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 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이성복(1952∼)
나이가 적고 아는 것이 적을 때에는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 조금만 신기해도 좋고, 조금만 새로워도 좋다. 작은 것마저 좋아지니까 세상이 반짝반짝하고 웃을 일이 많다.
나이가 많아지면 좋아하는 것이 줄어든다. 좋아서 하는 일은 줄어들고 해야 해서 하는 일이 늘어난다. 의무를 해치우다 보면 좋아하는 마음 같은 건 생각할 여유도 없다. 그럴 때일수록 시가 더 필요하다. 시는 긴 시간이 필요 없다. 몇 분 만에 후다닥 읽는 것도 가능하다. 그 짧은 사이에도 우리는 한 편의 시를 좋아할 수 있고, 한 명의 시인을 좋아할 수도 있다. 또는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던 과거를 떠올릴 수도 있다. 잃어가는 좋아함을 회복한다는 것은 대단히 소중한 일이다.
시인 이성복은 좋아하기에 좋은 시인이다. 그의 시는 어딘가 분명치 않으나 쿵쿵 소리를 내면서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쓸쓸한데 꽉 차 있고, 사랑스러운데 애잔하다. 이 세상이 돈과 물질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의미와 눈빛과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늦고 헐한 저녁,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 춤추는 나뭇잎이 우리의 굳은 마음을 두드린다. 그래서 읽다 보면 잃어버렸던, 사실은 우리가 좋아했던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시를 좋아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는 효과는 덤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