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부전상서 / 김용삼
“나를 매장하지 마라…….”
또 시작하신다. 몹쓸 병으로 자리보전하신 것도 아닌데, 유언이라며 습관처럼 입에 올리시는 말씀이다. 늘 한쪽 귀로 흘려듣는 내가 못 미더운지, 오늘은 종이에 펜까지 내밀며 받아쓰라신다. 난감하다.
“유언장은 본인이 직접 써야 효력이 있는 거래요.”
순간 어머니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친다. 그제야 ‘아차!’ 싶다. 당신께서 한글에 서툰 처지임을 깜빡한 것이다. 어머니는 떠듬떠듬 읽고 쓰기는 하지만 받침 있는 글자는 아직도 극복을 못하신다. 상황을 모면한다는 것이 당신의 아픈 곳을 건드려버린 셈이었다.
“너거 아부지 전쟁 나갔을 때도 위문편지 한 통 못썼는데, 내 손으로 유언장을 써라 하노?”
버럭 내지르는 말씀에 역정이 묻어난다. 기어이 내 손에서 펜을 낚아채곤 돌아앉으신다. 엉거주춤 자세를 잡은 어머니의 손에서 한없이 느린 보폭의 글자들이 태어나고 있다. 흔하지 않은 낯선 풍경이다. 사각사각, 백지를 채워가는 어머니를 등 뒤로 읽으며 문득 엉뚱한 호기심이 생긴다. 당신이 전장의 아버지께 편지를 썼다면 어떤 내용으로 채우셨을까.
여느 아낙처럼, 그리움을 앞세워 안부부터 물으셨으리라. 갓 돌을 지난 아이가 아버지를 닮아간다며 소소한 자식의 성장기로 대부분의 분량을 채웠을지도 모른다. 부디 몸 성히 돌아오라며 눈물 섞인 당부로 마침표를 찍지는 않으셨을까. 그것이 위문편지의 정석일 테니.
하지만 내게 추억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와병중인 아버지 대신 가장의 짐을 져야했던 어머니다. 여섯 자식을 홀로 건사하느라 앞도 뒤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살아남아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억척으로 무장을 해야 했다. 옹이 많은 나무처럼 드세고 투박하기만 하던 어머니의 어디에 여인으로서의 말랑한 감성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으랴. 당연히,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원이엄마의 대담한 연서 같은 것은 흉내도 내지 못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도 원이엄마만큼 애틋한 연서를 쓰신 적이 있었다. 서른 해 전, 아버지가 떠나시던 날이었다.
안방에 열두 폭 병풍을 치고 우리는 아버지를 모셨다. 슬픔을 뒤로 하고 격식에 맞춰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것이 자식들의 도리였다. 형제들이 모여 장례절차에 관해 뜻을 모을 때였다. 영정 앞에서 내내 금강경만 읊으시던 어머니가 불쑥 나서셨다.
“염사는 필요 없다. 너희 아부지 몸은 내가 만질 거다. 매 맞아 장독杖毒 오른 흉터며 전쟁 나가 다친 상처자리…, 아마도 너희 아부지, 평생을 빚쟁이처럼 따라 댕기던 그 징한 것을 남한텐 안 보이고 싶을 거다. 걱정하지마라, 해 본 적은 없지만 본 적은 많으니까 괜찮다.”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당신의 고집을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방적으로 뜻을 전한 어머니는 휘적휘적 안방으로 향하더니 장롱 깊숙한 곳에서 보퉁이 하나를 꺼내오셨다. 그 속에는 삼베 수의와, 염습에 필요한 자잘한 용품들이 가득했다. 그것으로 자식들의 입막음을 하신 어머니는 주섬주섬 보퉁이를 챙겨 아버지를 찾으셨다. 그리곤 염을 끝낼 때까지 한 번도 병풍 밖으로 나오질 않으셨다.
손톱깎이와 작은 가위를 건네면서 나는 병풍 안을 살필 수 있었다. 언젠가 밟아본 무령왕릉의 전실처럼 그곳은 어둡고 서늘했다. 칙칙한 어둠 속에서도 아버지를 환히 읽으시는 듯, 어머니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손톱과 발톱을 깎고 머리카락을 다듬으셨다. 아버지께서 병상에 오래 계셨던 탓에 자주 해 오신 일이었지만 그날 어머니의 손길은 어느 때보다도 곡진했다. 손톱 한 조각, 머리카락 한 올도 허투루 다루지 않겠다는 듯 자그마한 오낭주머니에 쓸어 담고 끈으로 단단히 묶으셨다.
물을 들이기 위해 병풍 한켠을 걷었을 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귀잠에라도 빠지신 듯, 아버지의 표정은 더없이 무구해 보였다. 불현듯,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벗겨낸 것은 옷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삶이라는 이름으로 켜켜이 껴입은 고난의 겉치레와 고통의 생채기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버지의 잠이 그토록 평안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수건으로 온몸을 꼼꼼히 닦아 낸 어머니는 말간 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문을 여셨다. 들릴 듯 말 듯, 목소리는 촉촉하면서도 담담했다. 죽음 앞에서 평생 당신을 펄럭이던 미움이나 원망, 희로애락의 감정마저 가셔진 것일까. 토막토막, 쉼표가 더 많은 문장을 힘겹게 끌고 가는 당신의 모습은 처연하다 못해 눈물겹기까지 했다. 아버지의 귓속으로 물꼬를 튼 어머니의 언어들이 뜨거운 연서였는지, 씁쓸한 회한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신만의 의식은 경건하기 이를 데 없어서 숨소리마저 내 안으로 가두어야 했다.
한동안 정물처럼 앉아 있던 어머니는 솜으로 아버지의 입과 코와 귀를 빈틈없이 막으셨다. 입을 막았다는 것은 이미 아버지의 말씀을 다 들었다는 것이며, 귀를 막았다는 건 더 이상 어머니가 하실 말씀도 없다는 뜻일 테다. 그렇게 입으로 쓰고 귀로 읽어야 하는 어머니의 망부전상서亡夫前上書는 아버지 몸에 단단히 봉인되었다.
병풍이 걷혔다. 까슬거리는 삼베옷으로 성장을 한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허깨비 같은 모습으로 주저앉으셨다. 온몸의 기가 다 빠져나가버린 듯 위태해 보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당신이 혼신으로 쓰셨던 편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너들 아부지, 젊었을 땐 참 인물 좋았다. 자식에게는 부족했는지 몰라도 내한텐 끝까지 곰살맞았던 거라. 내가 살기가 힘들어 별 지랄용천으로 유세를 부렸던 거지.”
아버지께 시선을 꽂은 채 어머니가 중얼거리셨다. 그 말은 자식들을 향한 듯 보였으나 실은 아버지께 드리는 추서追書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찰나, 오랫동안 사탕이라도 머금었던 사람처럼 당신의 입에서 달보드레한 향이 맡아지는 듯했다. 그제야 어머니라는 여인이 보였다.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각박해진 모습만이 당신의 전부라 치부를 하고 말았지만, 당신이라고 어찌 촉촉한 연심戀心조차 없었으랴. 감히 어머니를 단언했던 내가 죄송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지난 시간에 묶여있는 사이, 종이가 반 넘어 채워졌다. 받침 잃은 어머니의 글자들이 삐뚤삐뚤 제 길을 가고 있다. 아버지의 무덤을 개장해서 당신과 함께 화장을 하라는 유언장의 한 대목이 완성되고 있는 중이다. 죽어 다시 하나가 되자고, 그때 그날의 편지 속에 약조라도 해 두셨던 것일까. 당신의 의중이 얼마나 확고한지를 보여주려는 듯, 어머니의 아귀에 잔뜩 힘이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