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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해 주셔야 할 것이나이다
하느님 당신께선 저희의 이런 날을
사람 옆에 사람을 두신
날들을…
목에도 가슴에도 감겨오는 이 미명의
견디며 견디며 살아야지요

사람을 위해 슬퍼하는 것이랍디까
하늘의 어느 별 하나라도
식어버리고 그뿐,
불빛 지워지고 심지마저 수은처럼

이러한 저희를 살펴주소서
통절한 눈짓
여윈 초 한 자루도 신목인양 바라뵈는
신이여 구원을 베푸소서
우리 두 목숨에 이 한 번이면 흡족합니다

― 김남조(1927∼ )

놀라면 자연스럽게 ‘엄마’를 부르게 된다. 엄마가 곁에 있어도 부르고 곁에 없어도 부른다. 그럴 때 외치는 ‘엄마야’ 소리에는 ‘깜짝 놀랐어요. 십년감수했네요’라는 뜻이 들어 있다. 비슷하게는 ‘세상’을 부르기도 한다. ‘세상에나’라는 말은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믿기지 않네요’,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

심히 절망스러운 상황이라면 ‘신’을 부르게 된다. 그 신의 이름이 무엇이냐 따지기 전에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절로 ‘신이시여’를 외치게 된다. 신을 부른다는 말은 사람이 너무 나약하고 그 나약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뜻이다. 무릎이 꺾여 바닥에 두 발과 두 팔로 기고 있다는 말이고 도저히 일어날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같은 지구를 나눠 쓰는 먼 이웃 나라에 칠흑 같은 절망이 내려앉았다. 자식 잃은 부모가 슬픔에 울부짖고 부모를 잃은 아이가 아직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곳. 그곳의 많은 이는 놀라는 지경을 넘어, 경악을 넘어, 신과 기적을 외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할 때다. 김남조 시인은 시를 기도처럼 짓고, 기도를 시처럼 읊는다. 그의 시와 기도는 서로 다르지 않고, 우리의 바람과 기도 역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김남조의 시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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