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 김정화

 

 

집은 머지않아 철거될 예정이다. 재건축 공사가 진행되어 감정평가 날짜가 통보되었다. 거주하지 않는 빈집이라 일자에 맞춰 현관문을 열어놓겠다고 했다. 수리도 하지 않았고 세입자도 들이지 않은 채 세간살이만 진즉 덜어내고 그대로 방치하였다.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은 집, 다시는 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지 오래였다.

 

열쇠를 돌리는 손이 자꾸 무춤거려졌다. 녹슨 손잡이가 삐걱대더니 육중한 철문이 철커덩 열린다. 이곳에 올 때는 문만 열어놓고 돌아가리라 마음먹었지만 좀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미 걸음은 어둑한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얼굴을 확 덮치는 거미줄에 오싹하니 소름부터 돋는다. 시큼하게 풍겨오는 곰팡내 사이로 매캐한 먼지가 푹석 날린다.

 

눈을 감고서도 알 수 있는 동선이다. 방과 방을 건너 거실과 베란다를 터서 주방을 넓혔었다. 아파트 끝동이었으니 뒷산과 인접해서 늦가을이면 무당벌레가 지천이었고, 봄이면 먼 산에 가지 않아도 진달래 붉은 몽우리가 터지고 산벚나무 꽃잎이 눈발처럼 내려왔다. 그 풍경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닫힌 창문을 흔들어보았으나 걸고리마저 삭아 젖혀지지 않으니 뒷문을 여는 것은 포기하기로 한다. 개수대 옆에 낡은 가스레인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저 위에서 압력밥솥이 김을 뿜었고 매콤한 된장국이 끓었으며 새댁의 서툰 계란찜이 넘쳐흘렀다. 이제는 불판의 다리쇠 위에도 반들한 냄비 대신 얼기설기 거미줄이 돋았다.

 

책방 문이 반쯤 열려 있다. 거창하게 서재라는 이름으로 부른 적 없었으나 천장까지 닿는 책장을 벽면에 둘러놓고 나는 오랫동안 이 방 모퉁이에 앉아 있었다. 때로는 책을 읽지도 말을 하지도 않고 눈을 감지도 울지도 않은 채, 종일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신열로 앓아누웠던 자리. 아이가 나를 잡고 발버둥 치며 울던 소리가 꿈결같이 들리는 곳. 옛일은 언제나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억지로 기억들을 모두 지워버린 것일까. 책장에 기대었던 벽지에는 먹물 같은 얼룩이 고여 있다. 마치 내 생에서 덧칠하고 싶은 한 장면처럼.

 

안방. 그와 함께 지낸 시간은 어디서 어디까지인가. 저곳에 둥근 벽시계가 걸렸었고 이쪽엔 사진 액자가, 그 아래에는 내가 천으로 만든 공 의자가 있었지. 지름을 재고 재단을 하고 파이핑을 박고 지퍼를 달고 동글동글한 스티로폼을 속에 넣어 꼼꼼히 꿰매었다. 앉으면 몸을 깊숙이 묻을 수 있는 보드라운 촉감이 좋았는데,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말랑말랑해지길 소원했었는데… 잠시 앉고 싶었다. 그러나 등을 댈 나무의자 하나 없이 옛 물건들은 가뭇없게 사라져 버렸다.

 

올려다본 천장에도 온통 거미줄투성이다. 소용돌이 상태로 늘어진 가로줄 그물과 커다란 접시를 엎어놓은 듯한 동심원 모양과 이리저리 불규칙하게 얽어 놓은 엉성한 덫도 보인다. 거처 하나 마련하는 일은 사람이나 거미나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다행히 전등 주위에는 제법 튼튼한 깔때기 그물이 쳐져 있다. 그동안 허공을 가르며 종횡무진 고생한 흔적이 역력하다. 자세히 보니 거미는 집집이 자신만의 섬세한 무늬를 그려놓았다. 호수의 물결, 손바닥 지문, 나뭇잎의 와선, 논바닥 엉그름까지. 주인이 허술하게 버려둔 집이니 저라도 단단히 고쳐 살고자 작정했을까. 이렇게 팽팽하고도 탄력 있는 집을 지은 주인공은 어디에 숨었는지 기척이 없다. 하기야 침략자는 불시에 들이닥치는 법.

 

앞 베란다의 커다란 창으로 낯익은 볕살이 든다. 레이스 커튼을 뚫고 들어온 낮볕이 하얀 와이셔츠의 물기를 말려주었고 풀 먹인 이불 홑청을 쬐었으며 물꽂이를 해 둔 봄 미나리 싹을 틔워 올렸다. 어느 해였던가. 그가 이 집으로 되돌아왔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을 때는 지나다가 잠깐 멈추었다. 그때도 밖에서만 올려다본 집은 고요했고 빨랫줄에 옷가지 몇 개만 햇살을 되쏘고 있었다. 그 후, 그의 부음 때도 방안에는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없다고 집도 마냥 비어 있지 않았다. 햇볕과 그늘이 때맞춰 지나갔고 방충망 사이로 나방과콩벌레도 드나들었으며 집거미가 알을 품고 또 집을 짓고 살았었다.

 

다시 천장을 올려다본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호랑거미가 그물망 중간에 거꾸로 다리를 뻗고 화석같이 멈추어 있다. 부동과 침묵으로 위장한 채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위태로이 공중에 걸린 집을 지키려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몸짓일까. 거미에게는 저 줄이 생존이며 목숨이니까. 목숨을 걸어야만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집이라는 걸 온몸으로 보여준다.

 

이제 곧 이 집도 허물어질 것이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마지막 손님이 될 터이고, 그가 각혈했던 방도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며, 한때의 젊은 날들도 콘크리트 속에 파묻혀버리겠지. 그때쯤이면 오래 서성였던 가슴 속의 빈방도 온전히 헐어버릴 수 있을까.

 

거미가 꿈틀 몸을 떤 것은 순식간이었다. 날벌레 한 마리 포박 중이다. 포승줄에 친친 감긴 몸뚱이 하나, 쉬이 걸음을 뗄 수 없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