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화장化粧 / 김희숙
멸치가 솟구친다. 한 무더기가 하늘 높이 튀어 오르면 먼저 올라가 허공을 헤매던 무리는 물속으로 곤두박질친다. 멸치 대가리는 나아갈 바를 모른 채 밑으로 툭툭 떨어지고, 머리 잃은 몸뚱이는 포물선을 그리며 떠돌다 뱃전에 쌓인다. 비늘과 살은 으깨지거나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진다. 색색 비닐 옷을 입은 어부들이 이불 털듯 경쾌하게 그물을 후려친다. 여덟 명의 한쪽 팔이 동시에 올라가더니 노랫소리에 맞춰 아래로 내리치기를 반복한다. 호흡까지 옆 사람과 맞추어 누구도 대열에서 튀지 않고 동작마저 똑같다. 절도 있게 춤추는 아이돌 그룹의 칼군무처럼 보인다. 햇살은 따스하게 내리쬐는데 푸른 바다 위에서 땀과 전쟁을 하고 있다. 코끝에 닿은 바람결마저 비릿하다.
산과 들에 봄꽃들이 앞다투어 피기 시작하면 그에 뒤질세라 바다에서도 봄기운을 머금는다. 봄은 바다도 깨어나게 하는 마법을 가졌다. 기름지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멸치들이 알까지 품어 봄을 부른다. 어부는 재빠르게 찬바람을 헤치고 바다로 나가 멸치를 잡아 올린다. 알을 가득 품고 쑥쑥 살집을 키우던 멸치 떼는 난데없이 조여 오는 그물에 갇히고 만다.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멸치무리가 이리저리 떠밀린다. 꼬리를 힘껏 휘저어보지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머리는 그물에 가 콕콕 박힌다. 그물코에 꽂혀 주렁주렁 물 밖으로 끌려 나오는 멸치들의 아우성이 바람을 불러오는지 바지선에 묶어 둔 배들이 심하게 출렁인다.
여느 고기에 비해 크기가 작은 멸치는 식탁에 오르기까지 품이 많이 드는 생선이다. 멸치는 잡을 때보다 바다에서 돌아온 후 그물을 털 때가 진정한 멸치잡이라고 선장이 귀띔해준다. 어떤 일이기에 그런 말을 할까 의문이 들었으나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는 순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언젠가 TV에서 달인으로 유명한 연예인이 어부를 따라 멸치를 잡고 항구로 들어와 털이 작업을 하는 도중에 그 프로그램 사상 처음으로 포기 선언을 하는 장면을 보았었다. 눈물까지 흘리며 도저히 못하겠다는 말이 그의 진심으로 느껴졌다. 뭐든지 도전해 척척 해내어 달인이라는 칭호를 얻은 그가 손을 들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 멸치털이 작업이다.
한 팀은 여덟에서 아홉 명으로 이루어진다. 노련한 어부가 배 위를 다니며 긴 그물이 엉키지 않도록 풀어주고, 좌우 끝은 비교적 나이든 이나 어린 사람이 당겨준다. 그 사이에 선원들이 열 지어 하나 둘 장단을 맞추며 그물을 턴다. 한 명이라도 박자가 맞지 않으면 전체가 흐트러지기에 경험 많은 어부가 선창을 한다. 소리를 안 하면 각자의 손들이 제멋대로 올라가는 까닭에 호흡을 맞추는 최고의 방법이다. ‘어야 디야’라고 신호하는 배도 있고, 어떤 배는 ‘에라 차야’라고도 들린다. ‘에라이 죽겠다’는 뜻이라며 농을 치는 어부의 웃음에 오죽했으면 구령 소리가 그럴까 싶다. 몇 시간씩 그물을 털다 보면 팔과 어깨는 돌덩이처럼 무거워지고 욱신거리는 근육통이 훈장처럼 매달린다.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멸치털이다. 서로에게 의지해 조금씩 조금씩 당기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그물도 드디어 백기를 든다.
어떤 이는 내게 겨울에는 따스하고 여름에는 선선한 사무실에 앉아 찾아오는 사람 맞이하는 일이니 수월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한편으론 맞는 말이기도 해서 맞장구쳐주지만, 마주 앉은 이의 고민의 더께가 두터울수록 상담하는 목소리에 힘을 싣게 되고 해결 방법을 찾으려면 내가 가진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 혼신을 다해 끝내고 나면 허기지고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때론 손끝조차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지치지만 누구에게나 일이라는 것은 괴롭고 어렵지 않겠나 싶어 견딘다. 그러다가 몸을 써서 일하는 이들을 마주칠 때면 내가 엄살을 부리고 있진 않는지 반성한다. 그들이 땀 흘리는 모습을 보면 숭고한 노동의 가치와 함께 존경스러운 마음이 일어난다. 고된 멸치털이 작업을 해내는 그들의 정신력이 경이롭다.
멸치 비늘이 몸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한 시간 이상 물에 불려야 씻어 낼 수 있다. 그물이 휘둘러 갈겨질 때마다 화가의 몽당 붓끝이 도화지를 두드리고 긁어내리듯 멸치 몸체의 조각들이 날아와 어부를 사정없이 훑는다. 어부는 죽을 힘을 다해 반격하는 멸치의 몸짓을 이해하는 양 자신을 향해 오는 파편들을 고스란히 맞아들인다. 덕분에 온몸에 멸치 비늘과 살점이 내려앉으며 샘솟는 땀과 뒤섞인다. 어느 배우가 그토록 두꺼운 분장을 할 수 있을지. 멸치의 야멸찬 화장化粧을 기꺼이 받으면서도 물에 젖은 수건으로 겨우 눈 주위만 닦아낼 뿐이다. 육신이 바스러질 것 같은 통증을 견디며 한 생명이 살고자 또 다른 생명을 장사 지내는 엄숙한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멸치는 여인들의 손에서 수의 같은 하얀 소금을 덮어쓴 채 깊고 둥근 통을 관삼아 영면에 든다. 인간은 그나마 멸치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그렇게라도 지키는 모양새다.
노동은 흔적을 남긴다. 목수 곁에는 휘어진 못과 잘린 나무도막이 나뒹굴고,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옷은 핏물이 무늬처럼 얼룩지고 알콜 냄새가 풍긴다. 기타리스트의 손가락은 보드라운 살갗이 벗겨지고 단단한 굳은살이 박혀있다. 하루 종일 컴퓨터만 쳐다봐야 하는 직장인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기 일쑤고, 영업사원의 자동차 미터기는 예사로 높은 숫자가 찍힌다. 어부의 몸을 치장한 은빛 화장은 멸치가 이 세상에 살았던 종적이면서 어부에겐 지독한 밥벌이 자국이다. 어망에 꽂힌 멸치를 떼어내면서 어부 또한 생계의 그물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중이리라. 형태가 없는 상담을 직업으로 하는 내가 수십 권의 상담 노트를 남겼듯이.
사람은 혼자 있으면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날 때에야 비로소 거울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살다보면 화장이 기꺼울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분장을 해야 할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일까. 화장을 할 때면 세포 하나하나가 긴장한 탓인지 입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세상과 맞장 뜰 때, 화장은 에너지를 모으는 마력으로 몸을 지탱하게 한다. 모든 화장은 아름답다. 여인은 곱게 치장하면서 삶을 위로하고 어부의 은빛 화장은 힘겨운 노동 끝에 아름다운 뒷모습 하나 남기는 일이다.
선원들이 멸치털이를 마무리하고 제 집으로 돌아가면 남해 미조항에 뜨거운 여름 해가 다다른다. 하늘도 붉은 물로 단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