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1권 / 전미란

 

 

 

아무리 찾아도 내 책이 보이지 않았다. 검색을 했더니 재고 1권이 떴다. 서울 한복판 대형서점에서 내 책을 내가 검색했더니 기분이 묘했다. 아이를 찾는 어미의 심정이랄까. 팔렸나? 에이, 설마. 아니면 매장에서 누가 읽고 있나? 행방이 묘연했다.

점원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입안에서는 몇 번이고 침이 고였다. 점원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쪼그려 앉더니 서가 맨 아래 손잡이를 끌어당겼다. 서랍이 쑤욱 빠져나왔다. 널찍한 서랍 속 꽉 들어찬 책들은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책들을 빼내고, 빼내고, 제치고, 제치고 난 후, 저 안쪽에서 전혀 손이 타지 않은 내 책이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마치 구입이라도 할 듯이 얼른 받아 들었다.

재고 1권을 천천히 넘겼다. 밤을 밝히며 찍은 마침표에 내가 있었다. 교과서와 참고서 외엔 책과 담쌓고 살아온 과거를 생각하면 책을 내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가난한 단어들로 한 줄을 쓰기 위해 괴로웠던 날의 연속이었고 읽힌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쓰면서 알게 되었다. '저자가 어떤 의도로 썼건 그 글을 해석하는 독자가 중요하다'는 롤랑바르트 말처럼 내 글이 좋다는 사람을 만날 때면 힘이 났다. 읽히지 않아도 내가 온전히 책 속에 있으니까 행복했다.

밝은 조명 아래에는 유명작가 책들이 사열되어 있다. 독자가 자주 찾는 책, 매출에 영향을 주는 책들로 빼곡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보다 현실감각이 필요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조명 아래 놓일 수 없는 내 책 <이별의 방식>을 유명 에세이 틈새에 끼워 넣었다. 자리 보존이나 잘 해주고 오고 싶었다. 문득 미국의 8살 소년이 떠올랐다. 자기가 만든 그림책 한 권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몰래 꽂아두고 온 후 사서의 눈에 띄어 뜻밖의 인기 도서가 되었다. 대출 대기자가 밀려 11년을 기다려야 볼 수 있다고 한다. 내 책은 점원에게 발견되는 즉시 퇴박맞고 치워질지라도 주인이 와서 한 번 쓰다듬어 주었으니 관심을 못 받고 사라져도 서운하지는 않겠지. 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사람처럼 회전문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서점마다 책은 넘치고 넘친다. 삼라만상처럼 책도 태어나고 소멸된다. 광화문 교보문고는 옛것과 새것이 끝없이 교체되는 곳이고 내 책 또한 통과의례로 거쳐 가는 임시 처소이다. 이제 막 태어난 내 책, 눈도 뜨지 못한 새끼를 꺼내어 날개를 달아주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잊힐지라도 부디 스스로의 운명을 찾아가기를. 비록 남의 자리에 모로 서 있을지라도 내 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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