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3 / 노혜숙
<대화> 2015
전시관의 막다른 방이다. 검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들어가도 되는지 잠시 망설인다. 그때 한 관객이 안에서 나온다. 텅 빈 방으로 내가 들어간다. 범종 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사각의 흰 벽에 캔버스 그리고 중앙에 놓인 검회색 돌 하나. 작품 ‘<대화> 2015’의 전부다.
이끌리듯 돌 앞으로 다가선다. 돌이라기보다는 바위에 가까운 크기다. 완만하고 유순한 곡선을 지녔다. 언뜻 인간의 심장을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내 시선을 읽은 듯 바윗돌이 말을 걸어온다. 인간의 말이 아니지만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뼈 없이 단순하고 평화로운 말이다. 내 가슴이 순하게 응답한다. 이 또한 세상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다. 굳이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의미 밖에서 무심하게 존재하는 것들의 있음 그대로를 느끼면 그만이다.
인생이 그렇듯 저 바윗돌 역시 어느 날 여기 툭 던져진 존재일 것이다. 운명을 거부하지 않되 그것에 파괴되지 않은 자의 내공은 묵직하나 위압적이지 않다. 몸에 새겨진 바람과 비의 흔적은 단단하면서도 섬세한 내성의 궤적일 테다. 그는 한 작가의 우연한 선택에 의해 귀한 몸이 되었으나 달라질 건 없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영겁의 수레바퀴 속에서 충만하게 느끼는 것, 그와 더불어 하나의 풍격이 되는 것, 그것으로 족하다. 범종 소리처럼 맑은 공명의 여운이 문밖을 따라 나선다.
압사라apsara
앙코르 와트 화랑의 벽면이 각기 다른 춤동작의 부조들로 가득하다. 사암砂巖에 새겨진 무희들의 부조가 튀어나올 듯 생동감 넘친다. 스리슬쩍 감은 눈, 둥근 가슴, 잘록한 허리, 풍만한 엉덩이 그중 섬세한 손동작이 압권이다. 돌에 새겨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나긋나긋 다양한 손짓의 요염한 신을 향해 바치는 무희들의 사랑과 헌신의 표현이란다.
신화 속 신들의 세계는 지극히 비속하다. 남자와 여자, 노래와 춤이 있다. 물론 사랑과 증오의 질펀함도 있다. 사랑에 노래와 춤이 빠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언어를 초월하는 몸과 감성의 거짓 없는 대화다. 리듬에 실리는 음정은 말보다 훨씬 호소력이 크다. 춤은 노골적으로 욕망 지향적이다. 노래와 춤의 합일은 강렬하게 감성의 중추를 관통한다. 욕망의 신전에 바쳐진 제물처럼 때로 비장하고 파괴적이다. 한순간에 타오르다 스러지는 불꽃 같다.
압사라의 춤 앞에서 굳어버린 뼈마디의 신음을 듣는다. 내 인생에 축제가 있었던가. 노래와 춤이 있었던가. 흥도 춤사위도 없는 사막에서 허공을 향해 쏘아 올린 그 말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한번쯤 노래와 신명으로 너와 내가 타오르는 불꽃이 된들 그게 그토록 큰 죄일까. 노래와 춤을 알지 못하는 내 언어는 진실이라는 고지식한 푯대를 끌어안고 저물어간다. 한번쯤 압사라처럼 뜨거운 몸짓으로 생生에게 들이대도 좋았을 것을.
고인돌
고창 운곡리에는 세계 최대 크기의 고인돌이 있다. 덮개돌의 무게가 300톤이나 된다고 한다. 고인돌이 무덤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더러는 고인돌이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선사시대 사람들의 신앙과 관련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21세기 관점으로 청동기시대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짜 해석이 어떤 것이든 인류가 걸어온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귀한 자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거대한 고인돌을 볼 때마다 엄습하는 생각이 있다.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 순식간에 한줌 재로 변해버리는 목숨의 덧없음은 너무 가벼워서 감당하기 어렵다. 기막힌 건 그 가벼움이 한 생을 떠받친다는 사실이다. 삶과 죽음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없다. 살아서 죽음을 이해한다는 말, 나는 아직 모른다. 그렇게 훌훌 가벼워진 마당에 다시 무거워지고 싶지 않다. 거대한 돌무덤에서 나를 가두고 싶지 않다. 그것이 불멸을 위한 기원일지라도 나는 원치 않는다. 돌의 크기로 측정되는 권력과 명예 모두 산 자의 허상 아닌가.
고인돌은 인간사에 무심하다. 욕망의 뒤척임도 소멸의 두려움도 없이 수천 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스라지고 썩어가는 목숨에게 돌의 시간은 섬뜩하기조차 하다. 인간은 시간의 허리에 매달린 위태로운 존재이면서 고인돌처럼 영원하기를 꿈꾼다. 불현듯 한 생각에 소스라친다. 고인돌의 무게가 바로 내 욕심의 무게일 수 있다는 자각, 결국 무게도 가벼움도 한 생각 속의 조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