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딘 칼 한 자루 / 박남주 - 제8회 철도문학상 최우수상
수서역에서 광주송정역으로 가는 SRT 열차를 탔다. 사촌 형님의 부고를 받고 황망히 길을 나선 탓이라 두서없이 자리를 잡고 앉으니, 차장 밖은 오월의 싱그러움이 한창 펼쳐지고 있었다. 산야가 온통 옅은 초록에서 짙은 초록으로 물들었다. 모심기를 하려고 물을 담아 놓은 논과 누르스름하게 익어가는 보리밭이 어우러지는 들판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을 배경으로 SRT 열차는 빠르게 달렸다. 무엇이
그리 급해 사촌 형님은 인생 여행길에서 황급히 하차했을까. 비어 있는 형님의 빈자리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기차가 종착역에 닿으려면 한참을 달려야겠지만, 아직 내게 남은 역이 몇 정거장인지 나는 세지 않기로 했다. 휙휙 스치는 풍경 속에 오도카니 앉아 있으니, 시간이 마치 거꾸로 달리는 듯했다. 형님과 함께 보낸 개구쟁이 짓을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송정리역 앞에 큰 당숙집이 있었고 조금 떨어진 철길 건널목에 작은 당숙집이 있었다. 철길을 중심으로 낮고 자그마한 집들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철길과 가까워서 어린 마음에도 늘 불안했다. 봄이면 철길 옆에 민들레꽃이 피어있고 온갖 풀들이 무성했다. 당숙 집안에 행사가 있는 날이면 사촌 형님과 나는 철길 레일 위를 걸어보면서 사내들만의 대담함을 키웠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장면이지만 우리는 겁내거나 주저하지 않고 기차가 달려오기만 기다리며 언덕에 바짝 엎드려있었다. 우리가 기차를 기다린 이유는 대못으로 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햇살이 레일 위를 비춰 번들거리며 빛날 때 그 위에 대못을 올려놓고 숨죽이면 조마조마했던 마음까지 납작하게 눌려 반반해졌다. 대못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광에 있는 연장통에서 아버지 몰래 못을 골라낸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 뿐 만이 아니었다. 엄지와 검지의 지문이 닿도록 못치기를 해서 따놓은 못이 내게는 많이 있었다. 기찻길 근처에 사는 당숙 집에 가는 날은 어김없이 우리는 못을 챙겨 갔다.
기차는 멀리서 기적을 울리며 곧 지나갈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얼른 대못을 철로위에 나란히 올려놓고 철길 옆 골목으로 숨어서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육촌인 서주와 형님은 철길에서 멀리 도망가지도 않고 기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철길 옆에 살아서 기차 소리에 익숙했으리라. 나는 더 멀찌감치 떨어져 몸까지 숨기고 있어도 커다란 기차가 굉음을 지르고 덜컹거리며 지나갈 때 몸을 움츠리곤 했다.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기대를 안고 철길로 달려갔다. 가슴 졸이며 못칼을 찾다가 실망스런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제대로 납작하게 눌린 못을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못 머리가 동그란 것은 날씬한 몸통 보다 커서 아쉽게도 레일 아래로 떨어져 있거나 어디론가 가버렸다. 다음 기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못을 올려놓기를 몇 번 하다 보면 다행히 납작해진 못 서너 개는 건질 수 있었다. 육중한 기차바퀴에 눌린 못은 납작해졌지만 칼로 사용하기에는 무딘 편이었다.
사촌 형과 나는 못 머리를 콘크리트 담벼락에 갈아내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한쪽을 칼날처럼 만들려면 숫돌에 대고 한쪽을 갈아야했다. 연필을 깎을 수 있기는커녕, 칼이라 부르기도 민망했지만, 그저 못칼 한 자루 가질 수 있음에 만족했다. 나는 기를 쓰며 못칼을 여러 개 만들어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우쭐대고 싶었다. 형과 함께 철로 위에 못을 올려놓고 기다린 일을 무용담처럼 말하면 친구들은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친한 친구에게 주며 뻐길 수 있어서 뿌듯했다. 변변한 장난감 하나 없던 친구들에게 썩 괜찮은 선물이었다.
숨 가쁘게 달리던 SRT 열차가 광주송정역 플랫폼에서 긴 한숨을 토해내며 멈춰 선다. 예전에 우리가 뛰놀던 기차역이 아니듯이, 육촌 서주동생도, 봉주, 경주 형도 종착역에 닿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아무도 없다. 이제 나도 하늘역이 더 가까운 나이다. 우리끼리 모여 밤새워 장난치던 송정리역 당숙 집은 이제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돌이켜보면 한때는 예리한 칼이 되려했으나 내 삶은 여전히 무딘 칼이었다. 살다보면 잘 드는 칼이 필요 할 때도 있었다. 칼날을 벼리려고 다짐을 해봐도 번번이 그렇지 못했다.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고 꼭 필요한 곳에만 써야 함이 당연했다. 날카로운 칼날은 어쨌거나 상처가 남는 법, 어디 칼이라는 게 그리 만만한가. 내가 원한 인생은 아니었지만 무딘 칼 한 자루로 한 세상을 건너오는 동안 칼의 위력을 실감했다. 내리쳐도 상처가 남지 않는 못칼 한 자루면 나는 살아가는데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촌, 육촌 형수님들의 얼굴에 깊어진 주름을 보니 세월이 무상함을 느낀다. 고왔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다. 영정 앞에 서니 기적을 울리며 멀리서 기차가 달려오는 듯하다. 나는 내 마음에 박혀있던 대못 하나를 꺼내 레일 위에 올린다.
“행님요, 지금 기차가 들어오고 있구만이라우!”
오직 앞만 보고 달린 형님은 이따금 고음의 쇳소리를 내며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먼 길을 떠나고 있다. 서산마루에 일순간 스러지는 빛처럼 사진 속의 형님이 빙그레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