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글방 / 김상분
시골에서 일하면서 글감을 찾을 때가 많다.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논다고 모두들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한다. 무슨 음덕을 쌓았기에 그리 복이 많으냐고 한술 더 뜨는 사람도 있다. 남의 말은 다 쉽다. 음풍농월이란 비아냥에도 아무런 대꾸를 못 하는 속사정을 누가 알아주리. 봄이면 꽃이 피고 새 울면 여름이 되니 사시장철 보이는 것만 줄줄이 써 나가도 글이 저절로 될 텐데 무얼 그리 끙끙대느냐는 투이다. 아무리 겉볼안이라고 해도 겉보기에나 그럴듯하지 속도 그리 쉬울까. 글이 그렇게 맘대로 써지지 않는 것은 그대도 마찬가지이리, 어리석은 나는 흙에서 무슨 보물이라도 캐어낼 듯 애꿎은 호미만 닦달을 한다. 나의 두 눈이 밝아지고 들을 귀가 열리기를 바랄 뿐, 내 온 영혼과 정신을 다 바쳐 치열하게 써보았는가 늘 자책하곤 한다.
텃밭 한 귀퉁이에 허름한 농막을 세우고 나서 나름 멋진 작가의 방을 꿈꾸어 보았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마음대로 책을 벌려놓아도 될 만큼 큰 책상과 의자를 구해다 놓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배불뚝이 모니터와 연결된 고물 컴퓨터 옆에 작은 라디오까지 구색을 갖추어 놓았다. 이제는 향기로운 커피 한 잔만 앞에 놓으면 타닥타닥 글이 심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긴 세월 동안 그 책상에서 대체 몇 줄의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끝없이 돋아나는 풀과의 씨름이었다. 하기는 흙바닥에 주저앉아 호미로 캐어낸 생각들이 나의 글이고 작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서투른 농사일이 버거워 김을 매는지 풀씨를 퍼뜨리는지 구분을 못하면서 전전긍긍하기를 십수 년, 한 번도 그 책상에 앉아 한가로이 초록빛 창밖 풍경을 감상할 새도 없었다.
관상수 재배로도 재미를 보지 못하게 된 다음 눈을 뜨게 된 원예치료정원은 어쩌면 구원의 손길이었다. 누군가를 보듬어주어야 할 본분보다 스스로가 치유 받은 자정의 공간을 찾았다고 할까. 식물을 키우고 관리하며 감상하는 과정에서 얻는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도 다스려지는 원예치료〔Garden Therapy〕, 그 일에 몰입하는 동안 작가의 방은 자연스레 풀밭으로 옮겨진 셈이다. 흙이 나의 책상이고 호미가 나의 펜이 되었다고나 할까. 식물과 인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환경의 범주 안에서 이 작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애를 썼다. 이재에 밝지 못한 내 능력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래도 무엇인가 보람을 찾기 위하여, 한 자 한 자 글을 심듯이 씨를 뿌리고 문장과 문단을 이어가며 한 편의 글을 구성하듯이 고랑을 내며 밭을 일구었다. 나무가 웃자라면 가지치기를 하듯이 지나친 수식이나 표현들을 가려내며 퇴고를 했다. 제법 그럴듯한 문장이어도 주제에서 어긋나면 길 한가운데 솟아있는 잡초를 솎아 내듯이 미련 없이 잘라내면서.
잡풀처럼 끝없이 샘솟는 근심 걱정을 비우고 또 비우고 닦고 또 닦는 세월 동안 내가 구한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비록 손안에 이렇다 할 것도 별로 없지만 이곳에서 이루어진 만남의 인연들은 내게 더없이 큰 보람이었다. 글동무들이 모여 글을 읽고 감상하는 동안에 거둔 보람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이었다. 한 편의 글을 대할 때마다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 한 사람의 삶과 대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꼭 나와 같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너와 그를 만나면서 나는 그들의 사유와 언어를 보고 들으며 배웠다. 때로는 나와 다른 그들을 인정하기위해서 예각으로 곧추선 나의 판단력을 둥글게 만들어 보려고 애를 썼다. 이따금 바람처럼 휘젓는 인연 또한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지치고 힘들 때 초록빛 생명들에게서 받은 위로, 자연의 한없는 넉넉함 속에 되찾을 수 있었던 평화를 이 세상 또 어디에서 구할까. 아픔은 옹이가 되고 그럴 때마다 한 마디씩 커가는 나무를 닮고 싶었고 한 둘레의 둥그런 목리문을 새기며 마음을 다스렸다.
여름 화단이 오늘따라 더 푸르게 보인다. 옥비녀 꽃은 아직 잎만 무성한데 원추리는 그 아래서 꽃대를 한껏 올리며 접시돌리기를 하는 듯하다. 비비추도 벌써 성급하게 보랏빛 꽃대궁을 세우고 있다. 여러해살이 숙근초가 스스로 뿌리를 늘려가는 냉엄한 생존본능, 더위나 추위를 이겨내는 적자생존의 법칙 앞에 새삼스레 겸허해질 뿐이다. 나의 삶이 나의 글이 그렇게 뿌리 깊어지기를 아직도 철없이 꿈꾸고 있다. 떠오르는 영감과 감성의 조각들을 옮겨서 기록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딘들 어떠하랴.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이성의 머리, 그 사이에 존재하는 자유로운 영적 공간이 어쩌면 나만의 글방인지도 모른다. 어머니 대지가 허락해주신 소박하고 허름한 초록빛 글방에서 더욱 깊은 우물을 파야 할 것이다. 맑고 차가운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릴 수 있기까지 끝없이 정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