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돌탑 / 박양근

 

부산의 중심지에 자리한 금련산에 작달막한 봉우리들이 솟았다. 여름 뙤약볕의 열기를 받은 돌산이 구경거리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생겨난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 세 번의 여름이 지나면서 투박한 돌탑이 막 손에 의하여 올려진 것이다.

어느 해 여름철이었다. 그해는 유달리 가뭄이 심했다. 덩달아 비도 오랫동안 내리지 않았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산길에서 하얀 먼지가 피어올랐다. 경박하리만큼 가벼운 먼지가 길 주변의 잎에 보얗게 쌓여 마치 능수버들 꽃들이 쌓인 듯했다. 그 여름은 모든 것이 유달리 가볍게 움직이는 계절이었다.

그 길에는 평소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다. 햇살을 가릴 나무도 없고 길은 울퉁불퉁해서 발걸음이 편치 않은 길이다. 비탈 밑에는 가로수가 넌출대는 산복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웬만한 사람들은 차를 타고 오르내린다. 햇볕이 쨍한 언덕길을 굳이 택한다면 살을 빼거나, 아니면 사람들을 피하고 싶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날의 비탈길은 유난히 따가웠다. 한 조각의 구름마저 드리우지 않았다. 넉넉한 그늘이 아쉽기는 하지만 얼굴을 구워보자는 오기로 언덕 등성이 길을 택했다.

좁은 길에서 노부부와 마주쳤다. 얼핏 보아 환갑이 지난 나이고, 꾀죄죄한 차림이었다. 그런 일을 함께할 두 사람이라면 부부 말고는 달리 짝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은 주름살투성이였다. 그들은 어쩌다 오가는 등산객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땅바닥에 쌓인 돌무더기에서 돌을 골라 돌무더기를 쌓아 올리고 있었다. 오직 막 생긴 돌을 주워 탑신 같은 돌더미를 쌓고 있었다. 여름철의 뙤약볕조차 그들에게는 방해꾼이 아닌가 보다. 막돌로 쌓은 돌탑의 성긴 부분을 잔돌로 채워나갈 때마다 먼지로 얼룩진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렸다. 굵은 땀방울이 메마른 흙바닥에 떨어지면서 가벼운 흙먼지를 튕겨내고 있었다.

비탈길 양쪽에는 이미 제 모습을 갖춘 이십여 기의 돌탑이 두 줄로 세워져 있었다. 작년 여름에는 발견하지 못한 변화였다. 돌 모양으로 보아 주변에서 주워온 것들이 아니었다. 채석장에 덤프차로 실어온 것도 아니었다. 막돌인 것으로 보아 그들만이 아는 어디선가 등짐으로 지고 온 돌임이 분명하다. 일전에 초로의 남자가 돌을 담은 포대기를 허리에 걸치고 오르는 것을 무심코 보았는데 그 사람이 지금의 이 사람인가 보았다.

그들이 쌓고 있는 탑은 막돌탑이다. 솜씨 좋은 석공이라면 징과 끌로 돌을 깎아 반듯하게 석탑을 만든다. 석공이 만든 석탑은 기단석부터 상륜부까지 좌우대칭을 이룬다. 결 고운 모양새가 날렵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이들이 쌓고 있는 탑은 어설프기 이를 데 없다. 돌탑을 올리는 이치를 어찌 모르랴만 주변에는 먹통도 끌도 없다. 흔하디흔한 망치조차 눈에 뜨이지 않았다. 오직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두 사람의 네 팔 뿐이었다. 막된 사람들이 막돌로 막 쌓아올리려는 돌무더기라 할까.

‘막’이라는 말은 참으로 막 쓰인다. 막놀다. 막되다, 막잡아먹다 하면 인정사정없이 일을 저지르는 짓을 뜻한다. 막된놈이라면 아비 없는 자식쯤에 해당된다. 막일을 한다면 막장 인생에 다다른 시점으로 단정해 버린다. 하지만 ‘막’이라는 말이 무엇을 만드는 데 사용되면 뜻이 달라진다. ‘막’이 ‘잘’로 바뀐다. 막걸리는 운치가 느껴질 절도로 잘 삭힌 술이고 막사발은 잘 빗어낸 소박한 사발이다. 막돌탑이라면 연장을 마다하고 우직하게 손으로만 쌓아 올린 게 아닐까 짐작된다.

다음 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오랜만에 그 길을 올랐다. 오른다기보다는 일부러 택한 셈이다. 여전히 인적은 드물고 마른 풀들은 흙먼지를 덮어쓰고 있었다.

보라. 육십 기의 돌탑이 일렬횡대로 서 있다. 마치 행인들을 지켜주려는 보살처럼 여름 무더위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돌탑이다. 막돌탑이다. 막돌 무더기가 어느새 탑 무리를 이루었다. 그러면서 돌 하나하나가 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큰 돌은 큰 돌대로 몸을 서로 빗대어 얹혀 있고 중간 돌이 빈 간격을 메우고 남은 빈틈에는 나뭇가지보다 작은 파석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기하학적인 곡선이나 단정한 직선은 아니지만 지켜볼수록 자유스러운 선으로 빚어진 게 보였다. 기단과 기석으로 구분도 되지 않고 옥개석과 면석도 없지만, 그들이 쌓아 올린 탑은 석기 항아리처럼 안온하고 너그러웠다. 수십만 번이나 오르내린 손이 이루어낸 작품. 무명씨 부부의 알 수 없는 염원이 만들어낸 탑을 지켜보면서 나는 왜라는 물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난해 여름에 지켜본 허리 굽힌 두 사람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무더위도 마다하고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돌무더기 옆에 쪼그리고 있던 그들, 어쩜 그들은 햇살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자 얼굴을 가렸을지도 모른다. 맹목에 가까운 집념이 때로는 놀라운 것을 만든다는 걸 확인하면서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돌은 땅바닥에서 뒹군다. 사람의 발길에 따라 이리저리 차이고 버림받는다. 그런데 사람이 손으로 올리고 눈길을 맞추어 어깨 위로 쌓이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존재로서의 생명을 얻는다. 돌멩이가 하찮다 할 수 없다. 사람이 경박하게 여기므로 천하게 보일 따름이다. 여름 햇살에 거슬린 노부부는 잡석 더미에서 막돌을 하나하나씩 골라 제 자리에 끼움으로써 잘난 돌로 만들어주었다. 꽃에 이름을 붙여 주면 좋지만 불러주지 않아도 꽃은 아름답다. 이름으로 불린다면 그 꽃은 더 아름답다. 그런데 버려지고 팽개쳐진 잡석과 막돌에 빈자리를 찾아주면 그건 옥석이 된다.

요즘도 종종 금련산에 간다. 막돌탑을 찾아간다. 그때마다 필부의 노동이 시인의 노래보다 더 진실하다는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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