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다움/ 유안진
소문에 시달리던
허위도 진실도
세월로 씻길 만치 씻기고 나면
회복되는 여자다움
마침내는 사람이구나 인간이구나
갓 빚어내신 바
하느님의 작품이구나
-시집『봄비 한 주머니』」 (창작과비평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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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우리 여성들은 지겹도록 ‘여자다움’을 강요받으면서 자랐다. '넌 여자애가 도대체 왜 그래?’ ‘왜 그리 험하게 놀아?' 모성에 기반을 둔 남성과 변별되는 여성의 특질이 분명히 존재하건만, 관습에 의해 정형화되고 남성들에 의해 조작된 통념이 그대로 통했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여자다움이란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구속과 폭력들이다. 여자는 예쁘고 연약하고 수동적이고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소문에 시달렸던 허위하며. 툭하면 보호받아야할 대상이란 구실의 폭력들이 그동안 얼마나 공공연하게 난무하고 자행되었던가. 그리고 미모가 딸린다는 이유로 남성으로부터 받는 여성의 비애와 수모도 여전하다.
동네 태권도장에 가면 여자아이들이 거의 절반인 것을 볼 수 있다. 아들보다 딸이 더 좋다는 요즘의 엄마들은 절대 예전처럼 그렇게 나긋나긋하게 딸아이를 키우지 않는다. 성 역할을 떠나 이미 차별 없는 무한경쟁시대에 와있기에 어릴 때부터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며, 씩씩하고 당당하게 커야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은 7년째 남학생을 앞지르고 있으며, 사법 연수원 수료생의 여성 비율도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어린 시절 인형과 소꿉놀이에 익숙했던 386세대 이후의 엄마들이 21세기의 중심에서 살아갈 딸들을 자신들처럼 짜부라들게 키우지 않으려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세월로 씻길 만치 씻기고 나면 회복되는 여자다움’이란 의미가 ‘마침내는 사람’이고 인간임을 온전히 실현했다 라기보다는 그 소망을 담았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남성중심 사회에서 억눌리고 왜곡된 근원적 여성성의 회복을 통해 진정한 여성 정체성을 되찾고자 하며, 남성과 똑같은 ‘하느님의 작품’임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구태의 딸 아들 차별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금녀’나 ‘성역’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다방면에서 눈부시지만 아직도 소망처럼 완전한 양성평등 사회가 도래한 건 아니다. ‘마침내는 사람이구나’ 하면서도 여성비하의식을 스스로 벗어던지지 못하는 여성도 많이 본다.
1908년 3월 8일, 공황에 의한 경기침체로 생활고에 허덕이던 미국 섬유여성노동자 수만 명이 뉴욕 로저스 광장에서 빵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인 게 108년 전의 일이다. 당시 정치참여 권리조차 없는 지위에 비하면 지금은 엄청나게 여권이 신장되고 여성의 정치적 진출도 늘었다. 우리나라도 찝찝하게 탄생되어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여성 대통령을 경험하고 있으며, 그보다는 훨씬 매력적인 여성 정치인들도 수두룩하다. 게다가 각 당이 전략적으로 꾸준히 통로를 넓혀가고 있으니 우먼파워를 실감한다. 그럼에도 현재 국회의원 의석 기준으로 16% 정도이니 선진 유럽의 40%수준에는 훨씬 못 미친다. 여성의 정치적 자유와 평등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는 더욱 요구되며, 그들에 의해 진정한 양성 평등의 마침표가 찍히길 기대한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