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 허정진

 

 

밀정처럼 은밀하고 자객처럼 민첩하다. 소리를 들을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울퉁불퉁, 각을 세운 벽이나 진창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앉으면 저도 앉고 일어서면 같이 서고, 앞서다가 또 뒤따라오며 소리 없이 움직인다. 때로는 그늘 속으로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내면의 진실과 겹쳤을 뿐 존재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한 번도 옆길로 새지도 않고 귀찮아 쫓는다고 도망가지도 않는 영원한 삶의 동반자다. 어떤 경우에도 나를 배신하거나 거부하지도, 변하지도, 다른 욕심을 내는 법도 없이 내 곁을 지키는 수호천사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나의 영혼이며 이력서와 같다.

부처의 자비도, 예수의 사랑도 그림자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오체투지도 마다하지 않고, 낮은 곳에 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환희와 영광에 나서는 법이 없어서 언제나 빛의 뒤편에 위치한다. 그는 공평하고 평등해서 인종이나 빈부, 이념, 못나고 잘난 사람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채도와 밀도로 존재한다. 화려한 옷차림과 고혹한 향기도 그림자 앞에서는 무채색일 뿐,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거나 어느 한쪽 치우치는 적이 없다.

그는 내 육체와 영혼의 가교역할을 한다. 제 몸을 다 드러내었어도 영혼이 없이는 만져지지 않고, 제 눈을 다 뜨고 있어도 마음이 없이는 실체를 볼 수 없는 법이다. 외면의 그림자는 나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지만 내면의 그림자는 나의 영혼을 지배한다. 그렇다고 흔적을 남기거나 상처 주지는 않는다. 세상의 온갖 허물과 과실을 지켜보지만 고해성사 받는 신부처럼 침묵으로 일관한다.

자기 그림자에도 발이 걸려 넘어지던 때가 있었다. 세상은 앞과 뒤, 오르막과 내리막, 빛과 어둠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높고 멀리만 쳐다보고 살다가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 땀에 절고 노동에 지친 기다란 내 그림자와 만난 적 있었다. 예쁜 풀꽃들이 남발하는 계절이었으나 노을을 등진 어깨 축 처진 그림자 하나가 바닥에서 휘청거렸다. 새삼 낯설었다. 그것이 오히려 나의 실체이며 현실적 자아 인식의 계기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내 그림자를 의식하지 못하고 허상 속에 살았다는 사실이 더 슬프기만 했다.

그림자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요, 내 자아가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있었다. 사나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팔아서 부와 명예를 얻었다.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는 사나이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나이는 그림자를 되찾고 싶었다. 죽은 뒤 자신의 영혼을 파는 조건으로 그림자를 되찾을 수 있었으나, 사나이는 거래를 거부하고 그림자가 필요 없는 세상으로 방랑을 떠난다. 사람에게 그림자는 무엇일까?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림자는 있어도 없는 존재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실상(實像)이 아닐까.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 마음속에 감춰진 꿈과 욕망을 그림자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면의 자아를 숨기고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똑같은 틀에 맞춰 살아가고 있지만 진정한 자기 모습은 그림자처럼 굴절되거나 왜곡된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둑처럼 자신의 그림자를 들키지 않기 위해 어둠 속에 숨어 도망 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자는 나의 주인이고 주연이다. 내 마음이고 나 자신이다. ‘나도 나를 모르고, 내 마음속에는 수많은 내가 있다.’라는 노래 가사도 있다. 내 자신인 그림자를 통해 화해와 용서와 성찰도 가능하다. 항상 붙어 있는 데도 없는 것처럼 자신을 돌아볼 기회도 없이 사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몸만 있다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나뭇잎이 흔들려 바람을 보는 것처럼 그림자는 빛의 존재, 어쩌면 그 사람의 영혼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림자처럼 살았다는 말은 타인에게 순종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았다는 말이다. 그림자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했다는 말도 자신보다 남을 위해 희생과 헌신으로 살았다는 말이다. 내 아버지도 그랬다. 조실부모하여, 당신을 밝혀줄 한 모숨 햇빛도 없어 일찌감치 남의 눈칫밥 먹으며 그림자처럼 살았다.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젊어서는 자기 삶이 없었고, 자신의 욕심과 주장이 행여나 가족에게 불편이 될지도 모를까 봐 늙어서도 자식 뒤편에서 그림자로 살았다. 지금 와서 자식 된 처지에서 돌이켜보면 그것이 참으로 미안하고 안타깝다.

창호지 너머 호롱 불빛 아래 앉은뱅이책상의 등 그림자가 그립다. 빛을 등 뒤에 두고 네가 내 앞에 서면 우리는 둘이면서도 하나가 되는 것도 그림자 덕분이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이해관계만 생각하고 결과만 중시하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누구에게도 키다리 아저씨 같은 그림자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차별이나 편견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빛 아래 분명 그림자는 있었지만 바빠서, 힘들어서,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아예 돌아보지도 않고 살았다. 땡볕 아래 잠시나마 그늘이 되어 쉼터를 만들어 주기는커녕 남의 햇빛을 가린다거나, ‘일식’이 되어 주위를 어둡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살아야겠다.

그림자마저 언젠가 없어지는 날 있을 것이다. 내 곁을 떠나는 날, 잘 살았노라고 서로 위로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한 생을 함께 했던 내 그림자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어 어느 동네 겨울 별자리의 문지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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