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는 냄새가 있다 / 배귀선
잃을 것도 지켜야 할 것도 없는 세간이기에 언제나 열려 있는 문. 여느 때처럼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선다. 혼자 있을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여느 때 같으면 인기척이 나면 내 이름을 부르실 것인데 조용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지 한 순간 멍해진다.
이내 돌아가셨다는 현실을 알아차린다. 그랬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귀가 밝은 아버지는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급히 나를 불렀다. “귀선아, 어디 갔다가 인자 왔어.” 돌아가시는 날까지 내 이름만은 뚜렷이 기억하셨다.
손바닥만 한 밭일이라도 할라치면 아버지를 홀로 남겨두어야 했다. 요양보호사의 대중화와 치매환자에 대한 정부의 배려가 그리 깊지 못한 때라서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 시야에서 멀어진 적이 한두 번 아니었기에 방문의 시건장치 안과 밖을 바꾸어 설치해야 했다. 잠시 일을 보기위해 밖에서 방문 잠그는 소리가 ‘딸칵’ 들리기라도 하면 당신도 데려가라며 통사정을 하셨다. 그런 날이면 온종일 집을 끌고 다니듯 긴 하루를 보내야 했다. 지금도 앉은 키만큼의 방문 높이에는 아들을 부르며 두드린 흔적이 내 가슴에 멍처럼 남아 있다. 나는 그때 아버지를 감금한 죄 때문에 지금도 외로움과 고독에 갇혀 사는지도 모른다.
돌아가시기 서너 해 전에서야 드문드문 생긴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라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으나 아버지를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낯선 사람을 거부하는 대인기피 치매증상 때문에 시설에 갈 수가 없었다. 목욕도 내가 해드려야만 했고 병원주사도 내가 옆에 있어야만 가능했다.
귀가가 좀 늦어지면 어김없이 기저귀를 벗어 변을 만졌다. 당신 딴엔 수습을 한다고 했겠으나 오히려 일을 크게 벌려놓곤 했다. 그렇게 늦은 귀가는 감금에 대한 흔적이 되어 벽지와 장판에 눌러붙어 있었다. 장판은 그렇다하더라도 티브이 리모컨에서 말라버린 똥을 처리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워매, 워매, 울 아부지 똥 싸서 시원허시것네.” 그 당시 똥을 치우며 나는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음을 오늘 고백한다. 매도 맞아 본 놈이 잘 맞듯 똥 냄새는 어느 순간부터 나에겐 불쾌하거나 특별한 냄새가 아니었다. 그러나 불쑥 사람이라도 찾아오면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당혹스런 표정을 애써 감추려는 손님에겐 더욱 미안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버지 돌아가신 후 최근까지 습관처럼 집에 손님들이기를 두려워했다.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잘 참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심 얼마나 고역이었을지 생각해보면 미안할 따름이다.
아버지는 치매가 일찍 왔다. 그러니까 내가 홀로된 때부터였다. 어쩌면 아버지는 아들이 안타까워 스스로 치매에 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내 지울 수 없었다. 자살을 꿈꾸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기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보며 모진 마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갔다.
담과 담쟁이덩굴처럼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부자간의 정은 차츰 똥냄새만큼이나 진해졌다. 치매 이전보다 친해졌고 허물이 없어졌다.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게 있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는데 나는 아버지와 사는 동안 얻은 게 많은 사람이다. 잃어버린 십 년이 아니라 나를 찾는 시간이었지 싶다.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서 생각할 수 있었고 생각할 수 있어 존재의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친구처럼 서로 의지하며 살다 유월이 저물어 가는 날 밭은기침 허공에 남겨놓고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십여 년을 함께 살았던 치매와도 이별을 했다.
창백한 구름처럼 스러진 아버지의 주검은 나에게 한 동안의 우울증을 남겼다. 아버지를 땅 속에 묻은 여름은 추웠고 이어진 가을은 허전했다. 또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하는 감옥은 죽어야 산다는 실존적 사유를 중얼거리게 했다.
어둑해지는 허공의 궤적을 따라 서녘을 향하는 새 한 마리, 어디서 왔고 어디를 향해 가는가. 잃어버린 채 살아온 물음이 노을처럼 무연히 흘러간다. 이제 더는 똥오줌 받아 낼 성가심도 밥 떠 넣어 줄 일도 없는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어디로 날아가야 할지 서성이고 있다.
‘딸칵’시건施鍵 소리가 공명처럼 남아 있는 아버지의 방문을 연다. 아버지는 없고 앙상한 그리움만 머물러 있다. 그 썰렁함을 디딜 때마다 물컹 밟히는 냄새. 그리움에는 냄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