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 미수에 그치다 / 배귀선

 

 

 냉장고 문을 연다. 갈무리해둔 나숭개를 꺼내 된장국을 끓여볼 요량인데, 삐걱대는 소리가 갈수록 더 한다. 어머니 생전에 쓰던 것을 이어 쓰고 있으니 어림잡아 삼십 년은 된 것 같다. 어떤 때는 내 유년의 정지문짝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하여 그닥 낯설지 않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문턱을 넘어서면 정지바닥보다 낮은 아궁이터가 움푹 둘러져 있었다. 정지바닥은 이웃의 정 묻은 잔걸음으로 반질반질했다. 어머니 친구들이 둘러앉은 아궁이 앞은 늘 불땀처럼 이야기가 타올랐다가 사그라지곤 했다. 고구마 익는 구수한 냄새도 덩달아 폴폴거렸다.

군입정거리가 귀한 시절, 나는 학교가 파하고 집에 오면 부지깽이로 아궁이 속을 먼저 뒤져보곤 했다. 아침밥을 지은 아궁이 속의 재는 점심때까지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올망졸망한 입을 위해 고구마를 무등끄려 놓고 일터에 나간 어머니의 마음을 그때는 몰랐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다 그런 줄 알았다.

어쩌다 성마르게 아궁이를 뒤적거리기라도 하면 잿가루는 시렁 위 그릇이며 옆에 걸린 주전자에 얌체처럼 앉아 어머니를 더 힘들게 했다. 주전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시커멓게 그을린 흙벽에 금색으로 매달린 주전자는 그 당시 동네 친구들에게 자랑거리였다. 대두병을 들고 막걸리 심부름 하다가 병을 깨트린 적이 한두 번 아니었기에 누런 주전자는 나에게 대단한 물건이었다. 무엇보다 됫박 술을 유리병에 담아오면서 홀짝거리고 맹물을 부어놓은 싸가지(?) 없는 행동이 들키지 않아서 좋았다.

두어 모금 들이킨 여남은 살의 걸음은 취기로 기고만장도 하였으나 귀신같은 아버지의 술맛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였다. 이러한 내 도벽과 주벽을 다소나마 감취준 물건이 주전자였다. 주전자에 받아온 막걸리는 그 내용물이 보이지 않아 물을 첨하지 않아도 무관하였다. 막걸리 양은 다소 줄었어도 맛은 변함이 없으니 아버지의 의심을 비켜갈 수 있었다. 어쩌다 점방집 할매가 됫박의 한쪽 귀퉁이를 지울 만큼의 양이라도 덤으로 부어주면 그 몫은 내 차지였다. 할매의 맘 따순 그런 날은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뒷산에 올라 솔가리 나무를 하거나 물 항아리를 채우는 일에 신명이 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 몫의 일과를 싫은 기색 없이 해내곤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취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내 음주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쯤에서 다시 어머니 이야기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어머니에게 인심 좋은 사람이 가끔 찾아오곤 했으니 그는 방물장수였다. 긴 머리를 뱀 똬리처럼 둘둘 말아 비녀를 꽂은 방물장수는 어머니보다 정갈했고 분내가 진동했다. 그녀가 동네에 오는 날이면 늘 우리 집에서 보따리를 풀었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뒤주는 달그락댔다. 물건 값으로 대신할 보리쌀을 푸는 어머니의 허리는 오래도록 굽어져 있었다. 옹색한 살림에도 어머니는 방물장수 앞에 밥상을 내놓곤 하였는데, 염치 좋은 그녀는 새비젓에 김치 쩟국을 넣어 쓱쓱 비빈 밥을 게 눈 감추듯 비워냈다. 보은이랍시고 방물장수가 커다란 눈깔사탕이라도 하나 내 입에 물려주면 어머니는 넘새밭 가상자리를 채근하여 갈무리해놓은 메주콩을 더 퍼주었다.

당시, 소식통인 방물장수의 역할은 대단했다. 사윗감이나 며느릿감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이웃마을에 대한 소식도 접할 수 있었으니 그이는 장사꾼이자 소식통이기도 했다. 요즘 말로 한다면 상당한 속도와 용량을 지닌 컴퓨터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방물장수와 어머니가 동네 사람들보다 유독 친한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친구들에게 꺼내놓고 다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가 그 방물장수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것은 어머니도 그 일을 해보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거나하게 취한 어느 날, 내가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데 지금 무슨 개수작을 하는 거냐며 방물장수와 어머니를 몰아부쳤다.

그날 이후 과수댁 방물장수는 우리 집 정지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널평상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 그녀를 따라나서 사업을(?) 도모하려 했던 어머니, 김 여사의 꿈도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내심 방물장수 같은 깨끔한 어머니의 모습과 보따리에 담긴 달달한 주전주리를 은근 바랐으나 아버지의 훼방으로 무산되었다는 생각에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때는 그랬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분란이 사그라지는 동안 나는 판자를 덧댄 정지문 틈으로 어머니 눈치를 살폈다. 어느 때고 삐걱거리는 정지문을 대차게 나서서 방물장수가 되었으면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영그는 동안, 때 절은 수건을 머리에 쓴 채 울퉁불퉁한 정지를 떠나지 못했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삐걱~ 세상의 모든 낡은 소리에는 그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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