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수리의 사냥法 / 윤승원

 

 

 

첨벙! 한참 동안 정지비행하던 수리가 강물 위로 쏜살같이 내리꽂힌다.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고 고요하던 수면이 일순간 소란해진다. 잠시 뒤, 큰 숭어를 낚아챈 수리가 퍼덕거리며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깃에 묻은 물방울을 서서히 털어내며.

 

형산강 하구에는 다양한 철새들이 찾아온다. 가마우지, 기러기, 두루미, 백로며 청둥오리 들이다. 그중에 가장 나를 매료시키는 건 물수리다. 가끔 강변을 걸으며 보았던 철새들은 평화롭기만 했다. 쑥부쟁이며 금계국이 바람결에 흔들리듯, 물결 따라 노니는 모습이 한가로워 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길고 구부러진 발톱으로 잽싸게 먹이를 낚아채는 물수리를 어응魚鷹이라고도 한다. 발톱 밑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먹이를 잘 포획할 수 있다. 운이 좋은 날은 양발에 각각 한 마리씩 잡을 때도 있는데 무게가 가벼운 물고기는 놓아 주는 관용도 베푼다. 먹이를 먹은 후엔 수면 위를 낮게 날면서 피 묻은 발을 닦는 신사이기도 하다.

 

물수리가 날아오르자 가마우지들이 서로 먹이를 낚아채려고 난리법석이다. 스스로 구하지 않고 남의 것을 뺏으려는 무리들은 하수下手다. 뒤따라가던 갈매기들은 얼마 못 가 다시 강으로 내려왔다. 그들의 뒤쫓음 따윈 애당초 관심 없었다는 듯 녀석은 여유만만하게 날고 있다. 한참 뒤, 강에서 멀리 떨어진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먹이를 뜯는다. 혹여 성가시게 구는 철새들이 올까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오래전 출판사 영업 사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작은아이가 돌이 지날 무렵부터는 업고 다니기엔 무리였다.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맡기니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매일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만두었다. 당시 내겐 아이가 최우선이었지만 결국 내 삶의 사냥 하나는 실패한 셈이었다.

 

물수리가 다시 나타났다. 공중을 빙빙 돈다. 물속의 상황을 가늠하는 중이다. 쇠스랑 같은 발톱, 뾰족한 부리는 물론, 날렵한 하강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에 숨이 멎을 지경이다. 물수리의 시력은 초능력에 가깝다고 한다. 목표물을 향해 펼쳤던 날개를 살짝 접고 단숨에 물속을 파고든다. 그러나 이번엔 사냥에 실패하고 만다.

 

물수리의 천적은 자기 자신이다. 반복되는 실패를 딛고 일어서야 성취를 할 수 있다. 용맹스럽고 힘이 강한 맹금류지만 매번 사냥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물의 흐름이나 바람의 세기에 따라 허탕을 칠 때도 많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스스로 오류를 분석하고 끊임없이 개선한다.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따서 취업했던 적이 있다. 현장에서 막노동 일꾼들과 어울려 일할 배포가 없었다. 더구나 장거리 출퇴근을 하려니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재택근무를 선택했으나 수입이 예상보다 적었다. 집 가까운 곳에서 자동차 부품 조립하는 아르바이트를 겸했다. 엄지손가락이 부어오르고 관절이 아파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내 사냥법은 잘못된 듯했다. 결국 둘 다 포기하고 말았다.

 

먹이 사냥법은 종種에 따라 다양하다. 고래는 입을 크게 벌리고 위로 솟구치면서 순식간에 많은 양의 물고기를 삼킨다. 카멜레온은 주변의 환경에 맞추어 몸의 색을 바꾸는 속임수를 이용해 먹이를 잡는다. 식충식물인 파리지옥은 유인 냄새를 뿌려 파리가 덫으로 들어오게 한다. 파리가 자극털을 두 번 이상 건드리면 즉시 덫을 닫아버린다. 저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 체득한 사냥법이다.

 

직장생활 재도전에 실패한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역량이 부족해 자신이 없었던 것을 아이 탓으로 핑계 삼았던 것 같다. 이런저런 방법을 강구하지 않은 채 쉽게 포기한 것도 이유였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대처 능력이 미흡했다.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돌파하지 못하고 현실에 매몰되어버리는 것도 약점이었다. 이번엔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준비를 했다. 새벽 공원을 걷고 뛰면서 체력을 기르고 정보를 찾아 나섰다. 그러는 동안 알음알음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겸했다. 잠시도 게으름이나 딴전을 피울 시간이 없었다.

 

동물들은 먹이사슬에 따라 관계 질서를 유지한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주어진 대로만 살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극복해 낸다. 자신을 바로 알고 삶을 마주하면 기적처럼 운명을 뛰어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작정 열심히 살기만 한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 슬기롭게 극복해 가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법일 것이다. 기껏 남의 먹이를 탐내는 가마우지나 갈매기보단 몇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물수리가 되기로 결심했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아파도 누울 수 없었고 지쳐도 쉬지 못했다. 오르막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랐고 내리막엔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살다 보면 맑은 날도 좋은 날도 있으리라 믿었다. 눈높이를 조금 낮추고 겸손해지자고 마음먹었다. 드디어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일자릴 구했다. 수많은 실패 끝에 얻은 직장이었다. 다시는 이전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매시간 열심을 낸다.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한다. 실패한 지난날을 후회하기보다 더 이상 넘어지지 않으려 각오를 다진다. 가끔은 안이함에 빠져 핑곗거리를 찾고 나이 탓을 하며 나태해지기도 하지만 그럴 땐 스스로 죽비가 되어 나를 채찍질한다. 추사 김정희는 ‘기지개를 키며 일어난 사자는 코끼리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지만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 한다.’고 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함을 이르는 뜻이리라.

 

하구에는 갈대들이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 그 사이로 어린 물고기 떼가 재바르게 헤엄친다. 물방개가 원을 그리며 물 위로 미끄러져 간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비록 절망이 거듭될지라도 끊임없이 도전을 하고 성취해 나가는 것이 삶일 것이다.

 

갑자기 가마우지와 갈매기들이 푸드덕거린다. 물수리가 다시 떴다는 신호다.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운 수면에 검은 그림자가 맴을 돈다. 강이 또다시 팽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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