앉아있고 슬플 때 볼 바다가 있으며 밤하늘엔 별이 있다'던 시인의 소리와도 다시금 마주쳤던 오늘, 여자1은 앞으로 남겨질 시간을 생각해본다. 한 발 뒤로 물러서고서야 보이는 것들이 더 많다는 건 만고의 진리인 것을…

한참을 서성이던 옷 매장에서 마침내 블라우스 하나가 여자1의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듯 소박한 듯 보이는 검정색에 아무런 장식 없이 체크무늬 칼라만 얌전히 달렸을 뿐인데, 그녀는 왜 단박 꽂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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