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죽이 / 백남일
감남골 아래뜸에 사는 넙죽이는 근동에서 바지런하기로 소문난 상일꾼이다. 마당질 뒤의 볏가마 가대기는 종갓집 큰며느리 앞치마 두르듯 하고, 등걸밭 두어 뙈기 갈아엎기는 해장거리도 못 된다.
불볕 내려지르는 유월, 품앗이 김맬 때에도 타고 앉은 제 밭고랑 아우거리를 거뜬히 해치우고 굼뜬 노인네가 뭉그적거리고 앉아있는 두둑의 끝에서 마주 호미질을 해오기 일쑤다. 해전에 콩밭을 모두 긁어놓지 않으면 품을 앗았다 한들 뒷맛이 개운치 않기 때문이란다.
넙죽이의 호적상 이름이 없는 건 아니다. 그가 어렸을 적 꽁보리밥이 됐건 쑥 개떡이 됐건 주는 대로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대서, 그의 당숙모가 붙여준 별명이 일상 부르는 이름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뒤통수를 긁적대며 넙죽대는 것은 누룽지나 호박떡을 받아먹을 때만이 아니다. 정초에 일가붙이들이 성묘 뒤에 들렀을 때에도 할아버지가 ‘절해라!’ 하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넙죽 큰절을 올리고 사랑채에서 나오는 그는 남들이 못하는 것을 저만이 할 수 있었다는 듯 입이 헤벌어진다.
성년이 되어 초례청에서 혼례를 치르고 신부를 맞이한 첫날밤이었다고 한다. 신방에 든 그는 각씨의 족두리는 벗길 생각도 안하고 들여 논 장롱이 ―그때는 장롱이래야 나무로 된 조각무늬를 덧대고 측면은 꽃그림 따위를 붙여 치장한― 신기한 듯 “황새두 있구, 나비두 있구, 꽃두 있어 참 곱다!” 하고 딴청을 부리던 숫보기였다니 가히 그의 순진성을 엿볼 수 있겠다.
고래실에 꽂은 벼 포기마저 벌겋게 타들어가는 극심한 가뭄 때였다. 배다리 댁 내외가 나들이에서 저물녘에 마을로 들어오는데, 어디서 북어대가리 두들겨 패는 듯한 ‘퍽퍽’ 소리가 연해 들려오더란다. 때는 바야흐로 유월 보름께인지라 휘영청 달은 밝은데, 소리의 진원지가 들녘인 듯 솔버덩 아래의 상엿집 근처인 듯, 도무지 향방을 가눌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뒤따라오던 그의 마누라가 질겁하며 “애아범, 저기 귀신이….” 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담력이 세다고 자처했던 남편도 주뼛대는 머리칼을 움켜쥐고 그쪽을 유심히 살펴보았것다. 그런데 참 묘한지고, 달밤에 체조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저렇게 귀신이 쇠스랑으로 마른가리 논바닥을 두들겨 패는 꼴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상천외의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베 등걸이 앞섶을 풀어헤치고 쇠스랑을 내려치는 모양새가 틀림없는 넙죽이였다. 논보리 거둔 천둥지기에 늦모내기는 영 그른지라, 대파(代播) 작물로 메밀을 파종하기 위해 돌같이 굳은 쟁깃밥을 바수고 있는 중이었다. 온종일 호락질로 백답(白畓)을 고르자니 땀 됫박이나 흘렸겠지만, 이렇게 달 밝고 시원한 여름밤엔 밀린 일거리들을 종종 추스르던 그가 아녔던가.
지난 겨울밤에도 엄동설한 개의치 않고 야심토록 새끼틀을 돌려 꼬아놓은 고공품(藁工品)을 농협에 납품하더니 올봄에 또 농토를 늘렸다. 이제 논 섬지기나 실히 되니 일꾼을 두라고 마실꾼들이 권할라치면 “지는 땅심으루 잔뼈가 굵었슈―. 그런디 논마지기나 불었다구 해서 무신 팔자라도 틘 것처럼 머슴 부려 전답을 건사한데유?” 하고 더듬거리며 반문하고 만다.
그는 가당찮은 일을 볼작시면 으레 말부터 더듬는 습벽이 있었다. 허례허식을 모르는 올곧은 심성이 불의와 맞닥뜨렸을 때 튀는 불꽃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을 게다. 허나 가스러진 마음이 숨죽으면 양지받이 잔설 녹듯 제풀에 사그라지고 만다. 인정 또한 남달라 이웃의 궂은일을 보면 앞뒤 잴 것 없이 팔소매부터 걷어붙이는 성미다.
한 번은 미나리 한 바지게를 초장에 내다 팔고 돌아오는데, 쌀자루를 이고 가는 노파가 눈에 띄더란다. 다짜고짜 자루를 뺏어 빈 지게에 들쳐 얹고 한 마장이 넘는 갯마을까지 져다 줬다고 한다. 그 노인네가 얼마나 고마웠으면 팔다 남은 바지락과 강굴을 깡그리 싸주었을까. 농사처가 없는 그네는 갯것을 해서 양식을 팔아먹는데도 말이다.
일하지 않아도 목구멍에 풀칠할 수 있다고 해서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사람처럼 밉살스런 건 없다고, 그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날도 일꾼들이 애벌김을 매다 논두렁에 앉아 새참을 먹는데, 등 너머 김선달이 하는 일없이 어슬렁어슬렁 일청으로 내려왔다. 막걸리 한 대접을 따라 주니 벌컥벌컥 걸신 든 듯 들이켜고 일어서는 것을 보고 넙죽이는 ‘쯧쯧’ 혀를 찼다. 마치 ‘일 하는 것, 이것만이 살아 있는 증표’라는 듯….
참을 먹고 물러나 담배 한 대씩 꼬나물었을 때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오매, 뭘 받아먹으려고 저렇게 입을 삐죽이 내밀고 있디야!” 하고 말하는 소리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는데, 잠시 후 폭소가 터지고 말았다. 수렁배미를 휘젓고 다니느라 일꾼들은 바짓가랑이를 사타귀까지 걷어붙였는데, 그때 마침 넙죽이의 거시기가 걷어 올린 잠방이 사이로 주책없이 고개를 내밀었던 모양이다.
“냅두라구, 필시 어제 밤에도 새도록 일을 했을 터이니 응당 술 한 잔 받아먹을 자격이 있는디 왜들 그랴!”
뒤늦게 내린 단비로 거먹가리가 된 논을 매느라 모두들 허리가 뻑적지근하던 참이었다. 허리를 잡고 웃어재꼈으니 굳었던 몸도 풀려 삼삼오오 논배미로 다시 들어가는 밀짚모자 위에 한나절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넙죽이는 3년 전에 그 지극하던, 아니 종교보다도 거룩한 일손을 놓고 돌아가신 내 숙부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